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한동훈 등 후보군 거론되지만 당내 비주류 한계…문재인 정부 당시 선거 연전연패 악몽 ‘스멀스멀’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패했던 1997년, 2002년, 2017년 세 차례 사례 중 패장이 즉시 재복귀한 것은 두 번이다. 1997년 이회창 전 총재, 2017년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대선 본선에서 각각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직후 대안 부재론에 힘입어 당 대표로 복귀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즉시 복귀했던 이회창 전 총재가 2002년 대선 재수 끝에 또다시 패배한 기억이 있어 2017년 홍 전 시장이 돌아올 때 비판론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대선이라 홍 전 시장에게 패배 책임을 모두 뒤집어씌우기가 어려웠고, 결국 홍 전 시장이 대선 패배 두 달 만에 당권을 거머쥐었다.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관리형인 최병렬 대표를 내세웠다가 실패를 했던 경험을 국민의힘은 갖고 있다. 최 전 대표는 임기 내내 분란만 부르다 조기 낙마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보수 진영에선 대선 후보의 당권 도전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많지 않다. 이번에도 김문수 전 장관이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구체적 언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김문수 전 장관 역시 당권 도전 의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선 기간 고령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김 전 장관이 공개했던 턱걸이 사진이 6월 4일 또다시 나온 것을 두고도 비슷한 해석이 쏟아졌다. 김문수 캠프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열혈 청년 김문수가 오늘 아침 집 근처 관악산에 올라 운동 중”이라고 글을 올렸다. 김 전 장관이 턱걸이와 대형 훌라후프를 돌리는 동영상도 첨부됐다.
1951년생으로 올해 74세인 김 전 장관은 매일 서울 관악산에 올라 턱걸이 등으로 건강을 다져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턱걸이 많이 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자”고 할 만큼 턱걸이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6월 5일 YTN 라디오에서도 “당원들이나 일반 국민들의 뜻이 어디로 모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김 전 장관의 당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어 김 전 최고위원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김 전 장관을 보좌했던 저로서도 뼈저리게 느꼈고 김 전 장관은 더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갖고 있는 만성질환을 제대로 진단한 장본인이 김 전 장관인 만큼 치료도 적임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전 장관은 6월 4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작심 비판을 했다. 그는 대선 패배 요인에 대해 “우리 당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신념, 그걸 지키기 위한 투철한 사명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계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당에 대한 개혁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읽혔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당 대표 출마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직접적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그는 캠프 해단식에서 지지자들이 “김문수 당 대표”를 연호하자 “그런 소리 절대 하시면 안 된다”고 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일단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하다. 김 전 장관은 대선 재수가 가능해 당 대표로 복귀했던 이회창·홍준표 사례와는 달리 5년 뒤 재도전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당 내부 권력구도도 더 짚어봐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 주류인 친윤계는 “(대선 패배) 수습을 위해서는 전당대회보다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더 낫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김 전 장관이 당권을 향해 움직이기엔 아직은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김 전 장관이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다 전례도 많아 당권 고지를 향한 명분은 쉽게 확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김 전 장관 성격은 뒤돌아보지 않는 직진형이다. 내년 지방선거 공천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당내 주류인 친윤이 공천권을 갖게 될 김 전 장관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중”이라고 했다. 친윤계의 이러한 스탠스엔 대선 경선 때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놓고 진통을 겪었던 후유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 친윤계와 각을 세우며 ‘선명성’을 앞세워왔던 한동훈 전 대표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당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권 장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세몰이 발판으로 삼아 기존 당권파들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친한동훈계에선 연일 친윤계의 대선 패배 책임론을 부각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한동훈 전 대표는 6월 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제21대 대통령 선거 패배에 대해 “국민께서 불법 계엄과 불법 계엄 세력을 옹호한 구태정치에 대해 단호한 퇴장 명령을 내리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기득권 정치인들만을 위한 지긋지긋한 구태정치를 완전히 허물고 국민이 먼저인 정치를 바로 세울 마지막 기회”라고도 적었다.
한 전 대표의 일갈은 오는 7~8월 열릴 것으로 보이는 조기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물갈이 등 국민의힘에 대한 대청소를 시사하며 ‘보수진영 재건’을 원하는 표심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친한계로 불리는 박정훈 의원도 페이스북에 “국민이 놀랄 변화를 약속하고도 지키지 못한 김용태 비대위는 즉시 해체하고 대선판을 협잡으로 만들었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며 “하루빨리 새 원내지도부를 꾸려 우리 당의 진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 측의 대청소 압박은 즉각 먹혀들었다. 친윤 핵심 권성동 원내대표가 6월 5일 사퇴를 선언한 것을 필두로 현 당 지도부가 사실상 와해됐다. 당연직 비대위원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비대위원들이 같은 날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임이자 최형두 최보윤 비대위원과 당연직 비대위원인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사의를 밝혔다. 정치권에선 김용태 비대위원장 거취도 시간문제로 본다.
자진 사퇴였지만 현 지도부가 쫓겨나가는 그림이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에서조차 뒷짐을 지는 행태, 분열의 행보를 보인 부분, 내부 권력 투쟁을 위해 국민의힘을 음해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논리를 칼처럼 휘두르고 오히려 그들의 칭찬을 훈장처럼 여기는 자해적인 정치 행태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하는 국민과 당원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대선 과정에서 응원보다는 동료들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를 때리면서 지도부를 몰아세워온 내부총질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었다.
한 전 대표가 당을 요동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위세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한 전 대표가 원외인 것은 물론, 친한계 역시 비례대표가 다수인 ‘당내 소수’여서 단숨에 당권까지 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가 어려운 승부로 예상되는 내년 재보궐 선거나 서울시장 출마 등을 통해 당에 대한 헌신을 우선 보여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친한계 내에서도 한 전 대표가 몸집을 키운 후 당으로 복귀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윤 전 대통령 및 당 주류와의 차별화를 시도해온 한 전 대표가 대선 패배로 인해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 전 대표에 대한 선호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배신자 프레임으로 인해 거부감 역시 강한 만큼 당권 재장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한 친한계 의원은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격에 나설 것이다. 내란 특검법도 그 일환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선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을 찬성했던 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면서 “김문수 전 장관으로는 당을 살릴 수 없다는 걸 당원 모두가 알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친윤계가 다시 지방선거 공천권을 가져가겠다는 건 당을 망하게 하는 길이다. 새로운 세력이 당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이든, 한 전 대표든, 제3의 후보이든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국민의힘 내부의 화학적 결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재건축이 정답’이라는 훈수가 쏟아지고 있지만 국민의힘 현 상황은 그러기엔 내부 갈등 치유가 쉬어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존재도 부담스럽다. 국회는 6월 5일 민주당 주도로 이른바 ‘3대 특검법(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비롯한 지난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거 특검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초반 적폐수사 때, 국민의힘은 보수진영이 배출했던 두 명의 대통령이 기소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내란 특검 등으로 당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여기에 국민의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원로’들의 공세가 거세 동요는 커지는 모습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6월 5일 페이스북 글에서 국민의힘을 겨냥해 “그 당은 이제 회생하기 어려울 정도로 뼛속 깊이 병이 들었다”며 “이념도 없고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고 사익만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홍 전 시장은 “정치검사 출신 네 놈의 합작으로 또 한 번의 사기 경선이 이뤄졌다”며 “곧 다가올 아이스 에이지(Ice Age·빙하기)는 혹독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썼다.
홍 전 시장이 언급한 ‘검사 네 놈’은 윤석열 전 대통령, 한동훈 전 대표,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 권성동 전 원내대표를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 전 시장 글은 등 돌린 민심 이외에도 흔들리는 제1야당을 향한 특검 세례 등 정부·여당의 대대적인 공세가 개시될 것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단일대오 구축을 빠른 시일 내에 끝낸다 해도 대항력을 갖출까 말까하는 판에 대선 패배 직후부터 깊은 내홍에 빠진 국민의힘을 두고 보수 진영에선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내리 참패했던 ‘암흑기’를 보낸 역사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그때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다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연이어 바꾸고 당 지도부 역시 수시로 붕괴하는 치욕을 겪었다. 지금 이대로 가면 그때 악몽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데 40% 넘는 득표율로 민주적 정당성을 상당 부분 확보한 김문수 전 장관이 일단 당 지도부에 복귀해 당을 추스르는 게 야당의 절멸을 막는 길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