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홍명보요?ㅋㅋ 저 욕도 하고 성깔도 있어요
▲ 곽태휘는 올해 정규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A매치까지 종횡무진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11 수비상을 받았다. |
# 숨돌릴 틈 없었던 경기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올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수확이 많았던 한 해였다. 정규리그에서도 시즌 초반에는 상승세를 나타내다가 잠시 주춤했지만, 그래도 좋은 마무리를 한 것 같다. 대표팀도 호주와의 평가전을 제외하곤 전부 출전했는데 내년에 중요한 대회들이 기다리고 있어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울산 현대가 ACL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대륙별 우승팀들이 모이는 클럽월드컵에 나갈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열심히 돌아다녔고, 성적도 냈고, 그리고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를 수 있어 다행이었다.”
# ‘철퇴축구’=곽태휘
울산은 지난해부터 K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김호곤 감독의 ‘철퇴축구’가 큰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곽태휘는 ‘철퇴축구’라는 별칭이 팀 이미지를 대변한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한다.
“‘닥공’보다는 ‘철퇴’가 수비를 더 극대화한 표현이기 때문에 팀에서 수비를 맡고 있는 나로선 기분 좋은 타이틀이다. 울산이 수비를 더욱 강화하면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장인 날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겉으로는 순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한성격’하는 날 주장으로 믿어준 선수들이 정말 고마웠다.”
# 주장 유전자?
▲ 지난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예선전. 곽태휘가 저돌적인 수비력을 선보였다. 한국의 2-0 승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나도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오랫동안, 어느 팀을 가도 주장을 맡게 되는 게 재밌다. 보시다시피 내가 카리스마 강한 이미지도 아니고, 리더십이 뛰어난 편도 아닌데 주장으로 뽑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오랜 시간 ‘완장’을 차다보니 만약 안 차게 되면 무척 허전할 것 같다(웃음). 이게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주장을 맡게 되면 수당이나 인센티브가 주어지는지를. 그랬더니 곽태휘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런 건 없다. 전남에 있을 때는 한도 50만 원짜리 법인카드가 나왔다. 울산에서는 아마 30만 원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쓰는 돈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다. 후배들이 내 말을 잘 따르고, 좋은 팀워크가 경기력으로 승화되는 걸 느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올 정도의 짜릿함이 생긴다.”
아무래도 소속팀에서 주장을 할 때와 대표팀에서 주장을 할 때는 큰 차이가 있을 듯했다.
“처음에 주장을 맡고 나서 부담이 굉장했다. 날고 기는 선수들이 모여있는 대표팀에서 내가 주장다운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박)주영이랑 (김)상식이 형, 우리 팀의 이근호 등이 많은 도움을 줬다. 다른 선수들과는 소집될 때마다 거리를 좁혀 나갔다. 2~3일 발 맞춰보고 경기를 뛰기 때문에 딱히 주장이라고 해서 할 일이 많지는 않더라. 그런데 대표팀 소집이 될 때마다 점점 팀워크가 좋아지는 걸 느꼈다. 팀워크가 가장 좋았을 때가 이란전이었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선수들의 의지와 열정은 어느 경기보다 뛰어났었다.”
▲ K리그 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근호, 곽태휘, 이동국(왼쪽부터). |
▲ 눈발이 날리는 시상식날 저녁 곽태휘가 아내 강수연 씨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
어느 매체의 기사에선 곽태휘를 가리켜 ‘박지성의 성실함과 홍명보 감독의 카리스마’를 겸비한 선수라고 설명했다.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는 외모에 ‘주장’이라는 바른생활 이미지가 섞여 있어 그라운드에서 보이는 곽태휘는 정직해 보인다. 그런데 그는 자신도 가끔은 욕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수비를 맡다보니 종종 상대 선수와 신체적인 접촉이 생긴다. 비신사적인 태도를 보이는 선수를 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중계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포털사이트의 ‘곽태휘 욕’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뜨게 됐다. 그런데 나도 사람이고 화를 낼 줄 알고 흥분도 하고 욕도 한다. 더욱이 난 ‘범생이’ 스타일이 아니다. ‘에프엠’처럼 사는 걸 싫어한다. 빈틈도 많고 자유롭게 사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이탈도 하고 소리도 치고 욕도 하며 사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 지난 3월 20일 일본에서 열린 2012 AFC챔피언스리그 울산 현대와 도쿄FC의 경기에서 곽태휘가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2-2 무승부. 사진공동취재단 |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 후 곽태휘에게 주장을 맡겼던 최강희 감독. 조광래 감독의 경질 이후 대표팀이 잠시 어수선했지만 최 감독의 등장은 선수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고 한다.
“감독님이 대표팀 소집 후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선수들을 위한 말씀만 전하셨다. 어느 대표팀보다 분위기가 편했고, 재미있었다. 감독님이 표정에 변화는 없으시지만 유머러스한 면이 많다. 무엇보다 기존의 ‘국내파’ ‘해외파’란 단어에 거부감을 나타내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감독님 스스로 그런 단어를 쓰시지 않겠다고 하셨던 부분이 선수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곽태휘는 내년 6월, 월드컵 최종 예선전을 마치고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한 최 감독의 의사에 대해선 다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감독님이 대표팀을 이만큼 만들어 놓으셨다. 감독님의 색깔과 축구 전술, 철학 등이 지금의 대표팀에 다 담겨있다. 그런데 예선전 통과 후 본선 앞두고서 새로운 감독님을 맞이하게 된다면 선수들은 또 다른 색깔의 감독님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을 것이다. 아마 월드컵 1년 앞두고 새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더 단단한 조직력을 다져가야 하는 시기에 모든 걸 엎고 새로운 판을 다시 짜야 한다면 선수들도 새로 오신 감독님도 서로 힘들고 부담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스포츠는 결과가 중요하다. 만약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받아든다면 최 감독님의 선택이 더 존중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아직 풀지 못한 월드컵의 ‘한’
부상만 없었더라면 곽태휘는 2010 남아공월드컵 무대에 있어야 했다. 월드컵 직전에 치러진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남아공으로 가지 못하고 목발을 짚은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월드컵 나간다고 멋진 수트까지 입고 단체 촬영까지 했는데 결국 그 수트는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두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마음 고생을 했고, 도착 후에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래도 한국이 월드컵 원정 최초로 16강에 진출하면서 대표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살짝 마음이 시리더라. 뭐, 어쩌겠나. 내 팔자이고 내 운명인걸. 브라질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월드컵 도전인 만큼 앞으로 남은 예선전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곽태휘가 속한 울산 현대는 12월 9일 오후 4시 일본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북중미 챔피언 CF몬테레이와 클럽월드컵 첫 경기를 펼친다. 만약 이 경기에서 이기면 4강전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첼시와 맞붙는다. 울산 입장에선 ‘빅 매치’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CF몬테레이를 이겨야 하는 상황.
“멕시코 우승팀이 잘하는 팀이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 선수들은 모두 첼시와의 맞대결에 관심이 가 있다. 그 게임을 이겨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라 선수들 모두 죽기살기로 뛰어다닐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하는 클럽월드컵에서 올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곽태휘는 울산 현대와 1년 계약이 남아 있다. 그러다보니 벌써부터 중동의 유력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는 어떤 상황일까.
“아직 이적에 대해선 구체적인 얘기를 들은 게 없다. 시즌 중 좋은 조건의 이적 제의가 있었지만 김호곤 감독님의 강한 만류로 잔류했다. 만약 좋은 조건의 러브콜이 있다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에이전트에서 움직이고 있고 올해 안에 내 거취가 결정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