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 자본·기술 문턱 낮아지고 수요·손익 예측도 전문화될 것…대학 교육은 ‘글쓰기 평가’ 내려놓고 콘텐츠·인프라 혁신해야”

영화계에서는 오픈AI의 ‘소라(Sora)’, 구글의 ‘Veo’, 이미지 생성프로그램 ‘미드저니’ 등 생성형 AI 도구들이 앞으로 영화 제작에 적극 활용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다만 아직은 극복해야 할 기술적 한계가 많다는 것이 임 교수의 진단이다. 첫째는 정교하면서 긴 영상을 만들기 어려운 ‘길이의 문제’, 둘째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캐릭터의 모습이 일관되게 유지되지 못하는 ‘연속성’의 문제다. 때문에 우선 단편 영화 제작을 중심으로 AI 도구가 적극 활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한계들이 자연스레 극복되면서 영화 제작은 획기적 변화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임 교수는 “누구나 스토리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영상을 자유자재로 제작할 수 있는 영화 제작 민주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AI 도구를 활용하면 영화 촬영 후 정교한 컴퓨터그래픽(CG)를 입히는 작업도 훨씬 수월해져 촬영 장소나 방법, 편집 작업의 유연성‧신속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크로마키(특수효과 스크린)가 있는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한 뒤 AI 도구를 쓰면 마치 야외 공간에서 촬영한 것처럼 도시 빌딩숲이나 사막 한가운데, 우주 공간으로 배경을 손쉽게 연출할 수 있다.
AI 빅데이터 기술로 대중들의 영화 수요‧기호를 파악해 영화 기획이나 스토리 메이킹을 더욱 전문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임 교수는 “보통 영화를 유통‧배급할 때 관객들의 선호도나 취향을 분석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워 어떤 영화가 소위 ‘대박’ 날지 알기 힘든데 AI가 빅데이터 분석으로 영화 흥행 예측을 정교하게 해주면 손익 분기점이 설정돼 제작비를 그에 맞출 수 있고, 그렇게 영화 기획과 제작, 유통‧배급, 소비 전반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임 교수는 AI 시대가 영화의 ‘종 다양성’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적 부담이 줄면서 다양한 기호의 대중을 타게팅한 영화들이 활발히 제작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AI가 발전해 영화 제작이 더 민주화 되면 그간 자본이 부족해 잘 만들지 못했던 다양한 영화들이 더 많이 제작되는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며 “이는 영화를 소비하는 플랫폼의 분화로 이어져 독립‧예술‧저예산 영화 소비 플랫폼이 따로 구축되고, 거대 자본과 높은 퀄리티를 앞세우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그들대로 또 소비 시장을 다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 속에 한국영화학회는 지난 5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시즌에 맞춰 ‘AI와 영화산업: 창작과 기술의 융합’ 춘계학술대회를 열어 관련 학계와 산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임 교수는 “AI를 어떻게 잘 활용해 영화를 제작‧유통할 것인지, 영화산업에 적용할 것인지, 굉장히 중요한 동시대적 과제가 떠올랐기 때문에 AI를 잘 이해하고 대응하며 도구로서 활용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최근 전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미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한류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평가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한류는 한국 내부에서 제작돼 해외에서 소비되는 형태였지만 케데헌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라는 미국 회사가 제작하고, 한국적 소재와 할리우드적 구조를 결합한 작품”이라며 “한국이 하나의 소재가 돼 누구나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된 상징적 사건”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치솟는 관심이 AI 시대와 결합해 앞으로 혁신적인 영화 작품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생산되길 기대하고 있다.

Q. 생성형 AI 도구 보급으로 대학의 강의‧연구‧평가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AI 도구를 써본 교수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정말 훌륭한 조교가 한 명 생겼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학생들도 교수와 마찬가지로 이 훈련된 조교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교수들은 그 조교를 능숙히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학생들은 아주 친숙하게 다루며 쉽게 잘 활용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또 큰 윤리적 고민 없이 잘 다루는 것인데 이 부분이 좀 걱정되는 지점이다. 이제 독서감상문‧영화감상문 같은 글쓰기식 레포트 과제는 제대로 된 평가(측정)가 어려워졌다. 인터넷 시대에는 학생들이 검색을 하더라도 한번 최종적으로 조합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과정마저 생략돼 버렸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나름 오랜 세월 훈련된 전문성이 있어 학생들이 과제물을 직접 쓴 것인지, AI에 의존한 것인지 정도는 금방 구별해 낼 수는 있지만, 의심은 할 수 있어도 이를 직접 증명해내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Q. 현장에선 어떤 대책이나 대안을 갖고 계신지.
―우선 AI 도구 활용에 대해 교수와 학생 사이에 어떤 윤리적 기준이나 서약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글쓰기식 평가는 이제 말하기평가 방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다만 수강생이 대략 100명이 넘는 대형 수업에선 현실적으로 또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연구 과정에서는 연구 설계나 자료 조사 등에서 AI 조교의 도움을 일부 받을 수 있지만 실제 연구수행이나 연구결과 확인 등은 연구자가 직접, 구체적으로 수행해야 맞다. 생성형 AI는 자체적으로 진위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가 이에 100% 의존해서는 안 된다.
Q. AI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의 교육·연구는 어떻게 혁신해야 하나.
―교육 콘텐츠와 교육 인프라,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 째는 AI 작동 원리와 구조를 공부하는 공학교육, 둘째는 AI를 다양한 도메인(영역)과 결합하는 디자인 교육, 셋째는 AI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활용교육이다. 교육 인프라 측면에서는 디지털 교과서, AI 교과서 개발과 함께 AI 활용법에 대한 체계적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 지원을 위한 행정 혁신의 도구로서 AI를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는 모든 수업이 ‘블렌디드(결합) 러닝’이 돼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실과 현장, 이론과 실습, 국내와 해외, 전문 교수와 외부 전문가가 다양하게 결합하는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
Q. 대학을 이끄는 리더십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어떤 새로운 리더가 필요할까.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 대학이 가져온 고유한 교육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좀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 기존의 가치를 새 시대에 맞춰 어떻게 조정, 수정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AI 시대에도 대학은 무엇보다 ‘즐거운 캠퍼스’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엔 교수와 학생, 직원이 모두 순환 구조로 엮여 있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율성’이기에 서로 경청‧소통할 수 있는 학내 제도와 관습이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나 민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편히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이 계속 외적‧내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국외대의 경우 평생 교육과 외국인 유학생 교육, 두 측면의 사회적 책임감을 더욱 강화하면서 우리 대학의 중요 목표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더욱 잘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