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로 기술 배워 ‘텐프로’ 진출 미성년자도 ‘탑승’
▲ 지난 6일 신촌 로터리 인근 주점 앞에 한 보도차량이 일을 마치고 나오는 아가씨를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각 지역마다 불법 차량 약 70~80여 대가 그들만의 최단 노선을 통해 룸살롱, 노래방 등 유명 유흥업소에 ‘아가씨’들을 태워 나르고 있다는 것. 업계에서 이른바 ‘보도차량’(‘보도’)이라고 불리고 있는 문제의 이 차량들은 유흥업소 업주에게 ‘아가씨’들을 연결해주는 공급책 역할을 맡고 있다. 보도는 주로 아가씨 8~10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승합차인 경우가 많은데 아가씨를 많이 태울수록 돈이 된다고 한다.
많은 수의 아가씨를 태워 날라야 이득이 되는 보도의 특성상 때로는 신분 확인을 하지 않고 미성년자들을 태워 나르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불법차량이 미성년자들을 유흥업소에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법에 불법을 얹는 상상초월 범죄행각이 매일 밤 도심지역에서 버젓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의 밤을 은밀히 종횡무진하고 있는 ‘보도’의 세계, 그 속으로 들어가봤다.
11월30일 저녁 9시경 마포의 한 유흥업소 근처에 그랜드카니발, 스타렉스 등 10인승 대형승합차 3대가 나란히 시동을 켜둔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20분이 지나자 폭설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미니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20대 여성들이 삼삼오오 차량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앳돼 보이는 얼굴들이 대부분. 그중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도 눈에 띄었다.
유흥업소 관계자 이 아무개 씨(45)는 “저기 서 있는 여자들이 바로 ‘보도 아가씨’들이다. 자신이 등록된 보도를 타고 또 다른 룸살롱으로 이동할 것”이라면서 “보도실장들이 각 업주들에게 여자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대가로 아가씨 시급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보도차량을 운전하는 이른바 ‘보도실장’과 유흥업소 업주, 유흥업소 종사자(아가씨)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돈 단위는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액수가 높다고 한다. 잘나가는 보도실장들은 한 달에 1500만 원을 벌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다.
보도실장들이 큰돈을 벌 수 있는 배경에는 실장들이 업소 업주 대신 아가씨들의 시급을 관리하는 ‘이상한’ 시스템 때문이다. 아가씨가 속칭 테이블을 뛰거나 2차(성관계 애프터)에 나갈 경우 보도실장을 통해야만 시급을 받을 수 있다. 즉 보도실장이 업주로부터 아가씨 시급을 받아 챙겨둔 다음 20~30% 정도의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를 아가씨에게 지급한다. 안전 교통비 명목이라고 한다.
보도실장들은 최대한 많은 수의 아가씨들을 관리해야 떼어갈 수 있는 수수료가 높아진다. 때문에 아가씨 10여 명을 룸에 데려다주고 난 후 이 아가씨들이 룸을 ‘뛰는’ 시간에 또 다른 아가씨들을 다른 룸살롱으로 운반한다. 유흥업소 간의 짧은 거리를 ‘다람쥐 택시’처럼 치밀하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택시로 치면 기본요금에서 1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최단 노선인 데다가 이런 방식으로 아가씨들을 공급하기만 해도 하루 25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웬만한 베테랑 택시기사 월급을 하룻밤 안에 거머쥐는 셈이다.
이 씨는 “아가씨 1명당 시급이 9만~11만 원인데 여기서 보도실장이 2만~4만 원을 떼어 챙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아가씨 10명을 룸살롱 3~4곳에 태워 나르기만 해도 4시간에 200여 만 원은 쉽게 거머쥘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애프터’ 나가는 아가씨들의 시급은 더 높기 때문에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서 애프터 아가씨만 전문으로 운송하는 보도실장도 있다고 한다. 아가씨가 2차를 나가는 대가로 받는 돈은 30여 만 원, 이 가운데 실장이 챙기는 돈은 9만~10만 원 정도로 단순히 룸에서만 뛰는 아가씨들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큰돈을 챙길 수 있어 인기라는 것.
이처럼 떨어지는 떡고물이 많다보니 최근 들어 유흥업계 큰손들이 너도나도 ‘보도차량’을 맡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일도 흔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또 다른 업소 관계자 김 아무개 씨(41)는 “마포, 강서 지역의 경우 이미 보도가 포화 상태다. 그래서 새로운 보도실장이 등장하면 조폭들이 개입해서 무언의 협박을 한다. 신생 보도차를 부순다든지, 해당 보도차 소속 아가씨를 자기네 쪽으로 빼돌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겁을 준다”면서 “전직 조폭 출신, 잘나가던 인텔리 사업가 출신들이 보도실장을 하기 때문에 배경도 좋아서 대적하기 어렵다. 따라서 뉴페이스가 신촌, 마포 같은 인기 지역에서 보도실장 자리를 얻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도실장 간의 이권 다툼이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일어나도 이를 제재하기 어려운 이유는 보도 자체가 이미 불법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선뜻 경찰에 신고하기 어렵고 설령 경찰에 의해 단속을 당해도 벌금이 150만~200만 원 선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부분 벌금을 내고 며칠 뒤에 보도를 재개한다고 한다. 김 씨는 “어차피 월 1000여 만 원을 벌어들이는 판국에 벌금을 몇 번 낸다고 해서 큰 부담이 되겠나”라고 말했다.
보도실장 자리를 거머쥐게 돼도 다툼은 끝이 없다. 아가씨를 차지하기 위한 보도실장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룸에 ‘쓸 만한’ 아가씨들을 많이 공급해줘야 그만큼 받아낼 수 있는 수수료의 액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족한 아가씨 수를 채우기 위해 미성년자들을 보도에 태우는 일도 벌어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여우알바, 밤알바 등 유흥업소 알바 사이트를 통하면 손쉽게 보도실장과 만날 수 있다. 간단한 면접을 거치면 그날 밤 바로 보도를 타고 룸을 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성년자의 보도알바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보도알바 아가씨로 위장해 지난 12월 5일 ‘여우알바’ 사이트를 통해 한 보도실장을 직접 만나봤다. 특이한 점은 면접에서 보도실장이 이름과 나이를 물어봤지만 이를 증명할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10분간 간단한 면접을 거친 후 당일 저녁 바로 보도차량을 탈 수 있었다. 모든 게 너무 쉬워 이상할 정도였다.
저녁 8시 반경 올라탄 보도 안에는 8명의 아가씨들이 있었다. 보도실장은 “신생 아가씨 4명을 제외하면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다. 그래도 너무 친한 척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이동 중에 이상하리만치 아가씨들끼리 말이 없었다. 마치 서로를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동 중 미성년으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어려 보여서 들키면 어떡하려고 하느냐”고 떠보며 물었더니 그는 한참 망설이다 자신의 휴대폰에 “날 신고하려고 하느냐. 어차피 룸에서 당신 고객 빼앗아갈 일 없을 테니 안심해라. 같은 처지에 이상한 짓(신고)하면 가만 안두겠다”는 내용의 글을 찍어 보여줬다. 사실상 자신이 미성년자임을 인정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룸 알바 중간마다 보도실장한테 “고등학교 동생 같은 애(아가씨)들만 있으니까 ‘장사’가 안 된다”고 떠보며 묻자 실장은 “미안하지만 어린 애들이 잘 팔린다. 강남 쪽은 단속이 너무 심해서 미성년자 애들은 어쩔 수 없이 강남을 제외한 서울 일대에서 보도를 뛸 수밖에 없다. 이 쪽(신촌 및 강북)은 단속도 뜸해서 일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래도 어린 애들인데 경찰한테 걸리면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실장은 “미성년자 보도의 경우 키스방, 안마방 같은 퇴폐업소에 많이 돌린다. 표면적으로는 성관계를 안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라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안에서 성적 접촉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보도실장들 다수에 따르면 보도알바를 뛰는 여성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리고 최근엔 미성년자의 수도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첫 유흥알바를 보도로 시작해서 기량(?)을 쌓다가 강남 룸살롱이나 텐프로로 빠지는 게 이들의 꿈이라고 한다.
미성년자가 보도로 몰리는 이유는 일을 시작하는 과정이 간편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도실장에게 전화 한 통만 하면 면접 후 바로 룸을 뛸 수 있는 것. 하룻밤에 많은 테이블(일자리)을 제공하고 시급을 관리해주는 보도실장이야말로 아가씨들에겐 재무를 담당해주는 매니저인 셈이다.
한 보도 아가씨에게 “실장에게 수수료 주는 게 아깝지 않느냐. 개인적으로 알바를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묻자 그는 “보도를 타고 다녀야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수의 룸살롱, 노래방에서 일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프터’ 뛸 때 보도실장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아서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법 보도와 업주들의 검은 커넥션 사이에 미성년자들이 유흥업계로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까지 경찰 쪽에선 제대로 된 단속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국외대 최경희 교수는 “보도알바 세태는 신 미성년 착취 현장이다. 미성년자의 성을 팔아 수수료를 떼먹는 극악무도한 일은 후진국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정부 측의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