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차명재산 →형제 싸움 집안 망신 뻔한 공식
▲ 태광그룹 형제간 감정의 골은 차명재산의 존재로 깊어졌다. 이후 이호진 전 회장의 횡령사건까지 터지면서 회복 불능에 이르렀다. 일요신문DB |
물론 태광그룹 2세들이 처음부터 원수지간이 된 것은 아니다. 사실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사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창업주는 악조건 속에서도 태광그룹을 알짜기업으로 키워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기업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보수적인 스타일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슬하에 3남 3녀를 뒀으나 경영권 승계에 있어서만큼은 걱정이 없었다. 며느리와 딸은 철저히 경영에서 배제했으며 장자 승계를 우선으로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창업주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1996년 이 창업주 타계 이후 장남 이식진 씨와 차남 이영진 씨가 차례로 일찍이 세상을 떠난 것. 당시 이식진 씨의 장남이 회사를 이끌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 결국 삼남이던 이호진 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처럼 험난한 경영자 교체 바람을 겪으며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으나 이 전 회장 역시 아버지가 그랬듯 조용히 태광그룹을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비록 이 전 회장이 경영전반을 맡았으나 회사 지분은 이식진 씨의 장남 이원준 씨가 0.43%나 높아 향후 승계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더욱이 이 전 회장은 외삼촌인 이기화 전 회장과 회사 운영 방침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으면서 친척들과도 등을 돌려 더욱 입지가 불안해졌다.
이 때문에 이 전 회장은 독자 경영을 선언하며 자신의 지분을 늘리는 동시에 아들 현준 군에게도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덕분에 현재 현준 군은 미성년자 신분으로 태광그룹 5개 계열사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부분 보유하고 있으며 딸 현나 양 역시 상당부분 상속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편법으로 이뤄진 상속은 탈을 일으켰다. 이러한 이 전 회장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긴 가족들이 하나둘 ‘반대파’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2010년 검찰의 비자금 수사로 인해 차명재산의 존재가 드러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이 전 회장과 모친 이선애 전 상무가 1400억 원대의 회사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실형까지 받자 갈등의 씨앗은 폭발하고 말았다. 이 전 회장은 회장직을 내놓음은 물론이고 간암으로 보석 허가까지 받았으나 가족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저 깃발을 뽑아든 인물은 이 창업주의 둘째 딸 이재훈 씨(56)였다. 이 씨는 지난달 11일 동생 이 전 회장을 상대로 78억 6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이 씨는 태광그룹 상무로 이름을 올려놨으나 경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으며 현재는 그 직함도 내놓은 상태다.
이 씨는 우선적으로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 등의 보통주 10주씩을 포함해 과거 이 전 회장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달라며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월 이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구속을 피하기 위해 횡령·배임 피해액 배상 명목으로 이 씨로부터 100억 원을 빌렸으나 이 중 77억 6000만 원을 갚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소장에 따르면 이 씨는 “동생이 2003년부터 최근까지 기존 상속 재산 외의 막대한 재산을 자신의 소유로 귀속시켜 상속권을 침해한 사실이 2010년 검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며 자신의 몫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더욱이 이 씨는 “동생이 차명주식이나 무기명채권으로 된 대규모 상속재산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 사실이 없어 정확한 재산 규모를 알지 못한다”며 재판 과정에 상속재산 규모를 명확히 파악해 소송 가액을 늘릴 방침이라는 뜻도 밝혔다. 이 씨에 따르면 차명재산 규모가 1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를 들고 나선 쪽은 이 씨뿐만이 아니었다. 지난달 28일 이 전 회장의 이복형인 이유진 씨(53)도 차명재산 상속분을 나눠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낸 것. 이복형 이 씨는 2001년 대법원에서 이 창업주의 친자식으로 인정받곤 곧바로 상속회복 소송을 내 2005년 135억 원의 재산을 물려받은 바 있다.
이 씨는 소장에서 “당시 몰랐던 태광그룹의 주요 재산을 검찰 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 또한 지난해(2011년) 과세당국으로부터 5억 5700여만 원의 세금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곤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상속신고에서 누락된 재산이 405억여 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우선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보험 등 계열사 주식 18주와 1억 1000만 원을 요구했다. 이 씨 또한 향후 재판과정에서 상속재산 규모가 확인되는 대로 소송규모를 확대할 뜻을 전했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 측은 공개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고 있으나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권이 발생한 시점은 이 창업주가 사망한 1996년이기에 상속회복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태광그룹 역시 오너일가의 개인적인 문제로 제한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지만 삼성가와 꼭 닮은 소송을 벌이는 만큼 한동안 세간의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