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부담 철수설, 재입찰 가능성에 롯데·중국업체 부상…신세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방침”

신세계그룹은 최근 정기 인사를 통해 면세사업을 영위하는 신세계디에프 신임 대표이사에 이석구 사장을 내정했다. 올해 만 76세인 이 사장은 2002년부터 5년간 조선호텔, 2007년부터 11년간 스타벅스코리아, 2020년부터 3년간 신세계인터내셔날 자주사업부문을 각각 이끌었다. 직전 2년 동안은 신세계라이브쇼핑 대표를 맡았다. 그룹 임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하며 매출과 영업이익을 동시에 견인한 이력을 자랑한다. 위기에 놓인 면세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신세계는 2023년 과감한 베팅으로 인천공항 DF2 구역 사업권을 따냈지만 높은 임대료로 인한 적자가 이어지면서 철수 여부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DF2 구역을 운영하는 신세계와 DF1 구역을 운영하는 호텔신라는 임대료 감면을 요청하며 법원 조정 절차에 나섰고, 지난 9월 8일 법원이 신세계 27%, 신라 25% 수준의 감면안을 제시했으나 인천공항공사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조정은 불성립됐다. 결국 호텔신라는 철수를 결정해 2026년 3월부로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했고 신세계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세계디에프는 지난해 359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연간 기준 적자로 돌아섰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권 입찰 당시 최저입찰가보다 60% 높은 금액을 써내 사업권을 획득했지만 매출이 올라오지 못하면서 공항점에서만 매달 100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보고 있다. 공항 이용객 수는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반면 면세점 이용객은 줄어드는 추세여서 여객수 연동 방식의 임대료가 실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시간은 신세계의 편이 아니다. 내년 1월 중순 아시아나항공이 제2여객터미널(T2)에 입주하면 현재 매출 연동제로 운영되던 매장이 정식 매장으로 전환되면서 임대료 체계도 여객수 연동 방식으로 바뀐다. 인천공항 4단계 건설사업 완료 후 항공사 재배치가 지연되면서 아시아나 출국게이트 인근 매장은 지금까지 매출 연동제로 유지돼왔다. 향후 임대료 부담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무비자 입국이 장기적인 호재가 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비자가 잘 나오는 대도시보다 2·3선 도시의 여행객을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는지, 또 그들을 상대로 매출을 얼마나 잘 일으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객수가 늘면 임대료도 오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신세계는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과정에 있다. 신세계푸드는 단체급식 부문을 아워홈에 매각하고 베러푸즈 사업을 종료하는 등 비효율 사업을 정리하며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신세계건설 역시 실적 부진 속에서 대표 교체가 이뤄지는 등 경영 효율화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그룹 전반에 걸쳐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신속히 조정한다’는 방향성이 강화된 만큼, DF2 구역도 임대료 인하가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정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면세업계 다른 관계자는 “새 대표가 적자를 계속 떠안고 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영업을 이어가도 적자만 쌓인다면 위약금을 내고라도 조기에 철수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어차피 재입찰에 다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판단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면세점은 대규모 직매입을 통해 단가를 낮추는 구조이기 때문에 매출 규모와 매장 수가 곧바로 ‘바잉파워’로 이어지고, 이는 가격 협상력과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글로벌 브랜드들 역시 시내보다 공항 면세점 채널에 투자를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해 면세사업자 입장에서는 인천공항 철수 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렵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면세점 사업에서 인천공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데, 이를 포기하면 사업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며 “신라보다 신세계가 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신라는 수십 년간 면세사업을 주력으로 키워온 만큼 재입찰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사업을 이어가려 할 것이지만, 신세계는 면세점 역사가 짧고 그룹 내에서도 핵심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나온다면 사업의 존폐 여부까지 놓고 고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신라의 철수 소식만으로도 충격이 컸다. 신세계가 실제로 철수를 검토하는 것인지, 단순히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함께 철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꾸준히 들리고 있다”며 “신세계는 면세뿐 아니라 백화점 사업도 영위하고 있어 MD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계속 커지고 신라가 먼저 철수 수순을 밟으면서 분위기상 함께 발을 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변정우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철수 여부는 결코 단순한 결정이 아니다. 보세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는 철수와 동시에 악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백화점을 통해서도 처리할 수 없다”며 “철수하게 되면 신세계의 매출 구조에 직접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룹 전체 차원에서 매출 볼륨은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이자 브랜드 전략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큼, 전략적으로 이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수 후 재입찰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제약이 적지 않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부담한 뒤라 입찰가 산정에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고, 과거 사업권을 포기한 전력이 평가 과정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입찰 과정에서 경쟁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과거 낮은 입찰가를 제시해 탈락했던 롯데뿐 아니라 중국국영면세점(CDFG)도 향후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면세업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CDFG는 이번에 참여하지 않으면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의지가 확실하다. 경쟁자가 줄고 적정 입찰가도 공개된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는 판단일 것”이라며 “만약 신세계까지 철수해 DF1과 DF2 구역이 동시에 재입찰된다면 국내 사업자들은 중국 면세점과 구역을 나눠 가져야 할 수 있다. 인천공항공사가 입찰 흥행을 위해 중복 운영을 허용할 경우 중국이 두 구역을 모두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DF1 사업 구역의 입찰 여부와 관련해서는 입찰 공고를 확인하고 가격과 조건을 확인 후 결정할 예정이다. 과거 사례에 비추어보면 철수 후 한 달 내에 공고가 떴기 때문에 이번 추석 연휴가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면세사업자들 철수 전에 임대료 조정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뉴에듀케이션칼리지 원장)는 “인천공항공사는 공기업인 만큼 이익 추구가 목표여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면세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인천공항인데 적자가 불가피한 임대료 구조를 기업에 계속 강요하는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며 “이미 온라인 직구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기업에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세계디에프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한 매장들의 향후 거취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면밀히 검토해서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