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없는 칼날에 ‘무한도전’도 노출됐다
| ||
| ▲ MBC가 시청률이 저조한 프로그램을 사전 예고도 없이 무리하게 폐지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
MBC는 최근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를 전격 폐지했다. 다음 녹화 일정을 확정하고 촬영을 준비하던 제작진과 출연진은 방송사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패닉’에 빠졌다. 사전 통보나 조율 없이 느닷없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 MBC는 또 8년 동안 방송해온 월요일 심야 예능 프로그램인 <놀러와>의 간판까지 내렸다. 뒤이어 신설한 지 세 달밖에 되지 않은 <최강연승 퀴즈쇼 Q> 역시 이달 말까지만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MBC가 프로그램 폐지에 관해 제작진이나 출연진과 전혀 교감이 없었고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특히 <놀러와>의 경우는 심각한 수준이다. MBC가 현재 방송 중인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놀러와>는 2004년 5월 방송을 시작해 MBC 월요일 밤 11시 시청률을 오랫동안 책임져왔다. 인기 진행자인 ‘유재석과 김원희가 이끄는 지상파 3사의 대표 예능’이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물론 최근 같은 시간 방송하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와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에 시청률이 밀리며 정체에 빠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제작진과 출연진의 충분한 협의 과정도 없이 ‘윗선’의 결정으로 프로그램이 전격 폐지되자 ‘시청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놀러와>의 진행자가 유재석과 김원희란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재석은 방송가에서 언제나 ‘섭외 1순위’로 꼽히는 스타. 하지만 MBC가 유재석과 <놀러와>를 전격 폐지하면서 유재석 개인은 물론 프로그램 제작 판도에도 후속 여파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MBC가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까지 시청률의 잣대로 평가해 ‘폐지 후보’에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MBC는 폐지를 결정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저조한 시청률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역시 최근 기록한 시청률로만 판단한다면 폐지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한도전>은 MBC 파업이 진행되는 내내 유일하게 방송을 중단했던 프로그램이다. 파업 도중에도 일부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대로 방송을 진행했고, 간혹 파업 도중 방송 제작을 재개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하지만 <무한도전>만은 파업 기간 동안 방송을 멈췄다. 이런 이유로 <무한도전>은 MBC 파업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사측과 대립하는 노조의 입장을 드러내는 대표 프로그램으로도 각인됐다. 회사 입장에서 <무한도전>을 곱게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폐지론이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MBC의 김재철 사장은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무한도전>을 폐지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당시 김재철 사장의 입장은 정당성 여부를 두고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폐지 가능성’을 드러낸 의견으로 관심을 모았다. 더욱이 MBC의 장기 파업이 ‘김재철 사장 퇴진’을 목적으로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무한도전>의 방송 중단은 김재철 사장 입장에서는 ‘눈엣가시’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MBC는 “<무한도전>은 폐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MBC의 한 관계자는 “우려는 알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정적인 예상일 뿐”이라며 “<무한도전>은 시청률을 떠나 다양한 기획 상품이나 이벤트로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고 시청자의 지지도 높은 프로그램이다”며 폐지론을 부인했다.
하지만 MBC의 최근 행보를 본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의 한 제작 관계자는 “요즘의 분위기라면 MBC로서는 못 할 게 없다”며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많은 시청자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화제의 프로그램이지만 최근 시청률에서는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재철 사장이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시청률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며 “파업을 거치며 속을 썩인 <무한도전>이 폐지 칼바람에서 얼마나 안전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MBC가 프로그램을 뒤흔들기 시작한 건 밤 9시에 방송하던 <뉴스데스크>를 11월부터 오후 8시로 옮긴 뒤부터다. 경쟁력 있는 뉴스 전달을 목표로 한 결정이라고 밝히면서 MBC는 <뉴스데스크> 방송 전후 프로그램의 경쟁력까지 확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뉴스데스크>는 시청률에서도 이렇다 할 변화를 맞지 못한 데다 오히려 앵커가 한 달 전 원고를 읽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반복되면서 신뢰도마저 추락하고 있다. <뉴스 데스크> 방송시간을 옮긴 지 한 달여 만에 시트콤을 폐지했고 밤 9시대에 방송하는 교양 프로그램들도 시청자의 관심을 받는 데는 역부족이다.
물론 프로그램 폐지와 신설은 전적으로 방송사의 결정으로 이뤄진다. MBC가 최근 진행하는 잇따른 프로그램 폐지 역시 ‘경쟁력 확보’ 차원으로 보면 문제가 없다는 시선도 있다. 한 방송 전문가는 “시청률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로서는 저조한 기록의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라며 “유독 MBC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시청률만큼 중요한 게 시청자와의 공감이라는 사실은 방송사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항목. 실제로 <엄마가 뭐길래>가 전격적으로 폐지된 뒤 한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벌인 게 대표적인 예다.
김재철 사장은 최근 “1등이 아니면 MBC에는 미래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MBC는 내년 예능은 물론 드라마와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모든 장르에서 ‘1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방송사에서 1등의 기준은 대부분 시청률에 근거한다. <무한도전>은 최근 같은 시간 방송하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시청률이 밀리고 있다. 1위 자리를 내준 지도 오래다. MBC의 1등주의 아래에서 <무한도전>이 생명을 지킬지 주목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