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찍히자 ‘별도 관리’
경찰 사이버수사팀이 박근혜 당선인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남동생 박지만 씨에 대한 비판 글을 인터넷에 올린 한 네티즌을 별도 관리해 인지수사를 한 것으로 의심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이 네티즌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글은 극좌로 편향돼있다”,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는 것. 이는 표현의 자유와 통신비밀의 원칙 침해의 소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경찰이 박근혜 당선인과 관련된 비판 글을 올린 네티즌을 인지수사해 논란이 된 사건을 들여다봤다.
대전에 사는 A 씨는 지난해 12월 27일 서울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팀장은 “지난번에 인터넷에 글 올리는 걸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또다시 정부에 대한 비판 글을 여러 차례 올렸더라”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이미 지난해 6월 서울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으로부터 한 차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이 문제가 돼 고발이 들어온 것. A 씨는 “한일군사협정을 새누리당의 정책위의장이 추진했다는 언론매체의 기사를 보고 검색을 통해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찾아봤다. 이 아무개 의원이라고 나왔다. 그래서 다음 아고라에 관련 기사와 함께 이 의원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며칠 뒤 내가 아고라에 올린 글이 삭제됐다. 이 의원 측에서 ‘이 의원은 4월 말로 정책위의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한일군사협정 추진과는 관련이 없다’며 이의제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의원은 나를 고발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으로부터 소환장이 왔다. 집이 대전이라 서울로 올라가기 힘들다고 하니 사이버수사팀장이 대전으로 내려와 대전중부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했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 지난해 11월 말 대전지방검찰청에서 다시 한 번 조사를 받았다. 대전지검에서는 ‘사건이 기소하기도 애매하니 이 의원과 연락을 해서 합의를 봐라’고 했다. 그러나 이 의원 측에서는 ‘일단 조사를 하자’더니 나중에 합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이 의원이 고발한 사건의 검찰 기소 여부를 기다리고 있던 중 A 씨에게 서울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이 다시 전화를 한 것이다. 팀장은 “인터넷 유머사이트 ‘오늘의 유머’와 다음 아고라에 왜 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그 주변 가족에 대한 비판 글을 썼느냐”고 말했다. 팀장이 문제 제기한 A 씨의 게시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남로당 전력 관련 글과 박지만 씨를 둘러싼 의문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대선 기간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후보자 비방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나는 유언비어 유포나 후보자 비방죄에 걸리기 싫어서 언론 매체의 기사를 인용한 다음, 내 의견을 몇 줄 적었을 뿐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했다.
A 씨가 팀장에게 “이번엔 고발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팀장은 “누가 고발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직접 검색해봤더니 반정부성향의 비판 글을 게시판에 많이 올렸기에 수사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팀장은 “당신의 글은 극좌로 편향돼있다”며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조만간 다시 대전에 내려가 몇 가지 조사를 할 예정이니 다시 연락하겠다”고 A 씨는 설명했다.
A 씨는 “아직 이 의원과의 사건이 법정으로 올라가지도, 형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전력이 있다고 특정인을 지정해서 별도 관리하고 지켜보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물론 통신비밀의 원칙을 침해하는 행위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나경원 새누리당 전 의원의 자위대 기념행사 참석에 관한 글을 쓴 네티즌 B 씨나 새누리당 총선 후보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네티즌 C 씨 등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리다 대선이 끝나고 이러한 문제가 자꾸 불거지자 잠적한 사람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서울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A 씨와 관련해서는 현재 내사 중이라 말할 수 없다”며 “언론에 사실과 다르게 전해진 내용들이 많다”고 밝혔다. 대전에 내려가 A 씨를 다시 조사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네티즌을 상대로 한 경찰 사이버수사팀의 인지수사가 가능한 것인가.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사이버수사팀이 합법적 절차를 거쳐 범죄혐의에 대해 내사를 착수해 인지수사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서울영등포경찰서의 경우는 대선 기간이다 보니 사이버수사팀이 후보자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에 대해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과정에서 A 씨의 글이 문제가 된다고 많이 분류되자 충고를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력이 있거나 용의점이 있다고 해서 사이버수사팀이 몇몇 네티즌을 지정해 특별감시하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공·대북 수사는 사이버수사팀에서 다루지 않는다”며 “만약 서울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이 ‘극좌로 편향돼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