가성비 좋고 트렌드 반영 빨라 시장 주도…“뷰티업계 펀더멘털 함께 성장했는지 검증 필요”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뷰티사업이 소위 ‘돈이 된다’는 점 때문에 너도나도 화장품업계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부 인플루언서나 연예인 등을 내세워 마케팅·홍보에 치중해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했다가 반짝 인기를 얻고 사라지는 것이 산업의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1월부터 11월까지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 규모가 93억 달러(잠정)로 역대 최고였던 2021년 전체 수출액 92억 달러를 뛰어넘으며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우리 화장품의 수출 확대가 △미국, 일본 등 현지 맞춤형 제품을 개발한 업계의 노력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노력 △한국 드라마와 영화, SNS를 통한 K콘텐츠의 확산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증가와 함께 국내 화장품 판매 기업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 식약처에 등록된 화장품책임판매업체 수는 3만 1524개로 2019년 1만 5707개에서 5년 사이 2배 늘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아모레퍼시픽, 엘지생활건강, 애경산업 등 상위 10개 책임판매업체의 생산 비율은 줄고, 상위 10개 제외 업체의 생산 비율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상위 10개 업체 생산 비율은 69%에서 2022년 59.5%, 2023년 55.5%로 낮아진 반면, 같은 기간 상위 10개 제외 비율은 30.7%에서 40.5%, 44.5%로 높아졌다.
올리브영에서 연 매출 100억 원 이상 기록한 ‘100억 클럽’ 가운데 절반가량은 중소기업 뷰티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에 따르면 올리브영 입점 브랜드 2400개 중 80%가 인디 브랜드라 불리는 중소기업이다. 올리브영이 매년 집계해 발표하는 ‘올리브영 어워즈’에서 라운드랩, 토리든, 마녀공장 등 국내 중기 제품이 최근 몇 년간 상위 매출 브랜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내외 화장품 시장에서 인디 브랜드가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기존 대기업들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만큼 뷰티 대기업들이 역할을 못해왔고 시장 지배력이 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며 “실제로 대기업들이 자체 제품 개발보다 ODM(제조자 개발 생산),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를 통해 생산해왔다 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 ‘우리가 못할게 뭐 있나, 우리도 진출해보자’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존 대기업이 만든 제품이 비싼 만큼 품질이 좋다고 느끼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가처분 소득이 줄면서 여력이 없는 상황 속에 굳이 비싼 뷰티 제품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사이 SNS 마케팅을 통해 콘텐츠 베이스로 제품을 홍보하는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가 높아졌고, 중기 제품 선택에 크게 망설임이 없게 됐다. 오히려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안 맞으면 딴 거 쓰면 되지’ 해서 편하게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화장품은 식약처에 ‘화장품 책임 판매업’을 등록하고 생산은 코스맥스·한국콜마 등의 ODM이나 OEM 업체를 통해 진행하면 제조‧설비 공장이나 연구개발 없이도 생산·판매가 가능하다. K콘텐츠의 인기와 함께 중소기업들이 발 빠르게 이러한 방식으로 뷰티 제품을 생산해나갔다.
뷰티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제조부터 마케팅까지 의사 결정에서 복잡다단한 구조를 거쳤다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조 인프라를 통해 발 빠르게 제품을 출시했다. 그 덕분에 중기 브랜드들이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는 중기 브랜드가 제품을 쏟아내며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과연 이 흐름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장담하지 못한다.
진입장벽이 낮고 시장성이 좋다는 이유로 대기업들도 화장품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실패한 사례가 많다. 이마트는 2019년 야심차게 내놓은 색조화장품 스톤브릭 사업을 2021년 말 완전히 중단했다. 패션 기업 코오롱 FnC 는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2020년 론칭했다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22년 초 중단했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내세워 반짝 주목받다 논란을 빚으며 영업이익이 추락한 사례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의 성공을 발판으로 식품, 화장품 등으로 영역을 넓혔던 인플루언서 임지현은 이른바 ‘곰팡이 호박즙’ ‘ 부작용 화장품’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앞의 뷰티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인디 브랜드가 업계를 이끌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지만 너무 빠르게 트렌드가 왔다 가는 상황에 과연 세밀한 기획 과정을 거쳐서 (화장품이) 출시돼 왔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작용 하나로도 한 브랜드의 명운이 좌우될 수 있다”며 “뷰티업계의 펀더멘털도 같이 성장하고 있는지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교수는 “피부에 바르는 제품은 갑자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인디 브랜드 제품이 들어가려면 고객 경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기업을 생존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점”이라며 “현재는 단순히 고객의 리뷰를 많이 생성하도록 전략을 짜거나 물건을 팔기 위한 프로모션을 위해서만 고객을 관리하는 기업들이 많다.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심한 고객 관리를 해야 타 브랜드와 차별성을 가지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