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랭킹1위 신진서 상대로 주도권 잃지 않고 완승…“우승 열망 커져” 11년 만에 LG배 탈환 의지

중국의 불참 속에서도 운명의 장난처럼 16강에서 만난 한국랭킹 1위와 2위. 박정환 9단은 대진 추첨에서 신진서 9단과의 대결이 확정되자 “강자를 너무 일찍 만난 게 아닌가 싶다. 추첨 직후 웃었던 것은 좋은 의미의 미소가 아니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박정환은 그간 신진서 9단을 상대로 무려 17연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햇수로는 2년 10개월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 대국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대국이 시작되자 박정환 9단은 달랐다. 천적 신진서를 상대로 특유의 끈기와 정교함으로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았고, 단 한 번의 역전도 허용하지 않은 채 178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송태곤 9단의 해설처럼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내용”을 선보인 완승이었다.
경기 후 박정환 9단은 “이길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에 얼떨떨하고 기쁘다”며 “그동안 신진서 9단에게 너무 많이 지면서 연패 부담이 컸고, 형세가 좋아도 ‘어차피 지겠지’ 하며 서두르다 진 경우가 많아 그 부분을 조심하려 했다. 최대한 길게 끌어가며 제 바둑을 두려고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진서 9단과의 대진이 확정된 후 숙소에 머물며 산책과 연구를 반복, 컨디션 조절에 힘썼다는 그는 “랭킹 1위를 꺾었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30주년 LG배에서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며 11년 만의 LG배 탈환 의지를 다졌다. 반면 짝수 해에 LG배와 유독 인연이 깊었던 신진서 9단은 24, 26, 28회에 이은 네 번째 우승에 도전했으나 박정환에 의해 좌절됐다.

일본은 응씨배 챔피언 이치리키 료 9단이 신예 김범서 5단을 누르고 홀로 8강에 올랐고, 대만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쉬하오훙 9단이 스미레 4단을 꺾고 역시 8강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최정 9단과 스미레 4단, 두 여자 기사의 동반 16강 진출로도 관심을 모았다. 메이저 세계대회 사상 첫 여자 기사 동반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기대감도 컸으나, 최정은 안국현에게, 스미레는 쉬하오훙에게 패하며 아쉽게 도전을 마감했다. 특히 스미레는 대만 최강 쉬하오훙 9단을 상대로 후반 역전 찬스를 맞았다가 놓쳐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한중 갈등 봉합은 상당한 시간 걸릴 듯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중국의 불참이었다. 지난 제29회 LG배 결승 3국, 변상일 9단과 커제 9단의 대결에서 불거진 이른바 ‘사석 논란’이 발단이었다.
당시 커제 9단이 사석을 제 자리에 놓지 않은 규정 위반으로 심판에 의해 경기가 중단된 후 패배하자, 중국바둑협회는 심판의 개입 시점과 경기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며 재경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중국 측은 결승 결과를 불복하고 이번 대회 불참을 통보했다.

이러한 갈등의 중심에 있는 커제 9단은 최근 개인 SNS(소셜미디어)에 지난해 결승전 사석 논란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며, 여전히 당시 사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그는 과거 라이브 방송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어, 판정 불복을 사이에 둔 양국 바둑계의 앙금이 해소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제30회 LG배는 8강 대진을 확정 짓고 항해를 계속한다. 추첨 결과 박정환-변상일, 강동윤-신민준의 한국 선수 간 대결과 함께 설현준-쉬하오훙(대만), 안국현-이치리키 료(일본)의 국제전이 성사되었다.
8강전은 8월 4일, 4강전은 8월 6일에 열린다. 대망의 결승3번기는 내년 1월 열려 30번째 우승자를 가린다. 반쪽짜리 대회라는 오명 속에서도 선수들의 투혼과 명승부가 이어지고 있는 LG배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LG배의 제한시간은 3시간, 초읽기는 40초 5회. 상금은 우승 3억 원, 준우승 1억 원, 4강 2400만 원, 8강 1200만 원, 16강 600만 원, 24강 400만 원이다. 그동안 나라별로 한국 14회, 중국 12회, 일본 2회, 대만 1회 우승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