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헌재의 시간”이라며 회피…“사법부 정치 편향” 주장 되풀이
일요신문은 전 강사에게 어떤 구체적 자료·근거를 토대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지 물었다. 그는 '자기 확신'이 강해 보였지만 정작 대답은 피했다. 아직은 논리적 근거보단 감정적 구호가 강해 보였다.
#계엄 '미친 짓'이라더니… 돌연 "계몽령"
전 강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 후 2024년 12월 6일 처음 시국 관련 목소리를 냈다. 본인 유튜브 채널 '꽃보다전한길'에 올린 "비상계엄은 미친 짓" 영상을 통해서다.
그는 당시만 해도 "비상계엄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비상계엄 자체가 가장 잘못"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왜 그랬을지 생각해보면 영부인 범죄 사실을 향한 특검 등 공세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다 1월 19일 전 강사는 돌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본인 유튜브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부정선거 등 의혹에도 국정원과 감사원 등의 점검·감사를 회피했다"며 "뭔가 켕기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 강사는 갈수록 자기 구호를 노골화했다. 1월 25일과 2월 2일 각각 서울 여의도와 부산 집회에 참여해 부정선거 의혹 및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쳤다.
이 밖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 등을 주장했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는 전 강사를 따르는 수강생들의 유사한 구호로 가득해진 상황이다. 게다가 전 강사의 유튜브 영상에는 한 40대 남성이 "사제 폭탄을 준비 중이다. 선생님 말씀에 주저앉아 울었다. 인생 바치겠다"는 댓글을 남겼다가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근거' 묻자 "지금 중요한 건…" 중언부언
일요신문은 지난 1월 25일부터 전 강사에게 부정선거 의혹의 근거를 설명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전 강사는 인터뷰에 응했으나, 약속 직전마다 "바쁘다"며 일정을 연기했다. 결국 5차례 미루다 지난 2월 2일 전화 연결이 닿았다. 다만 무슨 근거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는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ㅡ 부정선거 근거는?
"(기자가 보낸) 사전질문지를 보니까 부정선거 위주로 물었던데, 제가 지금 부정선거 2탄 영상을 준비 중이다. 그 전에 말씀드리긴 좀 그렇다. 이제 부정선거가 아닌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정치적 편향된 재판관들이 법치를 망가뜨리고 있다."
ㅡ 부정선거를 통해 선관위가 얻을 실익이 뭐가 있나?
"선관위 위에 있는 지도자들이 누구인가. 대법관 등 전부 법관들이다. 그들끼리 카르텔이 있다. 부정선거 관련 소송이 매우 많았는데 전부 (원고가) 패소했다.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하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기 힘든 것이다."
ㅡ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한 대법관이 부정선거 관련 재판까지 맡진 않았다. 다른 대법관들이 그동안 전부 조력해왔단 뜻인지?
"그들의 대장이 대법관이지 않나. 지금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는 판사들이 사법부 요직을 차지했다. 그들이 선관위와도 관련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ㅡ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형식 헌재 재판관은 김진태 강원지사와 친척, 윤 대통령이 임명한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제부인데?
"그건 몰랐던 사실인데, 그렇다면 언론에서 그 사람도 물러나라고 해라."
ㅡ 얼마 전 본인 유튜브에서 백지광고가 실린 '스카이데일리' 신문을 들고선 민주당 등의 언론 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과거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와도 비교했다. 그런데, 스카이데일리는 오래 전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 등을 내보내온 곳인데. 어떤 입장인지?
"저는 스카이데일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5.18 북한군 침투설 등을 보도해왔는지도 몰랐다. 민주당이 은행장들한테 그 신문에 광고하지 말라고 압박을 했다기에 신문을 펼쳤을 뿐이다."
ㅡ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제안한 토론을 거부했다. 당시 "이 의원이 부정선거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었는데, 이 의원이 "아무렴 전한길 씨보다 부정선거론자들의 논리와 허접함을 모르겠나"고 응수했다. 입장은?
"저는 지금도 같은 입장이다. 이준석 의원이 잘 몰라서 그런 거다. 원래 사람은 무지해서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저도 예전엔 부정선거가 음모론인 줄 알았다. 이준석도 예전의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ㅡ부정선거 근거 영상은 금방 공개하나?
"2월 첫째 주쯤…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헌법재판소 심판이니까, 제가 목표로 하는 건 하나 뿐이다. 대통령 복귀다."
전 강사는 인터뷰에서 △정치인과 언론 등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저는 정치할 생각 없고 강사의 길을 걷겠다 △이승만의 공을 부각하면 극우, 과를 부각하면 진보로 낙인찍어선 곤란하다는 본인 의견을 꼭 강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마법사는 조작 가능…부정선거 '팩트체크'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요 근거는 ①선관위가 국정원과 감사원의 점검·감사에 비협조적 ②일부 지역에서 민주당의 '관내사전투표 값에서 당일투표 값을 뺀 값'이 같거나 유사하고, 민주당의 사전/당일 득표율 등이 특정 함수 공식에 부합 ③이른바 '형상기억종이'와 '배춧잎 투표지' ④콩고 등 부정선거 발생 국가들의 한국 개표기 사용 등이다.
이뿐 아니라 QR코드 조작, 투표용지의 투표관리관 직인이 뭉개짐 등 무분별한 의혹 제기만 100가지가 넘는다. 이는 결국 '제대로 조사해보자'는 구호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는 전부 사실과 다른 얘기다. 선관위를 피고로 한 부정선거 소송이 2020년 21대 총선 이후에만 126차례 진행됐다. 전부 원고 패소였다. 그해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제기해 2022년 나온 대법원 판결이 대표 사례다.
하나씩 살펴보면, ①에서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는 '부정채용' 사건을 살피는 게 목적이었다. 부정채용 감사를 부정선거에 연결 짓는 논리는 인과관계에 맞지 않다.
국정원의 선관위 시스템 보안점검은 선관위가 먼저 요청해 진행됐다. 점검 결과 선관위 서버의 일부 취약점이 발견됐으나, 당시 선관위는 보안시스템을 미리 개방한 상태였다. '해커가 다른 보안망을 다 뚫었다는 전제'에서 진행된 점검이란 의미다. 특히 선관위의 선거망 서버는 외부 접속이 차단된 폐쇄망이다. 선관위는 "내부 조력자가 없는 한 해킹은 물리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②에서 민주당의 일부 지역 '관내사전투표-당일투표 값'이 일치, 기타 수치도 특정 함수 공식에 부합한다는 등의 주장은 언뜻 통계·수학적 분석처럼 비치지만 그렇지 않다.
비슷한 생활환경과 여론이 형성된 지역사회에서 각종 수치가 같거나 비슷하게 나온 경우는 2020년 21대 총선 이전부터 몇 차례 있었다. 특히 투표 조작세력이 각종 수치를 맞추거나 특정 함수에 끼워 맞추려면, 당일투표 참여율과 득표율을 미리 알아야 가능하다. 개표가 완료된 뒤에야 조작이 가능하므로 '예언의 마법'이 있어야만 한다.
③은 진즉에 검증이 끝난 사항이다. 여기서 '형상기억종이'란 부정선거론자들이 만든 개념이다. 개표 후 접힌 흔적 없는 투표지들이 발견, 이를 선관위가 '다시 펴고 오래 두면, 새 종이처럼 빳빳해질 수 있다'고 해명하자 조롱 의미로 만든 표현이다. 중국과 북한에선 투표지를 안 접는다고 한다.
이 종이는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부정선거 소송 때 실제 감정이 이뤄졌다. 민 전 의원 측이 추천한 전문가가 합류, 이들이 문제로 삼은 빳빳한 투표지들을 현미경으로 감정한 결과 '접힌 흔적'이 발견됐다. 흔적 없는 투표지도 일부 있었으나, 이는 투표자가 도장 번짐을 우려해 안 접었거나 느슨하게 돌돌 말아 넣은 종이로 파악됐다.
그 외 '배춧잎 투표지'는 녹색인 비례대표 투표지와 흰색인 지역구 투표지가 일부 겹쳐 나온 투표지를 말한다. 이 또한 부정선거론자들이 "가짜투표지가 발견됐다"며 만든 말이다. 그러나 이는 선관위 직원이 출력 중인 지역구 투표지를 빨리 꺼내고자, 용지 끝부분을 미리 손으로 잡고 있을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미 공개시연 등에서 여러 차례 확인됐다.
④콩고 등 한국산 개표기 사용 국가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전제부터 잘못됐다. '개표기' 자체가 존재하질 않는다. 우리나라도 수개표다. 부정선거론자들이 말하는 개표기는 실은 '투표지분류기'다. 말 그대로 투표지를 분류하는 기기다.
콩고 등이 한국산 투표지분류기를 쓴 건 맞지만, 이 나라 부정선거는 정부가 유권자 명부를 빼돌리고 조직적 매표에 나선 게 핵심이다. 투표지분류기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밖에 윤 대통령 측이 최근 헌재에서도 주장한 '뭉개진 투표관리관 직인' 등도 민 전 의원 재판 당시 감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나왔다. 역시 민 전 의원 측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함께 나선 감정 결과였다. QR코드 위조 여부 등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전국 대단위 선거에서 조작을 하려면, 투표 인원과 각 후보 득표수를 미리 알아맞히고, 가짜 투표지를 대량 제작·인쇄 후 전국에 유통하며, 개표 생중계 과정에서 선관위 서버를 탈취해 실시간 해킹을 하면서, 선거 보조원과 참관인 및 각 정당 관계인 수만여 명의 눈을 일제히 숨겨야 한다. 상식선에서도 부정선거는 불가능하다.
한편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는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오는 2월 11일 신문이 예정됐다. 이날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도 윤 대통령 측 증인으로 나온다. 백 전 차장은 "선관위가 보안점검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신문은 정치 논쟁으로 비화할 여지가 있다. 국정원이 말을 바꾸고 있어서다. 국정원은 '선관위 시스템 부실' 점검 결과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하루 전인 10월 10일 발표했다. 당시 국정원 관권선거 논란이 불거지자, 국정원은 "선관위가 먼저 요청한 점검으로, 여야 참관인도 참여했다"며 부실조사와는 스스로 거리를 뒀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