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대회 초대 우승…‘영원한 숙적’ 유창혁과 304수 접전 끝 흑 2집반 승
[일요신문] 마치 영화 ‘승부’가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온 듯, 시대의 라이벌들이 다시 한 번 반상 위에서 만났다. 스승과의 치열했던 대결을 넘어, ‘돌부처’ 이창호 9단이 이번에는 영원한 숙적이자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과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4월 16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제1회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세계바둑오픈 결승전. 두 전설이 벌인 ‘이유(李劉) 있는 명승부’는 올드팬들에게 영화를 통해 되살아난 그 시절의 향수와 현재진행형의 짜릿한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숨 막히는 304수의 접전 끝에 흔들리지 않는 ‘돌부처’ 이창호 9단이 흑 2집반 차이로 승리하며 초대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이창호 9단은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세계바둑오픈 우승으로 프로 통산 14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사진=한국기원 제공#20년 만의 ‘이유 결승전’
두 레전드의 결승전 맞대결은 무려 20년 만이다. 2005년 10월, 제24기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이 2-0으로 승리한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결승 무대였다. 비록 이번 대회가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참여하고, 아마추어에게 덤 부담을 덜어주는 로컬룰을 적용한 비공식 오픈 기전이지만, 두 기사가 시니어 무대에서 처음으로 결승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1986년 첫 만남 이후 공식, 비공식 대국을 합쳐 156번째 대결을 벌인 두 사람. 이날 승리로 이창호 9단은 상대 전적 104승 52패로 격차를 더욱 벌렸으며, 결승 무대에서는 25번 만나 19승 6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이어갔다.
전설들의 대결답게 결승 단판 승부는 시작부터 치열했다. 초반 흐름은 유창혁 9단이 주도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공격력을 앞세워 앞서나갔으나, 중반 전투에서 결정적인 수를 놓치면서 형세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AI(인공지능) 승률 그래프는 급격히 출렁였고, 이창호 9단이 흐름을 가져오는 듯했다.
두 기사는 1986년 첫 만남 이후 156번째 대결을 펼쳤다. 사진=한국기원 제공하지만 국면은 이후에도 난전의 연속이었다. 유창혁 9단이 재차 승기를 잡는 순간도 있었으나, 국면을 간명하게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결국 승부는 이창호 9단의 전매특허인 종반 영역으로 흘러갔다. 불리했던 형세 속에서도 이창호 9단은 전성기 시절 ‘신산(神算)’의 편린을 보여주듯 초읽기 속에서 냉정하게 국면을 마무리하며 승부를 뒤집었다.
#이창호 “나는 복 많이 받은 사람”
국 후 인터뷰에서 이창호 9단은 유창혁 9단과의 오랜만의 결승전에 대해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이어 “유창혁 9단과는 워낙 많이 두었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어렵게 생각하는 선배여서 열심히 두자고 마음먹었는데,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자신의 바둑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바둑 두는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려고 한다”면서 “그런 즐거움을 느끼며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끔 싫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좋아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해 와서 복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호 9단은 유창혁 9단에 상대 전적 104승 52패로, 결승전 승부 19승 6패로 앞선다. 사진=한국기원 제공이번 대회 우승으로 이창호 9단은 프로 통산 143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시니어 무대에서는 2023년 울산광역시장배 프로시니어최강전, 2024년 슈퍼컵 레전드매치 우승에 이어 또 하나의 우승컵을 추가했다. 프로 통산 전적은 2730전 1928승 802패를 기록하고 있다.
제1회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 세계바둑오픈은 프로와 아마추어, 국적의 경계를 허문 글로벌 오픈대회로 남녀 시니어 프로(남자 만 50세 이상, 여자 만 40세 이상)와 아마추어 남자 만 50세 이상, 여자 만 19세 이상 선수가 출전했다. 생각 시간은 시간누적방식으로 각자 기본 10분에 매수 추가로 20초가 주어졌다. 우승상금은 3000만 원.
[승부처 돋보기] 제1회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세계바둑오픈 결승전 흑 이창호 9단 백 유창혁 9단 304수 끝, 흑2집반승
장면도1[장면도1] 기상천외의 수
첫 접근전인 우변의 갈림은 백이 포인트를 올린 모습. 백 4점이 잡혔지만 우하 백이 두텁고, 무엇보다 선수를 뽑았다는 점이 백의 자랑이다. 여기서 백1의 붙임이 기상천외의 수. 하지만 이 수는 착각이었다.
참고도1[참고도1] 백의 희망사항
흑2면 백3으로 훑어 5까지 흑 전체를 곤마(困馬)로 만들겠다는 것이 백의 희망사항. 그러나….
참고도2[참고도2] 흑의 반발
백1 때 흑은 2를 선수한 후 4로 반발하는 수단이 있다. 백5로 끊으면 흑6, 백7로 움직이면 흑8로 전체가 잡혀버린다.
실전의 진행[실전의 진행] 흑의 흐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유창혁 9단은 백1로 젖혀 변화를 시도하지만, 흑6까지 귀를 확실히 안정시키고, 다시 흑8로 백 4점을 공격하게 돼서는 흑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장면도2[장면도2] 신산(神算)이 찾아낸 수
바둑은 돌고 돌아 눈터지는 반집승부가 됐다. 여기서 백1이 패착. 흑2가 신산(神算) 이창호가 찾아낸 눈에 보이지 않는 급소였다. 백은 내친김에 3·5로 우측 집을 중시했지만, 흑6~10을 선수한 다음 마지막 큰 곳 12에 손이 돌아와서는 흑의 승리가 결정됐다.
정해도[정해도] 백의 최선
장면도2의 백1로는 역시 이 그림 백1의 곳이 급소였다. 흑2를 기다려 다음 백3이었으면 여전히 미세한 반집 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