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군 주민들, 한전과 법적 분쟁…“주민 주도로 입지 다시 선정” vs “주민설명회 추가 진행 예정”
[일요신문]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의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밀양 사태는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던 주민 두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기도할 정도로 극한 상황까지 내몰렸던 사건이다. 2014년 6월 경찰과 한국전력이 반대 농성장을 강제 철거할 때까지 공사 중단과 재개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 박근혜 정부의 공권력 지원을 받은 한전은 결국 송전탑 설치를 강행했다. 이 사태의 사회적 파장과 후유증은 심각했다.
한국전력이 2029년 준공 목표로 전북 정읍에서 충남 계룡 간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용인시 석성산 중턱에서 설치되고 있는 송전탑 공사 현장. 사진=김지영 기자밀양 사태 10년이 지난 2025년 9월 ‘또’ 송전탑과 송전선로 설치를 둘러싸고 해당지역 주민과 한전 간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밀양처럼 특정지역이 아니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지자체 9개 지역으로 광범위하다. 이번 송전탑·선로 건설 사업은 전북 정읍, 김제, 임실, 완주 등 5곳, 충남 금산, 논산, 계룡 등 3곳 그리고 대전 서구 등 모두 9개 지차체가 해당 지역이다.
이들 지역을 통과할 예정인 송전탑·선로 설치 사업이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당 지역에선 송전탑·선로 설치 반대 주민대책위원회가 각 지자체별로 꾸려졌다. 해당 지역 주민 간 공동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충남 금산군 주민들은 한전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벌이고 있다. 한전과 주민 간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다. 주민들은 “주민 주도로 입지를 선정해야 하는데 한전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설명회와 주민 의견수렴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강한 불만을 쏟아낸다.
한전은 제9차 345킬로볼트(kV)의 신정읍-신계룡(선로거리 약 115km) 간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2029년 12월까지 마친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제9차 사업과 별도로, 2030년 12월 준공 목표인 제10차 신임실-신계룡 송전탑·선로 건설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제9차와 10차 모두 전남 신안과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나르기 위한 사업이다. 해당 지역 언론은 이들 사업과 관련해 보도하고 있지만 아직 전국적 관심을 끌진 못하고 있다.
송전선로는 발전소와 발전소, 변전소와 변전소, 발전소와 변전소 간을 연결하는 전선로와 부대설비다. 송전탑은 고압 송전선을 잇기 위해 세운 철탑. 우리나라에선 154kV, 345kV, 765kV 등 고전압이 많이 사용된다. 이 가운데 제9차 사업은 345kV다.
9차 사업에 세워지는 송전탑 높이는 50~100m, 평균 경간거리는 약 50m, 최소 소요 면적은 200㎡(약 60평), 평균 설치 기간은 약 3개월이다. 한전의 정보공개 요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송전탑·선로의 표준 공사비는 345kV 2회선 기준으로 1km당 32억 2200만 원.
일요신문 취재결과 9차 사업 예정지 주민들이 한전과 마찰을 빚는 사유는 대동소이했다. 9차 사업 지자체 9곳 가운데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군 등지를 9월 초에 가봤다. 두 지역은 9차 사업에 반발하는 기류가 특히 강한 곳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금산군 민심만 확인해도 9차 사업 갈등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금산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금산군 주민과 한전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법원은 지난 2월 송전선로 입지 선정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주민들이 제기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하지만 법원은 한전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지난 7월 21일 기존 결정을 뒤집었다.
한전이 추진하고 있는 제9차 송전선로 건설 사업 예정지 가운데 한 곳인 충남 금산군 일대를 박범석 ‘송전(탑)선로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가리키고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법원은 입지 선정 기준과 의견 수렴 방식 등이 담긴 ‘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의 효력 범위에 주목했다. 법원은 한전의 ‘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이 내부지침에 불과해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고 봤다. 이를 어기더라도 무효는 아니라고 결정했다. 한전 측 의견을 대부분 인용한 셈이다.
이 같은 법원 결정에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송전(탑)선로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회’(금산군 대책위)는 법원이 가처분 소송을 각하하자 지난 7월 25일 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하며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금산 지역의 경우 송전탑·선로가 통과할 ‘최적 경과대역 사전 결정’ 폭이 550m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최종 경과지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주민들 견해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생겼고 이후엔 환경권과 건강권이 침해받을 것이라며 불만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한전이 2020년 도입한 ‘주민 주도 입지 선정 제도’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역설한다. 금산군 주민들은 송전탑·선로 입지선정위원회(입지선정위) 구성부터 부실하다고 지적한다.
한전 중부건설본부 자료에 따르면, 주민대표 30명 중 지방의회 의원이 19명, 면장과 부면장 등 공무원이 2명이다. ‘순수’ 주민대표는 9명뿐이다. 금산군 대책위가 입지선정위 구성에 강하게 문제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금산군 대책위에 따르면 입지선정위에 주민대표가 전체 인원의 3분의 2 이상 참여해야 하는데 주민대표가 4명이나 부족한 상태에서 입지를 선정했다. 이에 금산 지역에선 “껍데기만 주민대표”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등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박범석 금산군 대책위원장은 “이처럼 위법한 입지선정위 구성은 부정 선수를 투입해 경기를 한 것과 같고 부정 선수가 발견된 경기는 모두 몰수패한다”며 “처음부터 잘못 구성된 입지선정위가 내린 결정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주민대표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입지선정위가 운영 과정에서도 주민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주민 의견수렴 절차인 주민설명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최적 경과대역’이 2023년 12월 22일 확정됐음에도 지역 주민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금산군 진산면 주민들은 10개월 후 전북 완주군 주민은 15개월 후, 충남 논산 주민은 19개월 후에나 송전탑·선로가 어디로 지나갈지 인지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송전탑·선로가 통과할 금산군 예정지는 대둔산 도립공원 바로 인근이다.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대둔산은 전북 완주군과 충남 금산군 경계에 있다. 케이블카와 구름다리, 삼선계단 등으로 연중 관광객과 등산객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만약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대둔산 앞으로 통과할 경우 자연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대둔산 주변 상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금산 주민들이 송전선로 건설 사업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는데 한전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금산군의 경우 지난 1월 주민설명회를 가졌는데 주민들이 이를 설명회로 체감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9차) 사업에 9개 지자체가 포함돼 있어 순차적으로 주민설명회를 갖고 있으며 향후에도 추가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지선정위 구성'과 관련해선 "입지선정위 주민대표는 해당 지자체에서 추천하는 주민들을 선정하고 있다. 한전이 임의로 주민대표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전이 추진하고 있는 제9차 신정읍-신계룡 간 송전선로 건설 사업 예정지 가운데에는 전북 완주군과 충남 금산군 경계에 있는 대둔산 도립공원이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언론 등을 통해 송전탑·선로 피해 사례는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대체로 송전탑 인근 주민들 가운데 암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다. 이로 인해 주민들이 극심한 전자파 공포를 겪고 있다. 심지어 송전탑 부근에선 형광등에 전선이 연결되지 않아도 형광등이 켜진다는 유튜브 실험 방송까지 등장해 해당 주민들 불안과 걱정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송전탑·선로 인근 부동산 가치가 떨어져 재산상 피해를 보고 있다는 원성도 끊이질 않고 있다. 부동산 매매가 중단됐다는 불만과 축산 농가의 경우 수정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보고 있다는 민원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환경 파괴와 소음도 더해진다.
특히 송전탑·선로 건설 과정에서 해당 마을 주민 간 찬반이 엇갈리면서 주민 간에도 갈등을 겪고 있는 점이 큰 피해 사례로 꼽힌다. 그럼에도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전은 송전탑·선로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측은 “국가 전력망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송전탑·선로 건설 예정지 주민과 한전 간 갈등 해결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되레 갈수록 악화되는 분위기다. 결국 밀양 사태처럼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깊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터뷰] 박범석 금산군 대책위원장 “사업 잠시 멈추고 절차적 하자 바로 잡자”
345킬로볼트(kV) 신정읍-신계룡 송전탑·선로 건설 사업(제9차 사업)은 오는 2029년 12월 준공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제9차 사업은 전북 정읍, 김제, 임실, 완주 등 5곳, 충남 금산, 논산, 계룡 등 3곳 그리고 대전 서구 등 모두 9개 지차제가 대상지다. 하지만 이 사업은 송전탑을 설치할 첫 삽을 뜨기 전부터 삐걱대고 있다. 해당 지역마다 한전과 주민 간 갈등, 마찰, 분쟁을 빚고 있다.
이들 지역 가운데 충남 금산군이 9차 사업을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전과 법적 분쟁까지 벌이고 있다. 법원은 지난 2월 송전탑·선로 입지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금산군 주민들이 제기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하지만 법원은 한전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지난 7월 21일 기존 결정을 뒤집었다. 이에 금산군 주민들은 항고하며 맞서고 있다.
박범석 ‘송전(탑)선로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회’ 위원장. 사진=김지영 기자일요신문은 이 같은 법적 분쟁을 전면에서 이끌고 있는 ‘송전(탑)선로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회’(금산군 대책위) 박범석 위원장(61)을 9월 초 만났다. 박 위원장은 금산군 진산면 두지리가 고향이다. 특수부대 중령으로 예편한 후 11년 전 귀향했다. “고향이 죽어가고 있고 고향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2017년 시민단체 ‘농촌지역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이 지역 도로와 다리 건설, 하천 개량 등에 힘썼다. 박 위원장은 9차 사업 예정인 다른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며 공동대응책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법원은 지난 2월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받아들였지만 7월 이를 뒤집었다. 법원에 항고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
“이 사건은 단순히 충남 금산군의 한 마을을 지나는 송전선로에 관한 다툼이 아니다. 이 사건 본질은 2008년 밀양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약속했던 국가 공기업(한국전력)이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다시금 과거 방식으로 국민 희생을 강요할 때 우리 사법부가 과연 누구 편에 설지를 묻는 준엄한 질문이다.”
―전력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전은 이번 사업도 ‘국가 기간산업의 중대한 공익’이라는 입장이다. 향후 심각한 전력난을 겪지 않으려면 송전탑과 선로도 계속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전은 이 사건을 ‘국가 기간산업의 중대한 공익’ 대 ‘일부 지역 주민의 사익’이라는 낡고 위험한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절차적 권리는 언제든 무시돼도 좋고 국가기관(한전)이 스스로 만든 약속조차 ‘내부 지침’이라는 말 한마디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사건은 사익과 공익 대결이 아니다.”
―사익과 공익 대결이 아니면 무슨 갈등인가.
“이는 명백히 두 개의 공익 사이의 충돌이다. 바로 절차를 무시한 채 효율성만을 좇는 위태로운 공익과 민주적 절차와 국민과의 신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더 큰 공익 사이의 충돌이다. 법원은 이 본질을 외면한 채 한전 논리에 경도됐다. 사법부의 행정 통제 책무를 방기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법원 결정에 무엇이 문제였다는 것인가.
“법원은 1심의 정당한 가처분 인용 결정을 뒤집었다. 한전은 2020년 ‘주민 주도 입지 선정 제도’를 도입했다. 밀양 주민들 희생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주민 주도 약속이다. 다시는 국가 폭력으로 국민을 내몰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자 국책사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공적 견해 표명이었다. 하지만 한전은 이번 9차 사업에서 주민 주도 입지 선정 제도를 무시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충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한전의 9차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인가.
“사업 추진을 잠시 멈추고 절차적 하자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사업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2의 밀양 사태를 막고 장기적으론 더 큰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예방해 사업 안정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송전탑·선로 건설 사업이 있을 때마다 분쟁과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
“한전은 가장 저렴하고 손쉬운 방식인 철탑 건설만 고집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이유로 송전선로 지중화(地中化)와 같은 대안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다. 기존 선로와 기존 선로 주변으로 송전선로가 설치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