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떡 앞에 두고 체할까 눈치싸움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상장 요건을 갖춘 생보사 중 상장을 가장 서두르고 있는 곳은 교보생명. 이유는 자본 확충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의 지급여력비율(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은 지난해 말 현재 196.6%. 업계 관계자는 “지급여력비율이 100% 가까이 떨어지면 법인 고객이 빠져나간다. 더 떨어지면 매각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렇듯 ‘상장 대박’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교보생명 앞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 현재 교보생명의 지분 현황을 보면 신창재 회장 37.26%, 대우인터내셔널 24%, 캠코(자산관리공사) 11%, 국가(재정경제부) 6.48%, 신인재 8%, 신용희 5.27% 등이다. 주목할 부분은 3대 주주 캠코가 2대 주주 대우인터내셔널과 국가 소유 지분까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2대주주 대우인터내셔널은 보유지분을 매각해 해외자원 개발을 위한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기대감 등에 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대주주 캠코는 한술 더 떠 오래 전부터 교보생명 상장시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것을 공언해 왔다. 2·3대 주주인 대우인터내셔널과 캠코의 지분을 합치면 35%. 일단 교보생명의 지배를 노리는 세력이 이 정도 지분만 모으면 신창재 회장의 37.26%에 못 미치지만 소버린-SK, 칼아이칸-KT&G 때처럼 ‘회오리’가 벌어질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신 회장의 숙부 부자인 신용희 씨(5.27%)와 신인재 씨(8%)의 지분 13.27%다. 이 지분이 신 회장 쪽에 선다면 46.03%. 신 회장 측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2·3대 주주의 지분과 합쳐지면 48.27%로 신 회장의 37.26%를 훌쩍 뛰어넘으며 ‘게임’은 끝난다. 지난해 2월 임원들의 집단 사의 표명 파동에서 몇몇 언론에서 거론됐듯 신용희 부자의 독자행보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업계에는 신 회장 측과 숙부 측이 사이가 원만하지 않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 ||
이에 대해 교보생명 측은 “억측을 위한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적대적 M&A는 캠코의 소유, 관리지분을 통째로 넘겨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시장에서 매각할 경우 분산되기 때문에 SK나 KT&G 때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용희 신인재 씨 지분과 관련해서도 “그분들이 여러 차례 ‘경영권에 지장 없도록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재미삼아 할 수 있는 루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상장이 급한 교보생명의 뒤를 받쳐주며 ‘생보 상장’에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인 삼성생명의 고민도 적지 않다. 삼성은 우선 그룹 차원에서 삼성차 채권단에 담보로 내준 주식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상장이 급하다. 이 문제로 4조 7000억 원대 소송도 걸려있다. 상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삼성생명의 고민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있다.
삼성생명의 대주주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로 19.34%의 지분을 쥐고 있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지분 시가가 에버랜드 자산의 50%를 초과해 금융지주회사로 변신해야 한다.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면 자회사인 삼성생명은 유사업종이 아닌 손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게 된다.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6%(보통주 기준)를 매각해야 하는 것. 이렇게 되면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틀이 깨진다. 삼성은 상장과 동시에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숙제도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에버랜드를 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다. 지주회사의 상장 자회사 지분율 요건은 현행 30%.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0.66%를 더 확보해야 한다. 상장 주가를 70만 원으로 본다면 1조 4000억 원대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삼성 측은 지난 2월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을 20%로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금융지주회사는 배제돼 쓴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그럼에도 삼성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금융소그룹 분리, 새 금융지주회사 등 이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상장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정교함을 자랑하는 삼성의 시뮬레이션이 ‘버그’ 없이 잘 실행될지 궁금하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