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엔 날 세우고 친한계는 포용 ‘투트랙’ 전략…한동훈 라방으로 기회 엿보지만 상황 녹록잖아

8·22 전당대회 기간 중 ‘강한 장동혁’을 보여줬던 장 대표는 취임 이후 ‘부드러운 장동혁’으로 변했다. 그런데 9월 들어서자마자 돌변, 발톱을 세우기 시작했다. 타깃은 한동훈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한 전 대표를 겨냥해 “전당대회 과정에서 저를 최악이라고 표현한 분과 어떤 통합을 하고, 어떤 정치를 함께할 수 있겠느냐”고 공격했다.
장 대표는 9월 5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진행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배척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 행보를 같이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한 전 대표와 한지붕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장 대표 발언은 지난 전당대회 기간 중 한 전 대표의 행태를 직격한 것이었다. 한 전 대표는 장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간 당 대표 선거 결선 투표를 앞둔 8월 23일 페이스북에 “내일 당 대표 결선에서 적극 투표해 국민의힘이 최악을 피하게 해 달라”고 적은 뒤 김 전 장관 지지 입장을 밝혔다.
장 대표는 인터뷰에서 “분열의 불씨를 남긴 채 무작정 묻어두고 가자는 통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이른바 ‘당원 게시판 사태’에 대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일"이라고 발언하면서 한 전 대표를 몰아세웠다. 당원 게시판 사태는 2024년 11월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다.
강성 반탄파(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파)였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가 사실상 이끌었던 찬탄파에 대해서도 “묻어두고 가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동훈 배제에 대한 명분 확보를 위해 찬탄파 문제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이(찬탄파)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하고 싶다”며 “심각한 해당 행위와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쌓여있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분들은 당론과 다른 입장을 취하더라도 경고나 가벼운 징계에 그칠 수 있지만, ‘쌓여있는’ 분들은 한 번만 더 그런 모습을 보이면 그 즉시 과감한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력 경고했다.
장 대표의 이런 모습은 새 지도부는 물론, 당원 다수의 엄호 사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8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원게시판 조사를 공식 거론하며 “내부 총격과 해당 행위를 근절하는 것이 시급하다. 당원 게시판 조사는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최고위원이 시동을 걸자 당원들도 들끓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는 “당게 사건 수사하라” “한동훈 당게 게이트 철저히 조사하라” “당게 진상규명”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기 시작했고 일부 당원들은 “조사를 막는 세력은 배신자”라며 험악한 표현을 담기도 했다.
장동혁 지도부는 한 전 대표와는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친한계를 향해서는 유화책을 펴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한 전 대표와 친한계를 분리, 한 전 대표를 고립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장동혁 대표는 9월 8일 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김형동 의원을 임명했는데, 김 의원은 한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지낼 때 비서실장을 역임, 친한계로 꼽힌다.
신동욱 최고위원은 9월 9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한동훈 대표와 소위 친한계라고 하는 분들은 또 다를 수가 있다. 당에는 항상 그런 건강한 비주류가 필요하다”며 “한동훈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고 해서 ‘당신 나가’ 이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2인자로 생각되는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서는 때리기가 본격화했지만 같은 찬탄파로서 한 전 대표보다는 대중적 지지도가 약한 조경태·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별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2등만 때린다는 것인데 상대해야 할 적을 줄이는 전술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2인자는 언제나 1인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대표는 검사 생활 때부터 친분을 쌓아온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권력 구도 안에서 대면하게 되자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2023년 12월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오른 한 전 대표는 2024년 총선을 앞에 두고 김건희 씨 문제로 대통령실 및 친윤계와 각을 세웠다. 당내에서는 이러한 한 전 대표 행보를 ‘자기 정치’라고 규정하며 격렬하게 맞섰다. “윤 대통령이 내어준 비대위원장 자리를 이용해서 자신이 대권 주자로 확실하게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쇄도했다.
“임기 3년 남은 대통령을 상대로 힘 싸움을 해보자는 것인가”라는 말까지 나오며 대통령실에서 한 전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양측 갈등은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한 전 대표가 한발 물러서며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논란에 따른 갈등은 봉합됐지만 이른바 ‘윤·한 갈등’은 윤석열 정부 내내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 때 그랬던 것처럼 국민의힘이 여당이었을 때 대통령과 당내 2인자와의 갈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박 전 대통령은 집권당 실력자였던 김무성 전 대표와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갔고 급기야 탄핵 정국에서 김 전 대표는 탄핵 찬성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인자로서 ‘당내 야당’ 위치를 차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 부처 세종시 이전을 두고 반대 입장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약속을 지켜야한다”고 맞섰고 양측은 거칠게 파찰음을 냈다. 박 전 대통령은 현직 이명박 전 대통령의 뜻을 결국 꺾어놨고 이 전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처지로 빠져들었다.
국민의힘이 야당 시절을 보낼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가 대선 재수 끝에 2002년 말 대선에서 또다시 실패하자 한나라당은 대혼돈에 빠졌다. 위기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2003년 6월 등판한 최병렬 대표였는데, 그도 2인자 딜레마에 빠졌다.
최 전 대표는 전당대회 때 서청원 후보와 경쟁했는데 경선은 과열됐고 둘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했다. 심각한 경선 후유증이 예고됐고 불길한 예감은 현실화했다. 최 전 대표는 임기 내내 서청원 의원과 충돌했고 최 전 대표 리더십은 흔들렸다. 보수 재건을 다짐했던 최 전 대표는 목표 달성은커녕 임기도 채우지 못했고 2004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낙마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최병렬 전 대표는 최틀러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졌는데 결국 불명예 퇴진했고 그 과정을 짚어보면 당내 2인자를 넘어서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지금 국민의힘도 야당인데 장동혁 대표가 강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대표 권력을 확실히 정립하는 내부 정치부터 완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장동혁 지도부가 한동훈 때리기부터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더 센 특검법’ 등 정청래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야 압박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똘똘 뭉쳐야 산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룬다. 국민의힘은 전국 당원들을 국회로 집결시키는 장외 투쟁을 본격화하는 중인데 이 과정에서 지도부의 정치적 입지는 공고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체의 ‘딴소리’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부 제언이 쏟아지고 덩달아 한동훈 배제론에 대한 반대 의견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친한계로 불리는 박정하 의원은 한 전 대표에 대한 따끔한 충고까지 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9월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가 “한 전 대표가 라방(라이브 방송)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진행자 질문에 “일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금 당이 이렇게 난리인데 너무 한가해 보이는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당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제일검’을 자처하는 한 전 대표지만 최근엔 전면전을 삼가는 모습을 보인다. 여당과 격하게 겨루고 있는 국민의힘 처지에서 내부에서의 이견 제기가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신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지난 4월부터 대중적 친화도를 노리고 ‘라방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노래나 옷의 정보를 공유하거나 먹방을 하고 있다. ‘엘리트 검사’ 이미지를 벗고, 대중적 친화도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단 당 외곽에서 기회를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장동혁 전 대표는 당내 지도부로서 현재 권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차기 대선을 노리는 미래 권력이기도 하다”며 “이 때문에 미래 권력 출현을 견제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 강제력을 동원해 2인자 미래 권력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배제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강한 견제구를 날려 더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