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 불법’ 가상자산법 시행 이후 70억 취득 일당 구속…수상한 자금 추적 시스템 강화 방침
수소문 끝에 A 코인은 ‘세력’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격이 크게 떨어졌을 때 미리 대량의 코인을 사들인 뒤 수십억 원을 추가로 들여 시세 조종을 해 가격을 띄운 것. 목표가도 있었다고 한다. 1년 내 최저 거래가 기준 10배 수준이었다.
물론 변수도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터지면서 암호화폐(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했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 상당한 자금을 동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세력이 운용한 A 코인은 국내 대형 거래소에서 최근 거래량 TOP5에 들 정도로 가격이 올랐는데, 목표가를 넘긴 다음 날부터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최고가 대비 절반 수준에 거래가 되고 있다.
#2. 검찰은 12월 18일 거래량을 부풀려 주문하거나 허수매수 주문으로 가상화폐 매매를 유인하는 등 해외 코인의 시세를 조종해 약 70억 원을 불법 취득한 일당을 구속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서 패스트트랙 절차로 이첩받은 첫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 위반 사건이다. 금감원은 이상 거래 통보를 받은 지 2개월 만에 조사를 완료하고 지난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뒤 처음으로 패스트트랙 절차를 이용해 사건을 검찰에 통보했다.
#가상자산법 실제 효과 얼마나 될까
사정당국에서는 가상화폐 시세조종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2024년 7월 19일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코인 시장에서 불공정거래 조사 업무가 가능해졌다. 가상자산법에서 조사대상인 불공정거래 유형을 규정한 덕분이다. 미공개정보 이용매매, 시세조종 매매, 거짓·부정한 수단을 활용한 매매 등이다.
자본시장법과 유사하게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시세조종행위에 대한 처벌도 가능해졌다. 법 위반 시 최소 1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부당 이익의 5배까지 벌금을 병과할 수 있는 엄격한 처벌규정이 적용된다.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서 #1과 같은 사례의 배후 세력을 검거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적지 않다. 검찰과 금감원 등 수사당국이 나서고 있지만, 주가조작보다 더 치밀하게 움직이는 게 이들 세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예상치 못했던 불장이 오면서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1억 400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고 리플은 3400원 선, 도지코인은 480원 선에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이 먼저 오르면 이더리움과 리플 등 메이저 코인들이 뒤따라 오르고 그 후 알트코인까지 반영되는 게 어느 정도 고착화됐는데, 이 틈을 노려 알트코인들을 활용한 세력들의 시세조종이 하나의 흐름이 됐다는 것이다.
#해외 거래소 매집 후 국내 거래소 활용이 트렌드
A 코인 외에도 10여 개가 넘는 코인에 세력이 붙었다고 하는데, 이들에는 최근 특징이 있다고 한다.
우선 발행사와 별개로 움직이고 사전에 미리 해외 거래소에서 저렴한 가격에 다량의 코인을 매집해 놓으며, 국내 대형 거래소에 코인을 옮긴 뒤 시세조종을 한다는 것이다. 신규 코인이 아니라 수년 전 발행된 알트코인을 노린다는 점이나 다수의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코인을 선호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수년 전만 해도 발행사가 시세조종 세력과 손잡고 스스로 상장 시점과 맞물려 ‘한탕’을 하는 시세조종에 나섰던 것과 사뭇 달라진 점이다.
자본시장법 코인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발행사도 모르는 코인 급등 케이스가 많은데, 대부분 어디서 사들였는지 모르는 수십억 원 규모의 코인이 한국 대형 거래소에 유입된 뒤부터 가격이 오른다고 하더라”며 “한국인이 주도하는지, 세력의 주도하는 이들의 국적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게 특징이고 이들은 전 세계 거래소 모두를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상장한 곳이 적은 코인을 선호하는 게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수사다. 코인 시세조종의 경우 주식과 달리 투자자들의 개인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세력의 정보를 확보하는 게 주식 시장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거래소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거래는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또 신고의 의무도 부여했지만 결국 신고되는 것은 거래가 이뤄진 계좌 주인에 대한 정보가 전부”라며 “세력으로 움직인다면 이들의 이름이나 거래통장 개인 정보만 확보를 한 셈이기 때문에 이들이 제3자 이름으로 할 경우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이들이 해외로 도망치거나 하면 검거할 방법이 요원하다”고 우려했다.
#진화하는 범죄 속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금융당국들도 이를 모르지 않기에 시스템을 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 산하로 총대를 메고 있는 금융정보분석원의 박광 원장은 12월 20일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적정성 위주의 검사·감독을 지속 강화해 나가는 한편 명백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위반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제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거래소 등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내부통제, 검사를 요구해 수상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더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조작 세력보다 이들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의 변호사는 “코인 투자자문 회사들도 많은데 이들의 특징은 주식 관련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면서도 증거나 흔적을 덜 남기는 게 특징”이라며 “서로 본명도 모르고 해외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명함도 주고받지 않는다. 등본을 떼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데 수사가 쉽겠느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