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20경기 남아 홈런도 하나의 과정일 뿐…후리건즈와 한국 팬에 감사“

이정후는 5월 10경기에서 타율 0.184(38타수 7안타)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더욱이 지난 미네소타 트윈스 원정 시리즈에서는 11타수 1안타에 그쳤고, 팀도 3연전을 스윕당했다. 그는 홈으로 돌아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경기를 앞두고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네소타 원정 때 팻 버렐 타격코치와 상담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바깥쪽으로 나가는 공이 볼이라고 생각했던 게 스트라이크가 되면서 타격폼이 미세하게 바뀐 것 같다. 허리가 굳게 서 있는 상태로 내 존을 지키면서 쳐야 하는데 그 공까지 치려다 보니 오른쪽 어깨가 많이 들어가고 안 좋은 공에 자꾸 배트가 나가고 있다. 공을 고르는 피치 터널이 잘 안 보이는 문제를 코치님과 상의했다.”
즉,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참았던 공들을 안 치고 기다리면 스트라이크가 될까 봐 참지 못하고 스윙하는 모습에서 이정후 스스로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정후는 위축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타격이 안 맞으면 기분이 다운됐는데 지난해 힘든 과정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초반에 좋았던 시기가 있었던 만큼 지금 같은 시기도 오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빨리 잊고 다시 경기를 해야 한다. 야구가 힘든 스포츠이지만 경기 수가 많아 반전을 만들 기회가 생긴다. 그 기회가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회가 올 때까지 나 자신을 믿고 하던 대로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드러낸 이정후는 5월 14일 애리조나와의 홈 경기에서 드라마 같은 반전 스토리를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가 7-4로 앞선 8회 말, 마이크 야스트렘스키가 우전 2루타로 2사 2루를 만들자 애리조나는 3번 타자로 나선 앨리엇 라모스를 고의사구로 걸렀다. 라모스의 최근 10경기 타율이 4할이 넘는 터라 애리조나 벤치는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이정후와의 승부를 선택했다.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애리조나 투수 조 맨티플라이의 4구째 78.9마일의 커브볼을 정확히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을 터트렸다. 이정후의 시즌 5호 홈런이고, 이정후가 오라클파크에서 홈런을 친 건 지난해 4월 21일 애리조나전 이후 388일 만의 일이다. 더욱이 이날은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정한 ‘한국 문화 유산의 밤’이라 이정후의 스리런은 더욱 의미가 컸다.

“만약 열 명의 감독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8회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최근 엘리엇 라모스는 타격감이 좋고, 나는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라모스는 좌투수한테 엄청 강한 터라 한 점을 더 허용하면 경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굳이 라모스랑 승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랑 승부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2번타자) 맷 채프먼이 아웃되는 순간 나는 바로 내가 타석에 들어선다고 생각했다.”
이정후는 이날 홈런이 “너무 결과론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이 홈런을 쳤기 때문에 이런 인터뷰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경기 결과를 너무 생각하기보다 최대한 과정만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 이유를 떠올리면 스트레스 받고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120여 경기가 남았고, 그 경기 속에서 내가 해야 할 경기가 더 많기 때문에 이 모든 걸 다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 과정들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정후는 최근 상대 투수들이 패스트볼보다는 변화구 승부를 늘리는 것과 관련해서 이날 홈런이 커브볼에서 나온 데 대해 앞으로 야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에 변화구가 잘 안 걸리는 느낌이 있어 타격 연습할 때 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 그렇게 준비를 하다 시합 때 하나씩 나오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오늘 홈런이 나온 것도 투수가 원래 싱커를 많이 던지는 선수라 몸쪽 승부를 예상했다. 그래서 초구와 2구가 바깥쪽으로 흘러왔을 때는 아예 타격할 생각도 안 했고, 몸쪽으로 공이 딱 하나 들어온 걸 쳐내서 다행이었다.”
이정후는 자신의 응원단인 ‘후리건즈’가 오라클파크를 다시 찾아 단체 응원전을 벌이고, 많은 한국 팬들이 야구장에서 직접 응원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날(한국 문화 유산의 밤)에 한국 선수인 내가 이렇게 좋은 활약을 펼쳐 더 좋았다. 나를 통해 또 다른 한류 문화를 통해 미국 팬들에게 한국을 많이 알리게 돼서 더 의미가 컸던 것 같다.”
메이저리거 이정후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가 대단한 건 아직도 그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정후의 야구는 야구 외에 인간적인 성숙함이 함께 담겨 있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