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업 선박 좌초에 이미지 꼬르륵
1. 글로벌 금융그룹
2012년은 특히 글로벌 금융그룹들에게 잔혹한 한 해였다. 지난 1년 동안 은행들이 야기한 무질서 상태는 디어마이어 교수가 뽑은 가장 심각한 브랜드 가치 하락 사례였다. 이 혼란을 일으킨 주범들로 그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도이체 방크, 골드만삭스, HSBC, JP 모건 체이스, 모건 스탠리, 스탠다드 차타드, UBS 등을 꼽았다.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직원들의 리보(국제금융시장에서 은행 간 적용되는 금리) 조작이나 내부자 불법 거래, 사기, 돈세탁, 실패한 페이스북 기업공개 등이었다.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의 경우, 현재 리보 조작 혐의가 인정돼 미국, 영국, 스위스 등 3개국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벌금을 지불할 처지에 놓였다. UBS가 지불해야 하는 벌금은 영국 금융감독청에 2억 6000만 달러 (약 2780억 원),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에 6430만 달러(약 690억 원),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법무부에 12억 달러(약 1조 2870억 원) 등 총 15억 달러(약 1조 6000억 원)가량이다.
하지만 문제는 벌금 액수가 아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실추된 명예다. 올 한 해 이렇게 망신을 당한 금융그룹은 UBS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바클레이스 은행은 지난 6월 리보조작 혐의로 4억 5000만 달러(약 4800억 원)의 벌금을 미국과 영국 금융당국에 지불했는가 하면, 영국의 HSBC 은행은 돈세탁 혐의로 19억 2000만 달러(약 2조 원)라는 사상 최대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 올해 초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로이터/뉴시스 |
2012년 초 발생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좌초 사건은 크루즈 여행업계에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사고로 4000명 이상의 승객들이 한밤중에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30명 이상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반쯤 기운 채 바다에 잠긴 유람선의 처참한 모습은 신문과 TV 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이 사건이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의 기괴한 행동들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왜 항로를 벗어나 무리하게 운항을 했는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이에 그는 “여러 번 같은 항로를 운항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 시스템을 작동하지 않고 수동으로 운항했던 것이 실수였다”고 말했다. 또한 배에 남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혐의에 대해서는 “갑판에서 발을 헛디뎌 구명보트 위로 떨어진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크루즈 여행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던 것은 당연한 일. 무엇보다도 크루즈 회사 측의 안전 불감증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한동안 많은 여행객들이 크루즈 여행을 꺼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 베이징 애플스토어(왼쪽)와 애플의 전자 부품 하청업체 팍스콘. |
치솟는 주가, 충성도 높은 고객들, 업계에서의 상징적인 위치 등 이 모든 것들도 무한정 명예를 지켜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한번 스캔들이 터지면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은 순식간이니 말이다.
바로 애플 이야기다. 애플의 명성에 흠이 간 것은 중국의 전자부품 하청업체인 팍스콘을 둘러싼 잡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했던 것은 잇따라 발생한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이었다. 이는 팍스콘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나타내주는 단면이었다. 이를테면 불법적인 시간 외 근무, 공장의 미흡한 안전시설, 형편없는 숙식 환경 등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연달아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애플과 팍스콘은 저마다 해법을 내놓았다. 팍스콘의 경우 미 공정노동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후 노동법에 저촉된 항목들-지나친 초과 근무, 무보수 잔업 등-을 차례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초반의 늑장대응과 회피하는 듯 미적지근한 태도 때문에 비난을 샀던 애플은 팀 쿡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빠른 시일 안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노라고 약속하면서 비난을 잠재웠다.
4. 월마트
월마트에게 2012년은 그 어느 해보다 끔찍한 해였다.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몽은 멕시코에서 시작됐다. 월마트 최대주주인 마누엘 아랑고가 대선 기간 동안 좌파 성향의 민주혁명당 후보였던 안드레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를 비방하는 선거 캠페인에 자금을 댄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반발을 샀던 것. 심지어 월마트 직원들에게 보수 성향인 제도혁명당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후보 선거공보물을 배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월마트의 선거개입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특정 후보를 지지 혹은 반대하는 선거운동에 기업이 개입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멕시코의 많은 기업들은 암암리에 이런 활동을 불법적으로 해왔으며, 월마트 역시 이런 기업들 가운데 하나였다.
결국 대선에서 패한 오브라도 측은 니에토를 후원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월마트를 비롯한 코카콜라, 펩시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멕시코 국민들로부터 심한 반감을 사면서 매출이 뚝 떨어지는 한파를 겪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1월에는 월마트에 의류를 납품하는 방글라데시의 ‘타즈린패션’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120여 명의 노동자들이 불에 타 죽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케빈 가드너 월마트 대변인은 “분명 월마트의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 앞으로 ‘타즈린패션’으로부터 납품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반월마트’ 운동은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5. 랜스 암스트롱과 리브스트롱 재단
고환암을 극복하고 ‘뚜르 드 프랑스’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영웅 대접을 받았던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에게 2012년은 그야말로 최악의 해였다. 약물 복용 혐의가 드러나면서 미 반도핑기구와 사이클연맹으로부터 타이틀을 모두 박탈당했는가 하면, 대회출전 및 코치직까지 모두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최대 스폰서였던 ‘나이키’와 버드와이저 맥주 생산업체인 ‘앤호이저부시’가 줄줄이 계약을 해지하면서 망신살도 뻗쳤다.
그의 추락은 그가 세운 암재단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암스트롱이 즉각 재단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한동안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으며, 급기야 재단은 ‘랜스암스트롱 재단’에서 ‘리브스트롱 재단’으로 이름까지 변경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6. 수전 G. 코멘 유방암 재단
비영리 단체에게도 명성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영리 기업들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한 또 하나의 사례는 미국 최대 유방암 재단인 수전 G. 코멘 재단의 사례다. 디어마이어 교수는 “비영리 단체의 귀중한 자산은 인적 자산과 명성 외에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신뢰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비영리 단체에게 있어 신뢰란 무엇보다 중요하며, 만일 이 신뢰가 유지되지 않으면 승수효과는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말했다.
수전 G. 코멘 재단이 미국인들에게 신뢰를 잃은 것은 지난 1월, 느닷없이 ‘미가족계획연맹’의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는 유방암 연구활동의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의미였으며, 이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반대 운동이 벌어지는 계기가 됐다.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이 논란으로 결국 낸시 브링커 CEO와 엘리자베스 톰슨 회장이 줄줄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지원 중단은 없던 일이 됐지만 한번 돌아선 후원자들의 마음은 쉽게 되돌리지 못했다. 결국 코멘 재단이 해마다 개최하는 ‘유방암 치유 달리기 행사’의 참가율은 전년대비 19%가량 떨어지고 말았다.
7. 칙필에이 패스트푸드 체인점
미국의 치킨샌드위치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칙필에이’는 지난 미 대선 기간 동안 뜬금없는 ‘동성애 논쟁’에 휘말려 한바탕 된서리를 맞았다. 사건의 발단은 회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댄 캐시가 “나는 성경에서 정의한 가족의 형태를 지지한다”고 발언한 데서 시작됐다.
이 말인즉슨 자신은 동성애 결혼에 반대한다는 의미였으며, 더 나아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발언 후 전국의 칙필에이 매장이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 지지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벽에 낙서를 하거나 동성애 옹호 포스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도 다반사였으며, 어떤 매장에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리는 등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됐다.
동성애 인권 단체로부터는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던 반면, 칙필에이를 지지했던 보수 단체들이나 정치인들(공화당 경선후보였던 릭 샌토럼이나 마이크 허커비 등) 사이에서는 “칙필에이 매장을 자주 방문하라”는 ‘바이콧(buy-cott)’ 운동이 벌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칙필에이와 동성애 논란은 정치적 이념과 소비자 기호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8. BBC 방송국
아동 성추행 은폐 의혹과 한 정치인을 상대로 낸 오보 기사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BBC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최악의 해를 보냈다.
논란은 국민 MC로 불렸던 지미 새빌이 과거 BBC 방송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무려 300~400명의 아동을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시작됐다. BBC가 새빌의 성추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 혹은 방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온 영국이 충격에 휩싸였으며, 2011년 폭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놓고도 방송 직전 취소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분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BBC의 추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마 후 BBC 대표 탐사보도프로그램인 <뉴스나이트>가 70년대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던 중 제보자의 말만 듣고 한 정치인을 가해자로 지목했다가 번복하면서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인터넷을 통해 실명이 공개되면서 난처한 입장에 놓였던 해당 정치인은 BBC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BBC는 오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굴욕을 겪었다.
9. 중국 내 일본 기업들
2012년 중국과 일본 두 나라 간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손해를 본 일본 기업들로는 도요타, 혼다, 닛산, 소니 등이 있다. 도요타의 경우 판매량이 49%가량 급락했는가 하면, 혼다는 40%, 닛산은 35%씩 각각 하락했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독도 분쟁 못지않게 민감한 이슈다.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벌어진 오래된 분쟁에 최근 다시 불이 붙은 것은 지난 9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센카쿠 열도를 정부 차원에서 매입하겠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이는 일본 정부가 대외적으로 센카쿠열도에 속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를 일본 땅이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에 중국 정부는 강력히 항의했고,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반일 감정이 들불처럼 확산됐다. 과격한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일장기를 불태웠는가 하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결국 이런 반일 감정은 중국 내 일본 제품 판매량을 뚝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10. 미 프로미식축구리그(NFL)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프로스포츠 종목인 미식축구. 시청률도 매년 상승하고 있고, 팬들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문제는 다름 아닌 선수들의 안전이었다. 미식축구는 선수들끼리 몸싸움도 치열한 데다 머리 외상과 뇌진탕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스포츠로 악명이 높다. 이렇게 반복해서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면 조기 치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에 지난 6월 2000명가량의 미식축구 전현직 선수들이 NF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는 스포츠 관련 소송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미식축구협회가 경기 도중 당하는 뇌 부상이 점차 장기적인 뇌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선수들에게 사전 경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시 말해 경기의 폭력성에 대해서만 경고할 뿐 그에 따른 건강상의 위험은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이례적인 집단 소송과 미식축구팬들의 시선을 의식한 NFL 측은 즉각 미국립보건원 소속 뇌연구 기관에 3000만 달러(약 320억 원)를 기부하는 등 발 빠른 행동을 취했다. 또한 협회의 뇌진탕 관련 규정을 수정하는 등 선수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디어마이어 교수는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선수들의 안전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식축구의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 미식축구협회가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다”라고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