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지지층 반발에 여야 특검법 타협안 파기…협치 깨뜨린 모양새 국정 운영 리스크 작용 전망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 국민 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다. 민생, 경제, 안보, 평화, 민주주의 등 내란으로 무너지고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6월 22일 이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했다. 7월 19일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했고, 9월 8일에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만났다. 악수조차 거부할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두 대표를 중재한 모양새였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강성 지지층에 대한 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이재명갤러리를 ‘당대표 특별포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재명갤러리는 이 대통령 지지층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이 대통령을 ‘갤주(갤러리 주인)’라고 부르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곳이다. 대통령실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등 유튜브를 기반으로 둔 매체의 대통령실 출입도 허용했다. 친여 성향 매체로 분류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지지층이 무조건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중도층 시각에서는 이들은 비호감이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면 중도층 이탈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서 이 대통령이 강성 팬덤만 바라보며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에서 터졌다. 8월 18일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민감하고 핵심적인 쟁점 사안의 경우 국민께 충분히 그 내용을 알리는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8월 19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정부·여당 간에, 또 한편으론 검찰개혁을 주장해 온 각 정당 간에 조율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좋겠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검찰개혁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정성호 장관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안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중수청 행안부 설치 개혁안과 반대되는 발언이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중수청 행안부 설치 방안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됐다.
그러자 강성 지지층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정 장관을 거세게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형배 의원도 “장관께서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9월 3일 민주당 의총에서는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쏠렸다. 한 민주당 초선의원은 “당원들의 압력에 의원들이 반론을 꺼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한 지지자는 일요신문에 정 장관과 민주당이 이 대통령 의중과 다른 행동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검사 이야기를 듣고 반영한 것 아닌가. 우리 지지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이야기”라며 “우리가 들고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나. (김병기-송언석 합의도) 그날 밤새 그 난리가 안 났으면 어떻게 됐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 특검 연장을 안 하는 조건으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 주기로 했다고 시끄럽더라”며 “이재명이 뒤에서 슬쩍 시킨 것 같다는 여론이 있어 나에게 비난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나는 (내용을) 실제로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국은 얼어붙었다. 국민의힘은 9월 12일 국회에서 1만 5000명이 참석(당 추산)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장동혁 대표는 “용산의 대통령 이재명,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 그러나 대한민국에 보이지 않는 대통령은 개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9월 21일에는 대구에서 장외투쟁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은 이 대통령에게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먼저 이 대통령은 통합과 협치 약속을 스스로 깨뜨린 모양새가 됐다. 이는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례로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는 미뤄질 전망이다. 금감위는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의 협조가 필수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반대하면 이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정부의 업무 혼선이 길어지는 셈이다.
#여권 내홍에 핵심 변수될 것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강성 지지층과 정치인 이재명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이들을 기반으로 체급을 키웠다. 시작은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이었다. 손가혁은 페이스북과 트위터(X의 전신)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도 SNS로 이들과 직접 소통했다.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다음 손가혁은 내분 끝에 해산됐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직후 ‘이재명 팬덤’ 규모는 더 커졌다. 먼저 2030 여성층이 유입됐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의 등장이었다. ‘재명이네 마을’이라는 이름의 네이버 카페도 개설됐다. 회원들은 자신들을 ‘가좍(가족을 지칭)’이라고 불렀다. 지지자와 이 대통령 사이에 가족과 같은 관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대통령은 카페 이장 자리에 올랐고, 지지자들에게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과 댓글 정화 작업 등을 권했다.
21대 국회 때 강성 지지층은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민주당 의원들을 ‘수박’이라고 낙인 찍었다. ‘2023년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때는 수박 색출 작업이 시작됐다. 고민정 의원 등 부결표를 던졌다고 밝힌 의원들은 수박 낙인이 찍혔고,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문자 폭탄을 받았다. 22대 총선 때는 비명계로 분류된 현역 의원 대다수가 친명계 인사들로 교체됐다. 강성 지지층은 ‘이재명 일극 체제’ 형성의 원동력이었다.
민주당 장악에 성공한 이 대통령은 ‘당원 주권 정당’을 천명했다.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거에는 권리당원 투표를 반영했다. 강성 지지층이 입법부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국회의장 민주당 경선에서 추미애 의원이 아닌 우원식 의장이 선출되자 강성 지지층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다른 이 대통령 지지자는 “여전히 의원들이 당원의 뜻에 반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봤다. 우리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조기 대선 국면이 시작되자 이 대통령은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내려놨다.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는 발언도 내놨다. 강성 지지층을 향해서는 비명계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대권 전략의 일환이었다. 강성 지지층이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취임 후 강성 지지층과의 관계 설정은 이 대통령의 최대 딜레마로 떠올랐고, 이는 검찰개혁 등을 둘러싼 여권 내홍에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검찰개혁 관련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앞으로도 강성 지지자들이 이 대통령과 당을 움직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