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심한 곳 활주로 짧아, 소형기 시계비행 쉽지 않아…조류충돌 위험 ‘매우 심각’, 졸속 추진 양상 뚜렷
전남 신안군에 건립 추진 중인 '흑산공항'은 괜찮을까. 일요신문이 만난 지역사회와 인근 주민들은 '설립 반대' 뜻이 강해 보였다. 단연 조류충돌을 비롯한 각종 '안전 우려' 때문이었다.
#주민들도 '절레절레'…누굴 위한 공항?
서해 남단 청정해역인 전남 신안군 소재인 흑산도.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천혜의 자연 지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사람의 손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덕분에 아름다운 생태 환경을 지켜가고 있다. 대신 그만큼 접근성도 좋진 않다. 전남 목포시 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4편만 뜨는 배를 타고 2시간가량 가야 도달할 수 있는 섬이다.
정부는 이 같은 교통 불편을 해소하겠다며 섬에 '흑산공항' 신설을 추진 중이다. 지역 주민들로선 관광객 유입은 물론 육지 여행이나 대형병원 이용 편의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8년 개항을 목표로 80인승 소형 항공기 전용 공항을 계획하고 있다. 시공사는 2017년 금호건설로 결정된 상태다.
그러나 지역민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일요신문이 1월 2일 만난 흑산도 주민들은 "흑산공항이 오히려 지역경제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바라봤다. 또 해안가에 지어지다 보니 조류충돌 등 안전사고 우려가 많았다. 특히 흑산공항은 산 일부를 깎아 만든다. 해안가인 동시에 산지에도 속하는 특이한 지형이라 변수가 더 많다.
이날 기자를 안내해준 60대 택시기사 이 아무개 씨는 "방송뉴스에서 몇몇 주민들이 공항을 빨리 세워 달라고 인터뷰도 했던데, 사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며 "지금처럼 배를 타고 들어오면 관광객들이 숙박을 해서 소비가 발생하지만, 비행기를 통해 '당일치기'만 하면 지역 경제가 되레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홍어 판매점에서 만난 60대 김 아무개 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마을 보건소 대신 큰 병원에 가야 할 때 불편함은 있지만, 그렇다고 공항이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며 "기상 상태가 나쁘면 배가 뜨지 못하듯, 비행기도 뜨기 힘들 텐데, 그저 응급헬기나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참사로 흑산공항을 바라보는 주민들 시선은 더욱 불안해졌다. 흑산공항 입지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커다란 산을 거의 통째로 없애는 수준의 '대공사'이기 때문이다. 항공기의 조류충돌 가능성은 당연하고, 해안 지역 특유의 염분 탓에 기체 노후나 결함이 가속화하진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자도 흑산공항 부지와 연결된 산맥을 종일 살펴봤다. 한눈에 봐도 철새 등 자연동물이 무리지어 살기 좋은 곳으로 보였다. 산림이 워낙 울창하고 산딸기 등 열매도 많았다. 걷다 보면 각종 새들이 사람의 머리 바로 위를 날아다닐 정도였다. 시설이라곤 흑산도관측소뿐이라 사람 대신 새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분위기가 눈길을 끌었다.
#'조류충돌'보다 더 심각한 문제
실제 흑산공항은 2016년 나온 환경영향평가 초안부터 조류충돌 위험 정도가 '매우 심각'으로 나타났다. 당시 보고서는 "(흑산공항) 건설지역은 해안가와 접해 있어 물새류의 서식이 예상된다"며 "항공기 조류충돌 위험정도가 매우 심각하고, 겨울에 주로 도래하는 철새와 조류충돌 위험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경고도 '현실 축소'라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은 "정부는 겨울철 청둥오리 등 31종을 대상으로 한 조류충돌 위험성을 평가했지만, 실제 흑산공항 입지 인근에선 사계절 동안 284종 7만 8920개체 수가 평균적으로 출현해왔다"며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흑산공항 안전 우려는 조류충돌에만 그치지 않는다. 활주로 길이가 무안공항(2800m)보다도 1600m 짧은 1200m로 설계됐다. 비록 80인승 소형기 전용이지만 그렇더라도 너무 짧단 비판이 꾸준하다. 더구나 이는 흑산공항이 과거 50인승 항공기 공항을 계획한 때 설계다. 50인승에서 80인승 전용으로 바뀌었음에도 공항 설계가 그대로다.
흑산공항 추진 사업은 이렇듯 졸속 전개된 양상이 다른 지역 신공항보다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애초 흑산공항은 2016년부터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사업타당성 심의를 받았다. 그러다 2018년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에 무산됐다. 하지만 2023년 2월 환경부가 돌연 흑산공항 부지만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며 심의 없이도 공항 신설이 가능토록 했다.
일요신문은 과거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 참여한 인사 A 씨와 이날 접촉할 수 있었다. A 씨는 "조류충돌 문제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흑산공항 안전 문제에서 조류충돌은 오히려 지엽적인 부분이라고까지 했다. 그보다 '안개'와 '항공기 결함' 가능성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A 씨는 "수년을 파일럿과 환경전문가 등도 참석해 심의를 진행했다"며 "분석 결과 '시계비행'이 해소하기 힘든 문제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시계비행은 조종사가 항공기 내부의 계기를 참조하는 대신 바깥 기상상태와 구조물 등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조종하는 형태를 말한다. 자동이 아닌 '수동 착륙'을 한다는 의미다.
그는 "흑산공항 쪽은 안개가 유난히 많이 끼는 곳인데, 최근 10년 연평균 통계상으론 인천공항이 한 해 44회, 무안공항이 37회 정도 안개가 이착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집계된다"며 "흑산공항의 경우 한 해 90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상태에서 시계비행을 하면 승객 입장에선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항공기 성능 관련 우려도 크다. 예컨대 조류충돌은 엔진에만 영향을 주진 않는다. 조종석 앞창 및 기체와 충돌해도 비행기가 받는 타격이 크다. 흑산공항에 도입 예정인 미국 페덱스사의 소형 항공 'ATR' 기종이 이러한 타격을 받아도 버틸 수 있을지에 관한 조사·검증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지역 토박이인 흑산도 주민들이 체감하는 우려와 전문가 분석은 대체로 일치했다. 기자와 만난 또 다른 상인은 "동네가 해안가라 그런지 길이 더 미끄러운 것 같다"며 "옛날 비포장도로였던 시절엔 겪어보지 못한 차량 미끄러짐도 가끔 발생해서 비행기는 그런 문제가 없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는 국시모와 이상돈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18년 공동 발간한 '흑산공항 정책보고서'에도 담긴 내용이다. 보고서는 "ATR기는 땅이 젖었을 때 (흑산공항 활주로 길이) 1200m보다 착륙 길이가 길다"며 "흑산도는 연중 강수·적설량이 각각 10mm 이상인 날이 평균 10% 이상이므로 활주로 여유 길이가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제주항공 참사를 토대로 정부가 전국에서 추진 중인 신공항 건설 과정을 재검토할지가 남은 관심사다. 흑산공항뿐 아니라 전북 새만금신공항, 부산 가덕도신공항 및 제주 제2공항 등이 전부 철새 도래지나 해안가 인근에 있어서다. 새만금신공항과 가덕도신공항 주민 등도 일제히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정인철 국시모 사무국장은 "제주항공 참사 애도 기간이 지나면 전국 신공항에 관한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라며 "흑산공항의 경우 주민들 바람대로 닥터헬기 등에 예산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흑산공항이 지역의 만사형통이라는 인식 자체를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안=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