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부지 인근 숨골 180개 ‘연약지반’ 위에…화산 지형 빗물 구멍 많아, 지반 내려앉을 수도
2024년 9월 국토교통부는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2015년 11월 정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약 9년 만이다. 정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에 따르면 제2공항은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에 551만㎡(166만 6800여 평) 규모로 지어진다. 주요 시설은 활주로 1개(길이 3200m, 폭 45m), 계류장, 여객·화물터미널, 교통센터, 주차장 등으로 총 사업비는 5조 4500억여 원이다. 착공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2035년 개항을 목표로 한다.
#무안공항보다 높은 조류 충돌 위험
1월 1일 일요신문이 방문한 계획부지는 고즈넉했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지 않은 까닭이다. 도로 옆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그 뒤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도 보였다. 사업 예정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은 평화로웠다.
국토부는 환경영향평가와 기본설계 입찰 공고 등 후속 절차를 앞두고 있다. 다만 실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민들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제주특별법은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서의 경우 중앙 정부가 아닌 제주도가 심의해 도의회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이른바 ‘제주도의 시간’이다. 이에 따라 지역 의견을 수렴해 관련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일부 도민들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조류충돌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제주 제2공항 사업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1월 1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제2공항 절차 중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열었다.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피케팅을 시작한 비상도민회의는 “내란수괴 윤석열과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에 의해 국민 안전을 도외시하고 강행된 제2공항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며 “항공기 조류충돌 등 항공 안전상 입지가 불가하다는 전문기관 의견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내란집단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억지로 통과시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제주 제2공항의 조류충돌 위험성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제2공항이 들어서는 예정지 인근에 철새 도래지 4곳과 새들을 유인할 수 있는 양식장들이 많은 까닭이다. 성산 지역은 대표적인 겨울 철새 도래지다. 같은 날 제2공항 활주로 예정지 인근 해안에선 양식장에서 나온 먹이를 먹기 위해 날아온 새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국토부가 조사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제주 제2공항 지역의 TPDS(연간 피해를 주는 조류충돌 수를 나타내는 지표)는 최소 4.61, 최대 14.32로 1.72인 제주공항보다 최대 8.3배 이상 높았다. 김포공항의 TPDS는 2.89, 인천공항은 2.77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무안의 경우 0.06이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이마저도 그 위험성이 축소된 것이다. 국토부는 개체의 크기와 무리 등 심각성을 평가하는 보편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조류충돌 사례 중 피해가 발생한 것만 기준으로 삼아 위험도를 판별했다. 충돌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위험성이 높은 가마우지나 덩치가 큰 오리류 등은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계획부지 주변에는 더 많은 새들이 모이고 있다. 비상도민회의 환경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9월 계획부지 인근에서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의 까치가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여 마리의 까치는 조사가 진행되는 2주간 매일 같은 시각(오후 5시 40분~5시 50분) 대수산봉에서 비행을 했다.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 까치가 무리 지어 나타났다면 해당 지역은 까치의 서식지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제주 곳곳에 있는 수많은 숨골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화산섬인 제주에는 하천이 없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이로 인해 생긴 구멍을 숨골이라고 한다. 용암지대의 숨구멍인 셈이다. 그리고 이 빗물은 숨골을 통해 지하동굴로 들어가 지하수가 된다. 시민단체가 찾아낸 제2공항 계획부지 인근 숨골은 180개가 넘는다.
이와 관련 홍 대표는 “숨골 주변이 상당히 연약 지반이기 때문에 여기에 공항을 지을 경우 지반이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관광이냐 터전이냐, 엇갈리는 의견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지역사회 의견은 엇갈린다. 2일 성산일출봉 인근에서 만난 도민 A 씨는 제2공항 건설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A 씨는 “제주에 공항이 두 개나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 안 그래도 투기꾼들이 많은 제주에 더 많은 투기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차라리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관광업에 종사 중인 B 씨는 조심스레 “제주는 관광 도시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새로운 공항이 지어지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B 씨는 “환경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공항을 짓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제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조류충돌 문제를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도의회 측은 1일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도민의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가겠다”고 했다.
제주=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