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팅위부터 왕싱하오까지 중국 기사만 상대 5연승 “체력·기풍 약점 보완, 정점에 올랐다”
지난 2월 28일 싱가포르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서 막을 내린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3번기 2국에서 신진서 9단이 왕싱하오 9단에게 22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26일 열렸던 1국에서도 승리했던 신진서 9단은 종합 전적 2-0으로 난양배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결승 2국에서 흑을 잡은 신진서는 초반 연구된 포석으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한때 우변 대마가 공격당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연이은 승부수로 강하게 버텨냈다. 결국 하변의 어려운 승부처에서 극적으로 타개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결승까지 상대한 모든 기사가 중국 기사인 점이 눈길을 끈다. 신진서는 32강전에서 판팅위 9단을 꺾은 것을 시작으로 16강에서 롄샤오 9단, 8강에서 구쯔하오 9단, 4강에서 당이페이 9단을 차례로 꺾었고, 결승에서 다시 왕싱하오를 제압하며 이번 대회에서 중국 기사만 상대로 5연승을 기록했다.
이번 결승은 신진서의 올해 첫 세계대회 타이틀전이면서 한중전이자, 초대 왕좌를 가리는 무대였던 만큼 전 세계 바둑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왕싱하오는 신진서가 결승에서 상대하는 첫 연하(4세 아래) 기사여서 결과가 더욱 주목됐다.
우승을 차지한 신진서는 “마지막에 대마가 다 살았을 땐 역전됐다고 생각했고, 끝내기를 하면서 이겼다고 확신했다. 왕싱하오 9단이 예상대로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웠지만, 제가 큰 경기 경험이 더 많아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 결승에서 또 만난다면 훨씬 더 힘들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꼭 갖고 싶었던 난양배에서 우승했고, 농심신라면배도 잘 마무리해서 올해 출발이 좋아 기쁘다. 하지만 바둑대회는 쉼 없이 돌아가는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우승으로 신진서는 개인 통산 40회 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메이저 세계대회 8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이 부문 역대 랭킹 공동 4위에 올랐다. 1위는 ‘바둑 국보’ 이창호 9단의 17회, 2위는 ‘알파고를 꺾은 유일한 인간’ 이세돌 9단의 14회, 3위는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의 9회다. 신진서는 중국 바둑 레전드 구리 9단, 커제 9단과 함께 공동 4위를 기록하게 됐다.

최근 페이스도 가공할 만하다. 신진서는 올해 국내외 대회에서 11전 전승을 기록 중이며, 지난해 12월 21일 이후 15연승을 달리고 있다. 국제대회에서도 4연승을 기록 중이며, 특히 6개월 만에 다시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우승 주기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신진서 9단의 기량이 마침내 정점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약점으로 지적됐던 지나친 공격형 기풍이 국면을 서서히 장악해 상대를 끝까지 압박하는 스타일로 바뀌었으며, 승부처에서 서두르다가 제풀에 지쳐 무너지는 모습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또 과거 장기전에서 체력적인 한계를 보였던 약점도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갑조리그에서 15연승, 농심배에서 18연승을 달성하는 등 장기전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어 체력 관리와 집중력 유지 능력도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진서의 연이은 활약에 중국 바둑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신진서를 ‘신공지능(申工智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의 실력이 인공지능(AI)을 연상시킨다는 의미다.
다수의 중국 언론은 “신진서가 인공지능과 매우 유사한 게임 전략으로 농심신라면배에서 5년 연속 한국의 우승을 이끈 데 이어 난양배에서도 중국의 신예를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며 “신공지능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는 신진서를 뛰어넘을 방법을 중국 바둑계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가 처음으로 주최한 메이저 세계대회인 난양배는 기존 세계대회와 달리 피셔룰을 적용했다. 피셔룰은 착점을 할 때마다 시간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이번 대회에서는 기본 2시간에 추가 시간 15초가 주어졌다. 초 읽는 소리가 나지 않는 점이 기존 대회와 다른 특징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