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닥터스재단과 미애원서 의료봉사···거동 불편한 산만디 어르신 왕진 서비스

의료진은 차트 대신 따스한 웃음을 보였, 정근 이사장(안과전문의)은 문진지를 손에 꼭 쥐고 직접 주민 곁에 앉았다. 김윤준 온병원 부원장(정형외과전문의)은 무릎을 꿇고 할머니의 다리를 두드렸고, 전창원 응급센터 과장은 전날 밤샘 근무에도 단단한 표정으로 청진기를 귀에 걸었다.
진료를 마친 몇몇 의료진은 다시 왕진 가방을 둘러메고 골목 위로 향했다.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계단, 물이 고인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끝에서 기다린 것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었다.

두 번째 왕진 갔던 집 부부의 사연은 더 절절했다. 88세 박 모 할머니는 오랜 류머티스 관절염에 시달리다 2년 전부터는 아예 걷지 못한다. 중환자실과 종합병원을 오가며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돌아온 처방은 “운동을 하라”는 말뿐이었다. 몇 년 전 겨울, 넘어져 팔이 부러졌을 때는 추위를 견디다 못해 일주일간을 집에서 버텼다.
결국 119로 병원에 이송돼야 했다. 이후 식사조차 어려워져 액상 영양식에 의지해 살고 있다. 살이 빠지며 기력마저 잃은 지금,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꾸준한 돌봄이었다. 그러나 행정 지원은 여의치 않았고, 그의 가족은 “병원 차원에서라도 도움 받을 길이 없겠느냐”며 희망을 붙잡았다.

시간이 흘러 해질 무렵, 미애원 식당은 또 다른 무대로 변했다. 의료진이 가져간 음향기기로 차려진 노래자랑무대 위에서 어르신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청진기를 걸었던 손은 박수를 치는 손이 됐고, 환자와 의사는 무대와 객석으로 자리를 맞바꿨다. 트로트 가락에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고, 잠시나마 골목 위에 그늘졌던 삶의 무게는 흩날리는 노랫소리에 실려 사라졌다.
“다른 병원들도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말한 한 주민의 바람은 수줍지만 진심으로 보였다.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을 비롯한 온병원 의료진은 “앞으로도 의료 소외계층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 미애원의 비 내린 풍경은 순간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변모했다. 무릎과 팔, 흐릿한 시력과 기력이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않는 노인들의 삶 한가운데로 흰 가운 입은 의사들이 희망의 꽃으로 피어났다. 낡은 건물 위로 내려앉은 그 하루는 오래도록 기억될 ‘늦여름 왕진의 풍경’으로 남았다.
이혜림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