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기업의 난데없는 ‘꿩 사냥’ 아리송해
▲ 탄산음료의 유해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LG생활건강이 한국코카콜라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구본무 LG그룹 회장. | ||
코카콜라의 한국 내 생산 판매 유통을 담당하는 한국코카콜라보틀링(한국코카콜라)이 매각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2월. 한국코카콜라는 1998년 한국 내 지역별유통업체(두산 우성 호남식품)를 인수, 통합해 만든 회사로 호주의 코카콜라 아마틸(Coca-Cola Amatil Limited·미국 본사가 지분 30% 보유)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아마틸이 인수에 들인 돈은 1조 2000억 원 선.
한국코카콜라가 9년 만에 매각에 나선 이유는 경영 악화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국내 탄산음료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지만 ‘웰빙’과 유해성 논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002년 5990억 원이던 매출액은 3년 만인 2005년에 4984억 원으로 줄었고 순이익도 2001년 295억 원 흑자에서 2005년에는 343억 원 적자로 급락했다. 지난해에도 독극물 사건이라는 악재를 만나며 당기순손실 279억 원(매출액 5137억 원)을 기록했다.
때문에 매각설은 지난해 말부터 흘러나왔다. 이스라엘 보틀링업체 CEO가 방문한 것이 기폭제가 됐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부인해 오다 컨설팅을 받은 뒤 매각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코카콜라 매각은 지난 2월 미국 본사서 인수 추진→3월 동원F&B “인수 관심있다”→4월 10일 매각 방침 확정→4월 12일 의향서 접수 개시→우선협상대상자 세 곳 선정으로 흘러왔다.
그동안 인수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동원그룹과 CJ는 가격이 너무 높다는 판단에 인수전 참여를 포기했다. 아마틸 측이 원하는 가격은 7000억 원대. 최소한 투자금은 회수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적정가를 3000억~4000억 원대로 보고 있다. 가격차이가 너무 큰 것. 롯데칠성의 경우는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규정에 걸려 의향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LG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된 곳은 국민연금사모펀드와 함께 인수전에 뛰어든 SPC그룹. SPC는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샤니, 삼립식품 등 프랜차이즈 및 식품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음료사업 경험은 없다. 사모펀드 MBK와 함께 인수전에 참여한 웅진그룹도 웅진식품과의 시너지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LG생활건강의 등장은 인수전 구도를 일거에 바꿔놓았다. 막강한 LG그룹의 자금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품 사업 경험이 거의 없는 LG가 인수전에 뛰어든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LG는 이미 90년대 식품사업부를 통해 ‘레모니아’ ‘마이빈’ 등의 음료를 내놓았지만 97년 실적 부진으로 조용히 사업을 접었다. 계속 불거질 탄산음료의 유해성 논란이 LG생활건강이 추구하는 ‘건강’ 이미지를 깰 것이라는 등 증권가엔 부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 ||
LG생활건강 측은 인수 참여배경에 대해 △녹차 및 건강기능식품 등 신규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 △전국적인 물류유통망과 보유 부동산의 높은 자산 가치 △한국정서에 맞는 마케팅 활동 등의 장점을 살린다면 더 좋은 경영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인수 참여 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진행됐고 식품회사(해태제과) 출신인 차석용 사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LG생활건강의 최대주주는 LG그룹 지주회사인 (주)LG(지분율 34.03%).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그룹 수뇌부도 관여했을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LG와 관련된 ‘유일한’ 식품회사 ‘수향식품’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수향식품은 지난 1995년 현업에서 물러나면서 버섯 연구에 몰두해온 구자경 명예회장이 키운 회사. 수향식품은 수향농산 상농임산 수향버섯 천도농산 등과 함께 팽이버섯 등 버섯류와 만두류 면류 장류 식품 등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구자경 명예회장과 LG그룹 경영에서 배제된 아들들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수향식품 제품들은 GS 계열 유통 매장 등 범 LG계열 유통망과 이마트에서 팔리고 있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만약 현재 연 매출 10억 원대에 불과한 수향식품의 제품들이 한국코카콜라의 유통망을 탄다면 그 효과는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향식품 쪽에서 유제품 등으로 상품군을 넓히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수향식품 홈페이지에는 차석용 사장의 추천글이 올라 있기도 하다.
게다가 수향식품에 구본능 회장이 참여하고 있다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LG그룹의 ‘황태자’ 구광모 씨를 형님 구본무 회장에게 양자로 내준 구본능 회장이 가진 (주)LG의 지분은 계속 늘어나 지난 분기 5.0%(5월 16일 종가 기준 평가액 약 3333억 원)에 이르렀다. 이 지분은 구광모 씨의 후계구도를 위해서는 언젠가 정리돼야 하는데 그 ‘대가’가 필요하다. 독자적인 유통망을 갖고 있는 한국코카콜라가 LG생활건강에 인수될 경우 변변한 유통망이 없는 수향식품에 커다란 사업기회가 될 가능성은 크다. 때이른 관측이긴 하지만 수향식품이 번듯한 사업군으로 자리잡았을 때 (주)LG와 구본능 회장의 지분 관계 정리 때 상당할 역할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언젠가는 구본무 회장의 형제들도 제살림을 차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