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의 반대로 비전2030 보고서는 실행되지 못했지만 이후 들어선 정부들은 비전2030이 예견하고 주장했던 복지정책을 속속 받아들여 현실화했다. 비전2030은 워싱턴 D.C.에서 세계은행 선임정책관으로 근무하다 돌아온 김동연이 실무를 책임졌다.
2010년 기획재정부는 차상위 이하(차상위,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우수 고등학생에게 해외 유학의 기회를 주는 ‘드림장학생’ 사업을 도입한다. 문제집을 사기도 빠듯한 형편이지만 공부가 너무 하고 싶고, 학업을 통해 꿈을 이루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이 사업은 기회의 사다리가 돼 줬다. ‘드림장학금’ 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업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던 김동연이 사업의 제안부터 예산 편성까지 직접 주도했다.

그런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는 달랐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6월 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내일 보고서를 채택하려고 한다. 국민 눈높이에서 봤을 때 충분히 자격이 되는 분은 바로바로 하려 하는데 후보자가 이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그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이자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연이었다.

올해 설 경기도는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해 신년 연하장을 제작했다. “당신의 작품활동은 가치가 있다” 라고 김동연은 말한다. 장애인 기회소득을 비롯한 김동연의 장애인 정책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다. 장애인을 우리 삶과 동떨어진 존재에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이끌고 있다. 김동연은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김 지사는 34년의 공직생활을 내려놓을 당시를 회상했다. “34년 공직생활을 하며 최선을 다했다. 헌신했고, 희생했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정책을 만들어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는데 실천되지 않거나 정책의 실패에 부딪혔다”라며 “그러다 보니 내가 했던 것이 책상물림이나 그저 그런 담론,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실제 우리 국민들의 삶과는 유리된 것은 아니었을까 고민이 깊었다”라고 했다.
김동연 지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인과 함께 2년 반 동안 전국을 다녔다고 했다. 봄에 모내기를 하고 가을에 벼를 베고 사과를 수확했다. 배를 타고 나가 전어를 잡고, 멸치를 삶으며 사람들과 부대꼈다. 외딴섬의 학생들을 만나고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 중장년, 소상공인, 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형태와 밀도에 직접 부딪혔다. 1년, 2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결국은 정치였다. 자신이 세운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면 돌변해 그 정책을 도입했다. 정책을 본 게 아니라 정책을 낸 진영을 본 것이다. 여야를 가릴 것이 없었다. 국가의 위기, 경제 위기 앞에서도 대한민국 정치는 서로에 대한 공격을 최우선 가치로 뒀다.
“정치는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고 교육은 가치를 계승하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가치를 배분하고 후세에 가치를 계승하는 일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정치였다”라고 김동연은 말했다.

‘새로운물결’을 창당해 정치에 뛰어들자 2년 반 동안 전국을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이 당원이 돼 줬다. 1만 3000명이 모였다. 그들은 김동연의 진정성을 믿었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증오와 대립의 판이 돼가며 새로운 아젠다와 가치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단일화로 대선 도전은 종료됐지만 김동연이 걸어온 길의 발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동연은 지금도 경기도 31개 시군의 시설들에 매달 기부를 한다. 30개가 넘으니 상당한 액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기부처를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학 총장시절과 부총리 시절엔 월급의 절반 이상을 기부했다. 선거에서 지고 지지자들이 충격에 빠져 있을때 주식 투자에 나선 정치인도 있지만 김동연은 그런 정치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김동연은 그랬다. 철거민으로 천막집에 살며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닦았다. 사회적 편견을 하나씩 허물고 올라와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미래 세대를 위해 사다리를 놓고 있다. 34년간 국가와 국민에 헌신했고 사람의 아픔에 공감했다. 공직에서는 국가 살림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시선을 낮은 곳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왜 정치를 하게 됐나요? 라는 질문을 받은 김동연은 말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은혜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