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연일 메시지 전파, 당도 동참 기류…조기 대선 시 중도층 등 돌릴 가능성 우려
여기에 예상외로 단단하게 뭉쳐진 보수 지지층 결집은 윤 대통령에게 싸우는 명분을 제공하며 옥중정치 경로를 더욱 강화시키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외연상 옥중정치에 적극 동참하는 기류가 강하다. 하지만 조기대선이 닥쳐올 경우, 중도층 민심 이반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옥중정치로 적극적 방어
윤 대통령은 2월 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그리고 나경원 의원을 만났다. 이날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면서 여당의 단합을 당부했다고 한다.
나경원 의원은 30분가량 진행된 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당이 하나가 돼서 20·30 청년들을 비롯해 국민께 희망을 만들어줄 수 있는 당의 역할을 부탁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여러 국제 정세, 세계 경제와 관련해서 대한민국 걱정을 많이 했다”고 윤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 “사실상 의회가 민주당 1당 독재가 되면서 어떤 국정도 수행할 수 없는 부분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을 통해 국민이 그동안 민주당 1당이 마음대로 한, 국정을 사실상 마비시킨 여러 행태에 대해 국민들께서 알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한다고 비판하면서 ‘나치 독재’에 빗대기도 했다고 한다. 나 의원은 “나치 정권도 선거를 통해 집권한 것처럼 (민주당도 그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의회 독재를 이야기하다가 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이날 면담에 대해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 대통령이 다양한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민주당을 강하게 때렸는데 말하는 동안 결기가 대단해보였다고 들었다”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한편 2030 청년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여당의 지지세를 중도로 확장시키려는 메시지도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 대통령 옥중정치는 간헐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가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설 연휴를 앞둔 1월 24일엔 변호인단을 통해 “설날이 다가오니 국민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난다”며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19일 변호인단을 통해 낸 메시지에서도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일부 시위대를 향해서는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평화적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 달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2월 12일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두고 낸 네 번째 담화에서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고, 해가 바뀐 직후인 1월 1일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집회자들에게도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1월 15일 체포되면서 공개한 영상메시지와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올린 육필 원고에서는 “계엄은 범죄가 아닌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1월 21일 진행된 헌법재판소 3차 변론부터 2월 6일 6차 변론까지 직접 출석, 피청구인으로서의 방어에도 적극 나섰다. 윤 대통령은 2월 4일 열린 5차 변론에 나가서는 12·3 비상계엄에 관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국회의원을 끌어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윤 대통령 옥중정치가 계속되자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장면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12·3 계엄 사태 직후 수사단계에서 윤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진술만 쏟아졌는데 최근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 등의 증언이 윤 대통령 측 주장과 동조화된 상황이 상당 부분 나타나기도 했다. 심리 속도를 재촉해왔던 야권은 물론, 심리를 맡은 헌법재판소로서도 곤혹스러워진 부분이다.
#옥중정치 동력은?
윤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수감됐던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상적 활동은 물론, 운동도 잘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이런 심리적 상황이 옥중정치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는 정치권의 해석도 나온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석열 대통령 근황이 2월 5일에는 일부 구체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평소에는 내부에서 변호인 접견과 운동을 하고, 탄핵 심판 변론 참석 날에는 머리 손질 및 화장을 구치소 외부에서 받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2월 5일 국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주요 증인에 대한 현장(서울구치소·서울 동부구치소·경기 의왕구치소) 청문회를 진행했다. 국조특위는 구치소 관계자 면담을 통해 파악한 윤 대통령의 근황을 국조특위 야당 간사인 한병도 민주당 의원을 통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3.67평 규모의 독거실에 수감돼 있다”며 “방 안에는 TV와 화장실이 갖춰져 있고, 독거동에서 매일 1시간씩 운동할 수 있는데 적당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또 “시간제한이 없는 변호인 접견은 매일 이뤄지고 있다”며 “일반 면회는 1일 1회 가능한데, 가족 접견 등은 개인 사항에 대한 것이라 구치소에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의원은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할 때마다 앞 머리카락을 세운 스타일로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선 “구치소 내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헌재와 협조해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탄핵소추로 파면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 경우, 윤 대통령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수감생활을 몹시 힘들어했던 박 전 대통령은 수많은 면회 신청을 거절했고 은둔했다. 몹시 억울해했지만 박 전 대통령 본인 의지가 철저하게 수동적 상태에 머물면서 옥중정치가 아예 성립될 수 없었다. 성격이나 인생 역정을 살펴볼 때 대통령 딸로 태어나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옥중정치의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공고하게 다져진 보수층 지지세가 윤 대통령 옥중정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여당이 야당 지지율보다 높다는 결과치가 속속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을 적극 옹호해오면서 차기 대선 유력주자로 급부상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지율이 여권 잠룡 중에서 가장 높게 나오는 것도 윤 대통령 옥중정치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심지어 보수 정치권에서는 부패혐의로 수감 중이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좌파진영 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기억을 소환하며 옥중정치의 성공사례를 호명하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로 2017년 7월 1심 재판에서 9년 6월, 2심 재판에서 12년 1월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수감됐는데 그는 수감 상태에서도 쪽지와 서한, 측근의 전언 등을 통해 좌파 노동자당(PT)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등 사실상 당을 이끌었다.
룰라의 옥중정치가 지속되고 여론의 지지세까지 따라오던 와중에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2021년 3월 룰라 대통령에 대해 부패 혐의를 적용해 선고했던 실형을 무효로 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룰라는 2022년 브라질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윤 대통령 옥중정치가 보수진영에 적잖은 파급이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얘기했다.
“옥중정치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내 뒤로 물러나 있다가 수감생활 도중이었던 2020년 3월 총선 직전에 당시 보수 정치권의 단합을 촉구하는 친필 편지를 썼지만 효험이 없었다. 윤 대통령 옥중정치를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폭주·탄핵난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정치적 명분을 강조하고 있다.”
#원심력 작용 우려
여론조사 지형에 힘입어 당내에서는 윤 대통령 옥중정치에 일단 호의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2월 6일 국회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진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쇄신을 위해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질문에 “인위적 거리두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선을 그었다. 그리고는 “직무 정지가 됐어도 현직 대통령”이라며 “조기 대선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몇몇 의원들은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박수영(부산 남구) 김미애(부산 해운대을) 의원은 2월 1일 부산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대통령실 참모 출신인 강명구(경북 구미을) 조지연(경북 경산) 의원이 2월 6일 윤 대통령 탄핵 재판에 방청을 신청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당내에선 옥중정치에 기대는 모습에 대한 걱정도 많다. 조기대선이 열린다면 박빙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대로 가면 중도 표심을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재섭 조직부총장은 2월 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만에 하나 (탄핵이) 인용된다고 했을 때 무방비 상태로 대선이 치러지는 것보다는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보수 진영 내에서 대통령 자체보다 보수의 가치에 동조하는 유권자들을 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공간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수도권 의원은 “중도 표심도 그렇지만 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의존했을 때 더 큰 걱정은 당의 분열”이라고 했다. 박근혜 탄핵 당시 바른정당 분당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도 “눈에 보이는 지지율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 이걸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윤 대통령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