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대박에 유전개발 꿈 둥실
▲ 재기를 꿈꾸는 전대월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005년 4월 유전개발의혹사건으로 검찰 소환에 응하고 있는 전대월 씨. | ||
전대월 씨는 우연히 알게 된 러시아 ‘페트로’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게이트에까지 연루돼 2005년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이다. 참여정부 핵심 권력과의 연계설로 사건이 정치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전 씨는 오일게이트 특검에 의해 2005년 4월 정치자금법 위반, 특가법상 배임 공범, 가장납입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그는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던 그가 느닷없이 “상처입은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주식시장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명성을 인수해 해외에너지 사업을 성공시키겠다”고 밝혔다. 전 씨는 이 회사 사업목적에 ‘해외 에너지개발사업’ 등을 추가하고 오는 27일에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회사 이름도 ‘KCO에너지’로 바꾸기로 했다.
이미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옥고까지 치러야했던 유전개발사업에 그는 무슨 미련이 남아있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숨겨져 있던 지난 2년여간의 그의 행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전 씨는 출감 이후 어딘가에서 칩거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러시아에 근무 중인 우리나라 정부기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러시아에서 유전개발 사업을 준비해 왔다. 그는 지난해 8월 사할린 지역에서 유전개발회사인 ‘톰가즈네프티’를 인수,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톰가즈네프티는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군 라마논스키 반도 지하 유전의 탐사개발권을 가진 업체. 당시 러시아 신문들은 전 씨가 톰가즈네프티의 지분 74%를 갖고 있으며 사할린에서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가공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회사 인수에 소요된 자금을 러시아 금융기관과 현지 동포들에게서 빌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기꾼’처럼 낙인찍혀 유죄판결까지 받은 그가 러시아에서는 제도권 금융기관은 물론 교민들로부터도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에 관해 정부기관 관계자는 ‘오일 게이트’ 당시 철도공사가 인수하려 하다 취소한 러시아의 유전개발업체 ‘페트로’가 게이트 이후 오히려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페트로는 오일 게이트로 철도공사의 인수가 무산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유 2억4300만 톤(약 17억 배럴)이 매장된 유전을 발견했고, 이런 내용은 얼마전 국내 언론에 의해서도 소개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전 씨는 러시아 현지에서는 ‘비운의 사업가’로 알려졌고, 한국을 ‘줘도 못 먹는’ 이상한 나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뒤로하고 전 씨는 지난 5월 초 국내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5월 4일 명성의 유상증자에 전 씨가 참여한다는 공시가 나온 것.
당시 전 씨는 주당 8210원(액면가 5000원)의 가격으로 명성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는 전체 유상증자액 694억 원 중 269억 원어치를 인수, 30.4%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전 씨는 명성 인수 발표가 있은 뒤부터는 간혹 공개석상에 나타나 자신의 유전개발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서 실시한 ‘라마논스키 반도의 석유와 가스 탐사작업의 전망성과 타당성 조사결과’라는 문건을 제시하며 라마논스키 유전에서 약 1억 6000만 톤의 채굴 가능한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채굴 가능한 원유의 10%만으로도 6조 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말부터 시추에 들어가면 내년 말이나 2009년 초에 본격적인 생산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 씨의 해외자원개발신고서를 접수하고 현지조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진 산자부 유전개발팀 관계자는 “지난해 9월에 해외자원개발신고서를 받고 석유공사와 지질자원연구원에서 러시아 현지에 실사를 나가 탐사연구소, 사할린세무소, 관할등록청에 확인한 결과 법적 계약조건에 문제가 없었고 원유생산능력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 씨의 이런 행보가 명예회복보다는 지난해 톰가즈네프티사를 인수한 후 생긴 자금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전 씨 스스로도 “그간 전대월이란 이름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에서 유상증자 등을 실시할 경우 자금 조달이 용이한 것이 사실”이라며 자금 압박설을 시인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명성의 유상증자 대금을 어디서 마련했는지에 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전 씨는 이 부분에 관해 “톰가즈네프티 지분을 담보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국내의 금융기관으로부터 유상증자대금을 빌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그가 실제로 자금차입에 성공했는지는 유상증자 대금 납입 기한인 6월 20일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톰가즈네프티 지분에서부터 명성 주식 인수까지 자신의 돈은 거의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사업을 진행시켜 온 셈이다. 그의 국내 증시 복귀와 맞물려 흘러나온 철도공사가 버린 페트로의 대박 소식, 전대월의 유전 사업 재추진, 상장사 인수 등도 치밀하게 조율된 느낌도 없지 않다는 평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전 씨의 이러한 행보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한듯 보인다. 전 씨가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공시하기 이틀 전부터 상한가를 기록하기 시작한 명성의 주가는 12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불과 20여 일 만에 9190원에서 3만 7050원으로 330%나 올랐기 때문이다. 액수로 본다면 한달이 채 못돼 약 1000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물론 그의 주식은 1년간 보호예수기간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당장 현금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명성의 인수자금을 빌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만일 전 씨가 명성의 주가폭등을 등에 업고 유상증자금을 제때 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빌린 돈도 모두 갚고, 명성을 통해 톰가즈네프티의 지배권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전 씨의 유전개발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아직 불확실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원유생산능력이 있다고 확인한 산자부 유전개발팀에서도 “광구의 실체는 있었지만 탐사지역이라 유망성 여부가 불확실하고 추정매장량을 근거로 수익을 따지는 것은 경제성이 과대 포장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증권 전문가들 역시 ‘모 아니면 도’ 식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자원개발주의 투자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 탐사를 진행할 광구 확보나 생산능력이 유전개발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페트로’의 포기로 대박 일보 직전에서 멈춰서야 했던 전대월 씨가 진짜 대박을 일궈낼지 아니면 수많은 투자자들을 쪽박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신기루를 일으킨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