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바나나’ 전통 특산품 부족한 도쿄 공략…‘과자 독극물 주입 사건’ 이후 개별 포장 확산이 기폭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세련된 패키지와 새로운 콘셉트로 무장한 신흥 강자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홋카이도의 화이트초콜릿 비스킷 ‘시로이 코이비토’와 미야기현의 커스터드 크림 카스텔라 ‘하기노츠키’다. 다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행 선물의 주류는 여전히 열쇠고리, 장식품 같은 잡화류였고, 과자는 부차적인 위치에 머물렀다.
변화는 1990년대 본격화했다. 1991년 출시되자마자 ‘도쿄 선물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도쿄 바나나’, 지역 한정판 ‘포키’ 같은 히트 과자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선물용 과자가 기념품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대에는 과자 선물이 넘쳐났고, 여행객들의 쇼핑백도 자연스럽게 달콤함으로 가득 찼다. 가격 부담이 크지 않은 데다, 개별 포장이 돼 있어 휴대하기 편리하며, 회사 동료들에게도 하나씩 나눠주기 좋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왜 하필 바나나였을까. 그레이프스톤 측의 대답은 단순했다. “일본인 모두가 좋아하는 맛이기 때문.” 도쿄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도시이므로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 누구나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보편적 맛이 필요했다고 한다. 바나나는 일본인들에게 어릴 적 소풍 간식으로 즐기던 ‘추억의 맛’으로 여겨졌고, 그 달콤한 기억을 담아 겉은 푹신하고 속은 바나나 크림이 든 바나나 모양의 과자가 탄생했다.
CNN은 도쿄 바나나에 대해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도쿄를 대표하는 기념품’으로 철저히 기획됐다는 점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한다. 이어 “1년간 판매되는 도쿄 바나나를 줄지어 놓으면, 도쿄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닿을 정도”라는 흥미로운 비교도 덧붙였다.

최근 도쿄 바나나는 한정 판매 전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레몬, 딸기, 벌꿀 등 새로운 맛을 정기적으로 선보여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일부 제품은 긴자점 등 특정 매장에서만 판매해 희소성을 극대화한다. 또 피카츄, 치이카와, 헬로키티, 도라에몽 등 인기 캐릭터와 협업해 특정 지역 팝업 스토어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전략은 브랜드마다 뚜렷하다. 도쿄 바나나가 희소성을 앞세운다면, 홋카이도의 ‘시로이 코이비토’는 홋카이도산 원유와 초콜릿이라는 원산지를 전면에 내세워 ‘현지성’을 강조한다. 반면 후쿠오카의 ‘히요코’는 100년 넘는 전통과 일본풍 디자인을 무기로 ‘역사성’과 스토리를 부각하고 있다.

여기에는 1984~1985년 일본 사회를 뒤흔든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범인이 청산가리를 주입한 과자를 슈퍼에 진열하며 대기업을 협박한 사건으로, 일본 제과업계는 이 사건 이후 독극물 혼입을 막기 위한 안전 대책으로 개별 포장을 급격히 확산시켰다. 동시에 저출산 시대를 내다본 제과 회사들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 기념품 산업에 뛰어든 것도 한몫했다.
과자 제조 기계 메이커들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타입의 선물용 과자’를 위해 꾸준히 협력 체제를 구축해 왔고, 덕분에 자체 공장이 없는 회사들도 선물용 과자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결과, 합리적인 가격대와 깔끔한 패키지, 지역 이름이 새겨진 한정판 과자들이 기념품 매장을 가득 메우게 됐다. 연휴가 끝난 뒤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직장인의 책상 위를 전국 각지의 과자가 차지하는 풍경은 어느새 일본의 일상이 되어갔다.

하지만 여행이 일상화된 지금, 상황은 다시 달라지고 있다. 자신을 위한 기념품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나눠줄 과자 선물조차 사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개인 여행인데 왜 회사에 선물을 챙겨야 하느냐” “다이어트 중이라 과자 선물은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 기념품 과자 시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해외 관광객들의 폭발적인 구매력이 여전히 관련 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오히려 예상을 웃도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각 브랜드는 이에 발맞춰 유기농·저당을 내세운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등 기념품 과자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