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요청이 왔는데 집사람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제출하라는 거야. 내가 장관을 하는데 그게 왜 필요한지 이해가 가지를 않아.”
청문회를 한다고 하면서 가족의 사적인 영역까지 건드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계속했다.

국회 청문회 풍경을 보면 건달들이 집단 폭력을 가하는 장면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근육의 힘이 아니라 언어폭력을 쓴다는 것이다. 총리나 장관이 되려는 사람들이 입이 봉쇄된 채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는 나쁜 놈이야’라고 결론을 정해놓고 그렇게 되기까지 두들겨 패는 모습이다. 정치권부터 시작해서 극도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분노와 증오를 보는 것 같았다. 괜찮은 인재들은 각료로 추천받아도 대부분 거절하는 모습들이다. 청문회에 불려가 만신창이가 되기 싫은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국무총리의 청문회에 관한 뉴스를 들었다. 이혼한 전처가 키운 자식의 통장에 들어있는 돈을 문제 삼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방향을 ‘통합’으로 내세웠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이재명 후보를 찍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도덕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의 장점을 살피면서 그가 바른 정책을 제시하면 성원하는 게 통합을 지지하는 국민의 자세일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깨달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년 시절 공장에 들어간 그는 검정고시로 차별의 장벽을 뚫고 대학에 들어갔다. 혼자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의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앞서가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사회는 좋은 세상이 아니다.
세상에는 경쟁에서 패배해 어찌할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통령의 어린 시절 그 가족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시장 도지사부터 대통령까지 그의 공약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그 사상적 배경은 평등보다 더 깊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헌법은 개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라고 한다. 그 이면은 사랑이다. 사랑이 흘러야만 통합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따뜻한 민주주의가 된다.
처절한 환경에서 자라고 심한 권력투쟁을 거친 대통령에게서 우려되는 것은 혐오와 분노다. 혹시나 내면에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몇 년 전 내 또래의 친한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민사법정에서 상대방을 대리한 이재명 변호사와 싸운 적이 있어. 그때는 이재명이 누군지 몰랐지. 직업적 일이라고 하지만 싸우다 보니까 감정이 에스컬레이터 됐어. 그런 경우 소송이 끝나도 감정의 앙금이 남고 서로 서먹서먹하게 되지. 그 후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재명 변호사가 꽃을 보냈더라고. 정말 놀랐어.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싸웠는데 말이야. 내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에 대한 내 인상이 나쁘지 않게 되더라고.”
깜짝 놀랐다. 소송에서 싸운 상대방 변호사에게 꽃을 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까지 됐는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렇게 정치적 반대자들의 마음을 녹일 능력이 있다고 본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제1의 덕목은 무엇일까. 그의 소명의식과 헌신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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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