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기체 결함? 조류 충돌로 랜딩기어 미작동 극히 드물어…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장애물 설치도 의문
이후 여객기는 짧게 선회한 뒤 9시에 원래 착륙하려던 활주로 방향(01 활주로)의 반대쪽 진입 방향(19 활주로)으로 착륙을 시도해 9시 3분 동체 착륙을 했지만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콘크리트로 만든 둔덕과 공항 외벽 등에 충돌하며 폭발했다. 4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급박하게 발생한 이번 사고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미스터리가 제기되고 있다.
#조류 충돌인데 랜딩기어 고장 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제주항공 참사)’의 정확한 사고 원인이 규명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차적인 원인으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이 꼽히고 있다. 관제탑에서 조류 충돌 경고를 받은 지 1분 만에 조종사가 조난신호인 ‘메이데이’를 3회 외친 뒤 ‘버드 스트라이크’를 2회 외쳤다.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조류 충돌 상황에서 왜 랜딩기어(이착륙용 바퀴)까지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조류 충돌로 엔진 하나가 고장났을지라도 다른 엔진이 작동하면 랜딩기어가 작동되고, 최악의 경우 수동 조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플랩(고양력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항공안전 전문가 크리스티안 베케르트는 “랜딩기어는 독립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대체 시스템까지 있어 버드 스크라이트 상황에서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극히 드물고 특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몇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조류 충돌로 양쪽 엔진이 모두 비정상 상태가 됐을 수 있고, 엔진 고장과 함께 유압 계통에도 이상이 생겼을 수 있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공식 브리핑에서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났을 경우 유압계통 이상으로 랜딩기어 작동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너무 급한 동체 착륙 시도 왜?
사고 여객기 조종사가 관제탑에 조난신호를 보낸 것은 8시 59분이고 동체 착륙이 이뤄진 시간은 9시 3분이다. 4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사고가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엔진에 조류가 빨려 들어가는 조류 충돌이 발생할지라도 엔진이 바로 멈추진 않는다는 게 항공안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종사들은 어느 정도 대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선 4분여의 짧은 시간 만에 동체 착륙이 이뤄졌다. 게다가 처음 착륙을 시도할 당시 내려왔던 랜딩기어는 물론이고 플랩도 작동하지 않았다. 동체 착륙 후에도 여객기가 속도를 전혀 줄이지 못하고 돌진했다. 이러한 정황상 스피드브레이크와 엔진 역추진 등도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류 충돌만으로 여객기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무력화되기는 매우 흔치 않은 터라 애초에 기체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누가 콘크리트 둔덕을 만들었나?
여객기가 전반적으로 무력화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동체 착륙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BBC와 인터뷰에서 영국 항공안전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는 동안 동체에 큰 손상이 없었을 만큼 동체 착륙은 최고 수준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면서 “대규모 사상자를 초래한 것은 활주로 너머 단단한 장애물과의 충돌”이라고 분석했다. 로컬라이즈(방위각 시설)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에 대한 지적인데 왜 이런 단단한 장애물이 활주로 끝에 존재했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한국공항공사는 2007년 공항 개항 당시 설치된 로컬라이저를 개량하는 공사를 2020년부터 2024년 초까지 진행했다. 당시 무안공항 운영사인 한국공항공사는 ‘부서지기 쉽게 만드는 방안을 확보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실제로는 길이 40m, 폭 4.4m, 높이 0.3m의 콘크리트 상판까지 추가 설치해 더욱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이 완성됐다.
누가 한국공항공사의 지침을 어기고 상판까지 추가해 더욱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을 만든 것일까. 이를 두고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설계사와 시공사 등에 미디어의 취재가 집중됐지만 규정대로 했다는 원칙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연료 방출 안 하고 동체 착륙 왜?
로컬라이즈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해 대형 폭발과 화재가 발생한 데는 여객기 안에 연료가 남아 있었던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사고 여객기는 연료를 모두 방출하지 않고 동체 착륙을 시도한 것일까.
4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사고라 미처 연료를 방출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고 여객기 기종인 ‘보잉 737-800’에는 연료 방출 기능(Fuel Dumping) 자체가 없다. ‘보잉 737-800’ 기종뿐 아니라 중·단거리에서 주로 쓰이는 비행기는 대부분 연료 방출 기능이 없어 비상시에는 같은 구간을 회전하며 어느 정도 연료를 소진한 뒤 착륙한다.
기체 결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항간에선 ‘보잉 737-800’ 기종이 애초 사고가 많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1997년 출시 이후 5000대 넘게 팔린 인기 기종으로 품질도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고가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워낙 판매 대수가 많아 그렇게 보일 뿐 사고 비율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