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3분의 2 지지 나올 때까지 무제한 투표…유흥식 추기경도 후보군, 첫 아시아 교황 기대감
[일요신문] 지난 4월 21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신’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을 애도하는 물결이 전 세계에서 일렁이고 있다. 2013년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후 교황직에 오른 지 12년 만이다. 사인은 뇌졸중에 따른 심부전이었다. 장례 미사는 26일 오전에 열리며, 교황청은 이날부터 9일간을 공식 애도 기간인 ‘노벤디알레스’로 선포했다. 아직 애도 기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은 벌써부터 콘클라베에 쏠리고 있다. 콘클라베란,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일컫는다. 교황이 선종한 후 15~20일 후에 시작되는 콘클라베에 대한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애도 물결과 함께 사람들의 이목은 벌써부터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쏠리고 있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일요신문DB콘클라베는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 ‘콘 클라비스’에서 유래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비밀회의며,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들은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동안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생활하게 된다. 이를테면 전화, 인터넷, 편지, TV, 라디오, 신문 등 외부와의 소통은 일절 금지되고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대성당 내부는 혹시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점검이 실시된다.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비밀 유지 서약도 해야 한다. 만일 투표 관련 정보를 유출할 경우에는 중대한 범죄로 간주되어 처벌받게 된다. 따라서 오스카(각색상)와 골든글로브(각본상)를 수상한 영화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단 의장이 콘클라베 기간 동안 언론에 브리핑하는 장면은 완전히 허구다. 현실에서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해당 추기경은 즉시 파문당한다.
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에게만 주어진다. 현재 선거권이 있는 추기경은 전 세계 252명 가운데 138명이며, 평균 연령은 약 70.5세다. 가장 젊은 추기경은 우크라이나의 미콜라 비초크 추기경(45)이다. 이 가운데 110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피선거권은 세례를 받은 남성에게 누구나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현직 추기경이 선출되는 게 관례처럼 된 지 오래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은 시스티나 성당이다. 다만 과거처럼 한 건물에 감금된 상태로 있지는 않으며, 바티칸 내에 있는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면서 매일 시스티나 성당을 오가게 된다. 이곳은 12년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거주지로 사용한 장소이기도 하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에는 요리사, 가사도우미, 전문의 두 명(한 명은 외과 전문의)이 상시 대기한다. 이는 대부분의 추기경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내부. 사진=AP/연합뉴스콘클라베 첫날은 ‘로마 교황 선출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추기경들은 교황궁 내 파올리나 경당에 모였다가 시스티나 성당으로 한 줄씩 이동한다. 시스티나 성당에 입장한 후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벽화 아래에 서서 복음서에 손을 얹고 “콘클라베의 세부 사항을 절대 외부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그런 다음에는 차기 교황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교회가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한 묵상을 한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면 전례 담당 주교가 라틴어로 ‘엑스트라 옴네스(모두 나가시오)’라고 외치고, 이어 추기경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퇴장한다.
투표는 무기명 비밀 투표로 진행된다. 각 추기경에게는 ‘나는 교황으로 ~를 선출합니다’라는 라틴어 문구가 인쇄된 투표용지가 주어진다. 추기경은 자신이 선택한 인물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은 다음 한 명씩 제단 앞으로 다가가서 “나의 증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내가 선출되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에게 투표했습니다”라고 선언한 후 접힌 투표용지를 타원형의 은과 금으로 된 투표함에 넣는다.
출석한 추기경단 기준 3분의 2 이상의 득표수가 나올 때까지 투표는 무제한으로 계속된다. 투표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두 차례씩 네 차례 진행되고, 이틀간 새 교황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 셋째 날은 하루 동안 기도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만일 2주 후에도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면 최다 득표자 두 명 가운데 결선 투표를 진행하게 된다. 이때도 역시 3분의 2 이상이 지지해야 최종 확정이 된다.
사정이 이렇게 때문에 이론적으로 콘클라베는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길었던 콘클라베는 1268년 11월, 클레멘스 4세 선종 후 시작된 회의였다. 이 회의는 1271년 9월 1일 그레고리 10세가 선출되기까지 무려 34개월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런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수일 내 짧게 마무리되고 있다. 가장 길었던 회의는 1922년 비오 11세를 선출하는 데 걸린 5일이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한 콘클라베는 1박 2일, 즉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과 다섯 번, 그리고 전임자인 베네딕토 교황은 2005년 단 네 번의 투표를 통해 선출됐다.
콘클라베 첫날은 ‘로마 교황 선출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2013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인 추기경들. 사진=EPA/연합뉴스매 투표가 끝날 때마다 모든 투표용지는 소각되며, 이때 연기 색깔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특수 염료를 첨가한다. 가령 시스티나 성당 지붕 위로 솟은 18m 높이의 굴뚝을 통해 피어오르는 연기가 검은색일 경우에는 교황이 아직 선출되지 않았음을, 연기가 하얀색일 경우에는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의미한다.
교황이 선출되면 전례 담당 주교가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새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에게 “선출을 수락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지명자가 “수락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주교는 다시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지명자가 자신이 교황으로서 사용할 이름을 선택하면 추기경들이 그에게 다가가 충성을 서약하고, 새 교황은 ‘눈물의 방’으로 안내된다. 이 방에서 그는 흰색 수단(성직복)과 흰색 두건, 붉은 슬리퍼를 착용한다. 바티칸 재단사들이 제작하는 이 의상은 미리 세 가지 크기로 준비되어 있다.
이어서 수석 추기경이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로 나와 새 교황의 선출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군중을 향해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새로운 교황을 모셨습니다)’이라고 선언하고, 뒤를 이어 발코니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새 교황이 ‘우르비 에트 오르비(로마시와 전 세계에게)’라는 라틴어로 첫 번째 축복을 내리면 공식 일정이 시작된다.
한편 이번 콘클라베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던 2013년과 비교했을 때 지리적 다양성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현재 추기경단 가운데 아프리카 출신과 아시아 출신은 각각 19명과 21명으로, 지난 콘클라베에서는 각각 11명과 10명에 불과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 기간 동안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출신의 추기경을 두루 임명하면서 국적을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르완다, 카보베르데, 몽골 등 지금까지 추기경단에 한 번도 합류한 적이 없었던 국가도 있었다.
2013년 3월 13일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음을 의미하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이런 점에서 차기 추기경으로 비유럽인이 선출될 수 있다고 점치는 사람도 많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67)의 경우가 그렇다. ‘아시아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불리고 있는 타글레 추기경은 진보적 성향의 인물로, 낙태 권리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동성애자 및 이혼한 부부에 대해 교회가 너무 가혹하다고 비판하는 등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방적 노선을 계승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프리돌린 암봉고 베숭구 추기경(65)도 유력한 비유럽 출신 후보로 꼽힌다. 빈곤 및 인권 문제에 특히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동성애 커플에게 축복을 내리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공개적으로 충돌한 적도 있었다. 때문에 만일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다면 앞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상당 부분 다른 노선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나 출신의 피터 터크슨 추기경(76) 역시 물망에 오르고 있는 흑인 후보다. 동성애와 관련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법이 너무 가혹하다고 비판하면서도 현지 문화와 시각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2013년 콘클라베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과 경쟁했던 유력 후보였다.
우리나라의 유흥식 추기경(74)도 현재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2021년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장관직에 오른 유흥식 추기경은 우리나라 네 번째 추기경이다.
'요한' 최고 인기…교황 이름은 어떻게 짓나
교황 이름은 새로 선출된 교황이 직접 선택한다. 보통 평소 존경하던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따서 짓지만, 간혹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기 위해 독특한 이름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된 교황들의 이름.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새 교황의 비전이나 정책 방향, 혹은 영적 롤모델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로 여겨진다. 가령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한가운데서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한 베네딕토 15세를 본받고자 선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교황의 이름은 교황이 로마의 주교이자 가톨릭교회의 수장이라는 의미에서 라틴어로 공표된다. 또한 동시에 바티칸 시민이자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어 이름도 부여받게 된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교황을 지칭할 때는 해당 현지 언어로 이름을 번역해서 표기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를테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어로 ‘프란체스코’, 스페인어로 ‘프란시스코’, 영어로 ‘프란시스’로 번역되어 불렸다.
역대 교황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된 이름은 ‘요한’이었다. 지금까지 21명의 교황이 선택했으며, 이는 요한복음서의 저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장 총애를 받았던 성 요한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밖에 그레고리오(16명), 베네딕토(15명), 클레멘스(14명), 레오와 인노첸시오(13명), 비오(12명), 스테파노(9명), 보니파시오와 우르바누스(8명) 등이 있다.
반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혹은 사용하지 않는 이름도 있다. 바로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이름을 딴 ‘베드로’다. 아직까지 어떤 교황도 ‘베드로 2세’라는 이름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이는 성 베드로의 유일무이함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혹은 겸손의 표시에 따른 것이다. 규정상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다.
‘어부의 반지’ 뭐길래…교황마다 디자인 제각각
교황을 상징하는 장신구 가운데 하나인 ‘어부의 반지’는 최소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가톨릭교회 내에서 교황의 권위와 역할을 나타내며, 보통 오른손 약지에 착용한다.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까닭은 초대 교황이자 예수 그리스도 사도 가운데 한 명인 ‘성 베드로’가 어부였던 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새 교황에게 반지를 수여하는 의식은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명을 물려받는 상징적 행위로 간주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용한 ‘어부의 반지’.‘어부의 반지’의 용도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불라(인장)’라고 불리는 만큼 과거에는 교황의 교서나 공식 서신, 혹은 문서에 봉인을 찍기 위한 인장 역할을 했었다. 다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으며, 실제 기능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다.
기본 디자인은 성 베드로의 형상과 천국의 열쇠를 새긴 형태지만, 수세기에 걸쳐 교황마다 선택하는 세부 디자인은 각각 달랐다. 그 시대의 유행이나 해당 교황의 정신을 반영해 다양하게 변형됐다. 가령 어떤 교황의 반지에는 베드로가 배에서 그물을 던지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반지에는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반지는 금세공사가 새 교황을 위해 수작업으로 제작하며, 보통 순금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반지를 제작하지 않고 2006년 작고한 전임 교황인 바오로 6세의 비서였던 파스콸레 마키 대주교가 소장했던 반지를 재활용했다. 이 반지는 순금이 아닌 도금된 은으로 제작된 것으로, 평소 교황의 소박하고 검소한 면모를 상징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전임 교황들이 거의 매일 ‘어부의 반지’를 착용했던 것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식 행사에서는 ‘어부의 반지’를 착용하고 나타났지만 일상적인 용도로는 추기경 시절부터 사용해 온 소박한 은색 반지를 착용했다.
교황이 선종하면 ‘어부의 반지’는 추기경단이 보는 가운데 망치로 파괴되거나 혹은 최소한 다른 형태로 훼손된다. 이는 서신이나 법령이 위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다. 이에 대해 CNN의 바티칸 특파원인 크리스토퍼 램은 “이는 소셜미디어 계정의 로그인 정보를 삭제하는 것과 같다. 행여 위조된 문서에 인장이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절차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전통은 19세기 중반 이후 더 이상 반지가 인장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최초로 자진 사임하면서부터는 새로운 전통이 시작됐다. 선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임했던 만큼 그의 반지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표면에 깊은 십자가 모양을 끌로 새겨 훼손하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램은 “이때부터는 굳이 반지를 파괴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요즘은 교황을 사칭해 문서를 위조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전임 교황의 선례를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지 역시 표면에 십자가를 새기는 방식으로 훼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