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지지층 연이어 대규모 집회, 늘어난 2030 눈에 띄어…여권 차기 경선 ‘윤심 영향력’ 갑론을박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당시 이탈표가 나왔던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과의 ‘원팀’ 모드 경향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탄핵이 인용된다 해도 여권의 대선 경선은 ‘윤심’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중도 확장성에 악재가 될 것이란 경고음도 쏟아지지만 결국 친윤계가 지지하는 후보가 우위에 설 것이란 관측이 퍼지고 있다.
![2월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사진=연합뉴스](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4/1739495471958333.jpg)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윤 대통령 몰락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12월 7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의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쏟아냈다.
정치권 예상은 빗나갔다. 윤 대통령이 계엄 이유로 거론했던 ‘야당 입법 폭주’ 논리에 공감하는 보수층 사이에서 민주당 비토 기류가 확산됐다. 여기에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은 공세로 전환했고 강력한 저항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여권에 일방적으로 불리했던 지형은 여야가 대등한 수준이거나 일부에서는 여당이 앞선다는 수치까지 나오면서 12·3 계엄사태 직후와는 완전히 다르게 뒤집어졌다. 여권은 ‘침묵하고 있던’ 보수 지지층의 결집,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이 높은 중도층의 합류 등을 이유로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 소추되고 구속기소까지 됐지만 위축된 모습 없이 방어선을 더욱 강하게 구축 중이다. 헌법재판소 변론에 직접 참여하며 법률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공수처 수사 때도 여러 차례 절차적 하자를 주장한 바 있다. 내란 혐의 수사, 탄핵 심판 내내 윤 대통령이 직접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 저항 엔진에 강력한 윤활유로 작용하는 것은 탄핵 반대를 외치는 보수 지지층의 목소리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소’ 수입 반대 시위,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시위 등 진보 진영 전유물이었던 대규모 집회가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선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가 연출됐다.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전국에서 연쇄적으로 열리고 있다.
2월 8일 대구 동대구역 박정희 광장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는 대다수 신문의 1면 사진을 장식하면서 전국적 주목을 끌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국가비상기도회 형식의 집회에는 매일신문이 항공사진 AI 분석을 한 결과 15만 명 인파가 운집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날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동대구역이 생긴 이래 하루 이용 인원으로는 최대인 8만 7000여 명이 동대구역을 통해 지하철을 이용했다.
2월 8일 대구를 비롯해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2030 세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2030 남성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오고 있다. 이는 ‘보수 집회’가 과거와 달리 확장성까지 갖췄다는 의미로 정가에서도 그 파괴력에 주목한다.
야권은 경계심을 숨기지 않는다. 박구용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은 2월 8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서울서부지법 폭력난동 사태를 옹호하는 청년들을 겨냥해 ‘외로운 늑대’로 규정하며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청년 비하 논란을 일으켰고 그는 원장 직을 사퇴해야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2030까지 동조화 세력에 가담하면서 윤 대통령의 힘은 빗자루를 넘어 진공청소기 수준으로 올라서 여러 세력을 자신의 세력권 아래로 빨아들이고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지만 이미 현실화된 힘”이라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 면회를 마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2월 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4/1739495609892351.jpg)
지지율 회복에 고무된 여당은 대통령과의 동조화 현상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 의원들 접견 행렬이 줄을 잇고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 방청에 나서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여럿 나왔다. 접견을 마친 의원들이 의기양양하게 윤 대통령 메시지를 전하고, 방청에 나선 의원들은 헌법재판소를 맹폭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윤 대통령이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순환 효과를 낸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2월 3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경원 의원을, 2월 7일 윤상현 김민전 의원을 각각 접견했다. 2월 10일에는 김기현 전 대표와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정점식 박성민 의원 등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김기현 전 대표 등과의 30분가량 면회에서 “국민들, 특히 청년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당 지도부는 중앙정부와, 의원·당협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서 어려운 분들과 자립 청년, 영세 자영업자를 잘 챙겨달라”고 말했다고 김 전 대표 등이 전했다. 2030 등 지지층을 겨냥한 옥중 메시지가 나온 셈이다.
통상 보수 정당 의원들은 장외 집회 참석엔 머뭇거리고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열리는 탄핵 반대 집회엔 참석자들이 다수 나온다. 대구에서 열린 2월 8일 집회에는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 등 대구경북지역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여 명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김장호 구미시장 등 자치단체장들도 대거 동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소추를 주도했고 탈당까지 했던 권성동 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월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석열 정부의 지난 3년간 성과와 업적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그동안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거시경제가 안정을 되찾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6000달러대에 진입해 일본과 대만보다도 높은 수준”이라며 “한미동맹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완전히 복원됐고, 한일관계도 정상화됐다. 굴종적 대북정책에서도 벗어났다”고 자화자찬했다.
![2월 13일 8차 변론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14/1739495709908137.jpg)
여당에서 윤 대통령에 반대되는 목소리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친한동훈계 의원들의 의견이 일부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스피커의 위력을 사실상 잃었고 언론의 주목도까지 상실했다는 게 복수의 여당 의원들 전언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여권의 차기 잠룡들은 주파수를 ‘윤심’에 맞추고 있다. 윤 대통령 호위무사로 떠오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계속해서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런 기류를 읽어낼 수 있다. 2월 8일 대구 집회에서 연단에 올라 애국가를 부른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목도가 확 올라간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이와 관련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2월 13일 일요신문 유튜브 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해 “친윤은 오세훈 서울시장보단 원희룡 전 장관이나 김문수 장관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윤 대변인은 “둘 다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을 맡았던 정치인들”이라면서 “김문수 장관이 원희룡 전 장관을 지지하면서 물러나는 그림도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관련기사 ‘신용산객잔’ 윤희석 “찐윤들, 오세훈보단 김문수 또는 원희룡 택할 것”).
여당 내 잠룡들이 헌법재판소를 일제히 때리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월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헌법재판소가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며 “핵심 증인들의 검찰 조서 증거 능력이 논란인데, 헌재는 이조차 ‘탄핵심판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적법절차의 수호자여야 할 헌재가 왜 이런 논란을 자초하는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2월 13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개헌 논의 때 (헌재) 존폐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헌재 폐지론까지 들고 나왔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월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는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도망치면 안 된다”면서 “지금의 헌재는 헌법으로부터 오히려 도망 다니는 ‘헌법도망소’의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잠룡들이 ‘윤심’에 다가가는 것은 당내 힘의 균형이 이미 기울었고 뒤집힐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기대선이 만약 열릴 경우, ‘윤 대통령 계승자 간판’이 아니라면 당내 경선 통과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또한 윤심을 업고 본선에 나간다 해도 여야 경쟁 구도가 초박빙 국면이라 본선에서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에서는 이런 셈법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국민의힘 잠룡군인 안철수 의원은 2월 12일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 나와 조기 대선 가능성과 관련, “우리 당이 계엄 옹호당이 된다면 나중에 대선이 열리면 굉장히 치명적”이라며 “계엄 옹호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만 다음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이번은 중도가 결정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중도에 있는 분들의 표를 한 표라도 더 가져올 수 있는 후보를 낸 쪽이 이긴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