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업체 라디안, SSD 약점 보완 신규 제품 대상 제소…삼성 주도 표준화 작업 영향 우려, 합의 가능성도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제소
미국의 특허수익화기업(NPE) 라디안 메모리 시스템즈가 삼성전자의 ZNS 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기업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특허 침해 혐의로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분쟁 제품으로는 삼성이 출시한 PB SSD, PM1731a, PM1733, PM1735등이 포함됐다.
라디안이 보유한 기술은 ‘협력적 플래시 관리(CFM)’ 기술로 기존 SSD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술이다. SSD는 하드디스크(HDD)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저장장치지만 데이터를 저장 공간에 순서대로 저장하면서 유효한 데이터와 불필요한 가비지(Garbage) 영역이 뒤섞이기 때문에 때때로 ‘가비지 컬렉션(필요없어진 메모리를 주기적으로 삭제하는 프로세스)’이 발생한다. 가비지 컬렉션이 발생하면 진행 중이던 읽기·쓰기 동작이 멈추면서 데이터 이용 속도가 느려지고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
CFM은 시스템 설계 공간을 최적화해 가비지 컬렉션을 없애고 기존 SSD에 비해 속도와 내구성 등을 크게 개선한 기술이다. 삼성전자의 ZNS 역시 비슷한 원리로 알려져 있는데 용도나 사용빈도 등에 따라 데이터를 구역(Zone)별로 분류해서 저장한 후 구역 단위로 지우기 때문에 불필요한 가비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데이터 관리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저장속도와 서비스 품질이 30%가량 향상되고 SSD 이용 가능 기간도 4배가량 늘어난다.
라디안의 CFM 기술은 2015년 8월에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에서 ‘가장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플래시 메모리 서밋은 플래시 메모리 업계 최대 이벤트로 삼성전자 역시 꾸준히 참석하는 행사다. 라디안은 2015년 삼성전자와 CFM 기술 관련해 논의한 적이 있다는 점과 삼성전자가 당시 플래시 메모리 서밋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들어 삼성전자가 라디안이 보유한 기술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고의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디안은 배심원 재판을 요청하면서 법원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과 특허 침해 영구 금지 명령을 청구한 상태다.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의 배심원들은 특허권자에 호의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은 합의로 이어질까
인공지능(AI) 시장이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는 추세에 힘입어 전세계 기업용 SSD(eSSD) 매출 역시 성장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024년 3분기 eSSD 전체 산업 매출은 2분기 대비 29% 증가한 73억 7920만 달러(약 10조 7550억 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43.4%로 시장 1위다. eSSD 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차세대 기업용 SSD 표준 솔루션인 ZNS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SD업계 한 관계자는 “컴퓨팅 시스템에 쓰이는 하드웨어의 경우 기능이 추가되면 단가가 올라간다. 그렇다보니 현재 ZNS는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업계 등 일반적인 속도보다 더 빠르게 데이터의 ‘저장’과 ‘불러오기’가 필요한 특수한 영역에 한정돼 쓰이고 있다”라며 “그러나 차세대 솔루션인 만큼 향후 단가가 낮아지고 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확산에 따라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ZNS의 시장성 역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NVM Express(NVMe) 표준 기구 회원으로 ZNS에 대한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SD업계 다른 관계자는 “SSD 데이터가 통신하는 규격 중에 하나로 NVM은 낸드플래시(비휘발성 메모리)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은 다 활용하고 있는 표준 규격이다. 표준 규격은 전자기기 간의 원활한 호환 등을 위해서 서로 동일한 규격을 공유하고 사용하자는 약속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대표 변리사는 “예컨대 안드로이드 휴대폰 충전할 때 C타입 충전기를 쓰는 것도 다 표준화된 규격 때문인데 자사 기술이 표준 기술로 채택되면 기업에는 유리하다. 기본적으로는 표준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라서 표준이 된다는 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라디안과의 특허 소송에 패소하더라도 기술 표준화에 곧바로 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석 로한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는 “특허 침해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에는 단순히 라디안의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만약 라디안이 삼성이 따로 보유한 특허까지 무효 소송을 걸어서 ‘혁신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특허를 무효화한다면 그때 비로소 표준화 추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할 동기는 없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따라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게 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11월에도 미국 반도체사 넷리스트와 벌인 특허소송에서 패소하면서 1억 1800만 달러(약 1720억 원)를 배상하라는 미국 텍사스주 연방법원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았다.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의 넷리스트 특허 침해가 고의적이라고 판단했는데 재판부가 이를 인정할 경우 배상금이 최대 3배로 증액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2024년 8월에도 넷리스트에 3억 300만 달러(약 4420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평결을 받기도 했다.
공우상 변리사는 “미국에서의 대부분 소송이 그렇듯 합의로 종결될 가능성도 높다. 특허 침해 여지가 있다면, NPE 입장에서도 삼성의 ZNS가 표준 규격이 됐을 경우 자사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열티 받는 협상을 끌어낼 수 있다”라며 “다만 이 경우에도 삼성 입장에서는 미래 이익에 대한 손해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