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경찰 동행 출국하는 척, 하루 뒤 범행…네티즌 “장소만 일본일 뿐 같은 비극 반복” 안타까움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8월 29일, A 씨는 “한국에서 온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더니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박 씨에게 “A 씨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구두로 주의를 주고, 귀국을 권고했다. 박 씨는 “A 씨와 연락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진술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또한 “오사카에 들렀다 한국으로 귀국하겠다”고 밝혀 경찰이 직접 도쿄역까지 동행해 그가 신칸센에 탑승하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하루 뒤인 9월 1일, 참극이 일어났다. 의류 관련 업무로 스튜디오를 방문한 A 씨가 잠시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매복 중이던 박 씨가 그녀를 습격한 것이다. 당시 스튜디오 2층에 있던 카메라맨은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1층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목 부위에 치명상을 입은 A 씨는 결국 병원에서 사망했다.
현장 CCTV에는 사건 직후 달아나는 용의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경찰은 공항 주변으로 수사망을 좁혔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박 씨를 검거했다. 체포된 그는 현재 진술을 거부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현장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이별 통보 하나로 목숨을 잃다니 참담하다”며 분노를 전했고, 또 다른 주민은 “경찰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 피해자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충격은 컸다.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네티즌들은 “장소만 일본이었을 뿐 같은 비극이 반복됐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법학자 호시 준이치로 도쿄도립대학 교수는 “피해자가 경찰에 최초 상담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벌어진 사건”이라며 “경찰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대응했지만, 현행법상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차 구두 주의와 공항까지의 동행, 보안검색장 확인은 현행법상 가능한 최대 조치였다”며 “이번 사건이 현재 검토 중인 ‘스토커 규제법’ 개정 논의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현재 스토커 규제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위치정보 태그 등 추적 장치의 악용을 규제하고, 피해자의 신청이 없어도 경찰이 직권으로 경고 및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피해자가 보복을 우려해 신고를 주저할 경우에도 신속한 개입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스토커 규제법은 개정 때마다 강화돼 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엄격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