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집성촌 폐허로…이재민들 세수도 환복도 힘들어 “이웃 덕 피신, 향후 생계가 문제”

3월 28일 일요신문이 찾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일대는 어쩐지 기분 나쁘게 흐린 하늘만 계속됐다. 간밤에 5mm도 안 되는 비가 잠깐 내렸다고 한다. 곳곳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스크를 꼈다 벗길 반복해야 했다. 비좁은 골목은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쉼 없이 오가는 트럭 등으로 빼곡했다. 이곳뿐 아니라 인근 일직면, 남선면, 임하면, 임동면 주민 총 2478명이 사흘 전부터 대피소와 산불에 탄 집을 오가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날 오후 구수리와 대곡리 등지 주민들 대피 장소인 길안중학교 강당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한 자원봉사자는 "밤은 돼야 가득 찬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집이 전소되고도 밭일은 차마 손을 떼지 못해, 해가 떠 있으면 여전히 일터로 나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난 구수리 주민 성민자 씨(80대)는 "여든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이만 한 산불은 처음 봤다"며 "마을은 집 한 채 남김없이 모두 타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마을 젊은 남자들이 노인들을 순서대로 차량에 태워준 덕분에 다치지 않고 대피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의 생계가 문제"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안동시 등은 재산피해 등을 파악하고자 실태조사에 돌입했다. 그러나 향후 보상 등이 어떤 절차를 거쳐 얼마나 이뤄질지는 아직 모른다.
성 씨는 "집도 집이지만 가축 피해가 크다"며 "애지중지 사슴을 키웠는데 1000만 원 하는 수컷과 700만 원 하는 암컷이 전체 10여 마리였다"고 했다. 이어 "이 녀석들을 잃은 상실감도 크지만, 냄새 등 때문에 사체를 방치해둘 수 없어 처분하는 수밖에 없었다"며 "과연 피해보상 때 이런 부분도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현숙 씨(50대)는 "재작년엔 예천에서 산사태가 나 걱정이었는데, 이번엔 우리 마을에 전례 없는 산불이 났다"며 "그나마 다행히 우리 마을에서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데, 왜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지 처참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때도 지금도 구조하던 군경 및 진화대원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죄송한 마음을 뭐라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는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고 표현했지만 화상 입은 이웃들은 몇 있었다. 대부분 노인이다. 회복력도 우려스럽고 동네를 뒤덮은 매캐한 냄새에 호흡기 질환도 걱정이다.
대피소 생활은 불편함 천지다. 옷을 갈아입기도 씻기도 힘들다. 세수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이에 안동시 등이 맞은편 도산면으로 옮겨갈 인원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씨는 "일 때문에 밭과 너무 멀어지면 곤란하다"고 했다.
길안중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물방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도 보였다. 누군가 "물방울이다"하며 하늘을 바라보면, 주변 이들이 동시에 위를 쳐다보곤 "혹시 비인가"하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 동네는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 한때는 '내앞마을'로 불렸다. 약 500년 전통을 이어 와 주민들로선 고향이기에 앞서 '자부심'이었다.
서울에 사는 80대 김 아무개 씨는 이렇듯 자랑스런 고향에 잠깐 들렀다가 봉변을 당했다. 3월 25일 백주대낮에 TV로만 보던 옆 지역 산불이 자기 마당을 덮친 장면을 마주했다.
이 마을 중앙에는 농촌체험 시설이 있다. 김 씨가 집 밖에 나와 보니 주민들이 전부 농촌체험 시설 운동장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가만히 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김 씨는 "서쪽 산에서 처음 불이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동쪽, 남쪽, 북쪽 산이 불로 뒤덮이고 말았다"면서 "주민들 모두 어안이 벙벙해 수도꼭지에 호스를 끼워서라도 불을 꺼보겠다고 나서는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농촌체험 시설에 어린 학생들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겠나"라며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는 부랴부랴 불을 끄다 오른손에 큰 화상을 입고 말았다. 그럼에도 "자동차를 가진 주민들이 저마다 이웃들을 태우고 아랫마을로 대피했다"며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다행"이라고 거듭 긍정의 생각을 놓지 않았다.
김 씨와 함께 있던 주민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응을 신뢰하고 있었다. 피해보상 등 향후 대책에 대해 들은 바 있는지 묻자 "잘해줄 걸로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로선 "전기와 물부터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며 "밥은 집에서 해먹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곡1리 주민들에 따르면, 화마로 뒤덮인 마을 일대 산은 소나무로 조림돼 있었다. 침엽수인 소나무는 산불에 특히 약하다. 건조한 데서도 생육이 잘 돼 산불이 발생하면 '불쏘시개' 역할까지 한다. 환경단체 등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사항이다. 산불을 예방하려면 수분을 머금은 활엽수 등 위주로 산림을 조성해야 한다.
실제 경북은 소나무 숲 면적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400㏊를 넘는 지역이다. 이어 경상남도(약 250㏊), 전라남도(약 200㏊), 강원도(약 150㏊) 순이다. 이는 2014~2023년 10년 치 산불 발생 피해면적과 유사한 통계다. 이에 따르면 해당 기간 경북이 산불 피해면적이 총 2125㏊로 가장 컸다. 다음은 강원 1101㏊, 경남 277㏊, 전남 111㏊ 순이다. 이 밖의 지역은 전부 50㏊ 이하였다.
게다가 경북은 서해안 지역보다 산악지형이 많아 한 번 산불이 나면 진압이 유독 어렵다. 서해안 쪽은 그나마 평지가 많아 진화차량과 소방인력 접근이 비교적 쉽지만, 동해안 산악지형은 헬기 외에는 효과적인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경북 안에서도 동해안과 가까운 지역은 '양간지풍'이 거세다. 봄철 한반도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이 만나면 편서풍이 형성되고, 이게 백두대간을 넘으면 고온건조해지는 특징이 있다. 2022년 경북 울진과 강원 양양 등을 덮쳤던 대형산불도 이 같은 양간지풍 영향으로 분석됐다. 이번 산불 또한 안동·청송·영양 등 내륙에서 80km 떨어진 동해안 영덕까지 번져갔다.
현실이 이렇지만 산림청 등 당국의 조치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산림청은 지난 5년 동안 약 4300억 원을 투입해 '숲 가꾸기' 사업을 벌여왔다. 올해도 860억 원가량 들여 축구장 약 8만 4000개 면적을 대상으로 사업을 편다. 이 역시 활엽수 위주는 아니다. 2023년 발생한 경남 밀양 산불 회복 작업에서도 활엽수 심기는 전체 피해면적 661㏊ 가운데 고작 88㏊에 그쳤다. 물론 산주들이 활엽수를 잡목으로 취급해 꺼려하는 문제도 작용했다.

3월 29일 오전 기준 산불 피해 사망자는 29명이다. 중상자 10명, 경상자 31명 등 총 70명의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산림청은 전날 오후 5시를 기해 산불 진화를 공식화했으나 불과 반나절 만에 재발화했다. 당장 확인된 산불영향구역은 5만 5157㏊로 역대 최대. 서울 여의도 156개 면적이 잿더미가 됐다.
최악의 피해가 발생한 만큼 향후 조치는 물론 산림 관리 체계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봄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반복돼 온 만큼, 올해도 우려 목소리는 잇따랐다. 그러나 산림청은 관련 보도 때마다 "산불진화 장비 현대화를 위한 예산을 대폭 확대한 상태"라며 "산불 초기 대응 능력도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경남 산청군에서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3월 21일은 산림청이 'K-FOREST FOR ALL' 슬로건을 첫 선을 보이며 'K-산림관리' 비전까지 선포한 날이었다.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와 국립수목원에서 진행한 '세계 산림의 날' 기념행사 자리에서다.
그러다 경북 산불이 확산하자 산림청은 "산불대응 예산을 최우선으로 확충해 나가고 있다"며 "산불 진화 최일선에 있는 산불특수진화대의 처우개선을 위한 투자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북 특별사법경찰은 의성군 산불 용의자부터 오는 3월 31일 산림보호법상 실화 등으로 입건 및 조사할 방침이다. 산불은 사소한 실수가 원인이어도 행위자로 확인되면 산림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타인 소유 산림에 불을 지르면 5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이번 산불로 국가유산도 총 27건 피해를 입었다. 경북 민속문화유산인 청송군 기곡재사와 문화유산자료 병보재사가 불에 타 전소됐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의성군 만장사 석조여래좌상은 불상 일부가 그을렸다.
국가유산청은 추가 피해 사례를 더 조사하고 있다. 연구원 75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해 방염포 설치, 예방살수, 방화선 구축 등 국가 유산 보호를 위한 긴급 조치를 계속 실시할 계획이다.
안동=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