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신세계 임대료 인하 요구에 인국공 “배임 소지, 수용 불가”…면세점 철수 가능성 설왕설래

지난 4~5월 인천국제공항 제1·2터미널 면세구역 DF1(향수·화장품)과 DF2(주류·담배)를 운영하는 신라·신세계면세점이 매장 임대료 40% 인하를 요구하며 인천지방법원에 조정 신청을 제기했다. 업황 악화로 매달 대규모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상생 방안을 제시한 것이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임대료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상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23년 체결된 임대차계약서상 임대료 조정이 가능한 사유가 매장 이전·축소·확장·신설·폐지 등 물리적 변동에 한정된다고 설명했다.
조정 절차상 2차 기일에 공사가 불참하면 법원이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경우 공사는 결정을 수용하거나 이의신청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양측 중 일방이 이의를 제기하면 소송으로 이어진다. 면세점 측을 대리하고 있는 황인욱 대륙아주 변호사는 “업계 입장에서는 소송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면 아마 면세점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양사가 철수할 경우 위약금이 각 사당 2000억 원 정도 수준이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손해배상의 예정액은 법원에서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다”며 “위약금 감액 소송을 통해 1000억 원 이상은 감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천지방법원의 의뢰에 따라 삼일회계법인이 8월 11일 내놓은 '임대료 수준 감정서'에 따르면 현재 시점에서 DF1·DF2 구역 재입찰 시 입찰가는 현 수준 대비 약 40%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신라·신세계가 운영 중인 DF1·DF2 매장은 연간 약 4000억 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으나, 양사가 철수하고 재입찰에 나설 경우 임대료는 2400억 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입점 업체들 임대료를 요구안대로 낮춰주지 않더라도 조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다. 혹은 임대료를 일부 조정해주는 대신 인테리어나 서비스 개선 투자 약속을 받아내는 방식의 상생안도 가능한데 굳이 퇴점을 유도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며 “그동안 공항 경쟁력 측면에서 면세점이 맡아온 역할을 감안하면 아예 협상을 회피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고압적인 태도다. 공무원식 보신주의만 따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업 경영은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있다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는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법원도 이를 ‘경영판단 원칙’으로 인정한다. 대법원 판례에도 장기적 이익을 위한 합리적 결정은 면책 사유가 된다고 판시돼 있다”며 “장기적 이익이 예상된다면 조정을 통해 임대료를 낮춰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사가 이런 논의를 전혀 검토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입점 면세업자의 요구대로 임대료가 조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법무법인 자문 결과를 근거로 “임대료를 인하하면 공사 수입이 줄어 배임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정이 불발하더라도 입점 면세점들이 공항에서 철수할 확률이 낮다는 관측도 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아예 면세 사업을 철수한다면 모르겠지만, 면세점은 백화점 등 유통업 전반과 얽혀 있고 브랜드와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전체 유통 사업을 접지 않는 한 면세사업과 공항면세점 전면 철수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당시 신라면세점은 여객 1인당 8987원, 신세계면세점은 9020원의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인천공항 면세사업권을 따냈다.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최저수용금액은 DF1 구역 5346원, DF2 구역 5616원으로, 모두 최저 수용금액 대비 약 160%에 달하는 ‘고가 입찰’이었다.
양 사가 높은 임대료를 써낼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긍정적인 업황 전망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다수 전문가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면세 수요가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직매입 구조인 면세업 특성상 매입 단가를 낮추려면 대규모 매입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했기 때문에 10년짜리 인천공항 면세사업권은 놓칠 수 없는 ‘알짜’ 사업권이었다. 특히 전세계 면세 1위 사업자인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경쟁이 심화된 것도 임대료가 치솟은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지난 2년간 면세업계의 경영 환경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환율 상승과 엔화 약세로 일본 여행 수요가 늘면서 현지 구매가 증가했고, 그 여파로 국내 면세점 매출이 줄었다. 여기에 주요 소비층인 중국 관광객의 소비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매출 타격이 이어졌다. 신라면세점은 올해 2분기 매출이 850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지만, 11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신세계면세점 역시 2분기 매출이 6051억 원으로 22.9% 늘었으나, 15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를 면치 못했다.
면세업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온라인 면세점으로 주류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할인 경쟁에도 불이 붙었던 점이 매출 타격을 가속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임대료가 계속 나가고 있는 입점 면세점이 불리한 구조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입찰 당시 우려했던 대로 임대료 산정 방식 역시 발목을 잡았다. 인천공항 임대료는 고정 임대료에서 2023년 여객 수 연동 임대료로 전환됐는데, 문제는 여객 수가 빠르게 회복된 반면 면세점 이용객은 늘지 않으면서 부담이 가중됐다. 지난 한 해 인천공항 국제선 여객 수는 7077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한 3636만 명이 공항을 이용하면서 또다시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인천공항 입점 면세점 임대료 산정 기준에는 실제 구매력이 없는 영유아, 환승객, 심지어 유료 좌석을 구매한 반려동물까지 포함되면서 임대료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홍규선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과 학과장은 “프라임 타임에는 검색대 대기줄이 양방향으로 300~400m씩 늘어설 정도로 혼잡하고, 공항 규모가 커 게이트와 매장 위치가 멀어 쇼핑 시간이 극히 부족하다. 승객들은 출국 수속과 보안검색, 출입국심사를 마친 뒤에도 온라인 주문품 수령에 급급해 매장을 둘러볼 여유가 없고,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유지하며 수입 가격이 상승해 면세품 가격 경쟁력도 떨어졌다”며 “경기 침체와 고환율, 온라인 면세점 확산이 겹치면서 공항 면세점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주요 허브 공항들이 면세사업자 부담 완화를 위해 잇따라 임대료 인하에 나서고 있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이 임대료 체계 설계 시 벤치마킹한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여객 수 증가 속도가 매출 증가세를 웃돌자 입점 면세점에 35% 감면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CDFG가 운영하는 북경·상하이 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약 75% 줄였으며, 홍콩 국제공항도 사업자들과의 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은 팬데믹 이후 최소보장금액(MG)을 하향 조정한 데 이어, 기존 계약 대비 30% 이상 임대료를 낮춰 재계약했으며 미국의 괌 국제공항은 상생지원금 지급에 나섰다.
정란수 교수는 “인국공이 협상 조건을 변경하는 것은 특혜 시비 우려 탓에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과 환경변화, 해외 사례 등을 감안해 상생 방안을 찾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공기관 차원이 아니라 국토교통부나 국무조정실 등 상급 기관의 중재와 정치권의 역할이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면세업계 다른 관계자는 “업계와 공항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는 사안이다. 매년 대규모 적자를 보는 업계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공사 측도 준국가기관으로서 원칙을 준수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며 “선례를 남기면 향후 다른 입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외에서 일부 공항들이 임대료를 감면해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공항의 결정은 각국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현재 임대료 금액은 사업자가 직접 제시하고 운영권을 낙찰받은 금액이라 이제 와서 감액을 요구하는 것은 사업자 본인의 경영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다”라며 “계약서 상 임대료 조정을 할 수 있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민법 628조에서 얘기하는 차임 감액 요건에도 충족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대료 조정을 검토할 계획이 없고 2차 조정기일에도 불출석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