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생존 방안 두고 한화-DL 갈등…롯데-HD현대 NCC 통합도 지지부진

석유화학업계가 NCC 통합을 놓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1999년 한화그룹의 한화솔루션과 DL그룹의 DL케미칼이 공동 설립한 석유화학 합작회사 여천NCC가 대표적이다. 중국·중동발 에틸렌 공급 과잉 여파로 2022년부터 경영난을 겪던 여천NCC가 최근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3월 경영난으로 대주주들에게 지원을 요청한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로부터 유상증자 형태로 총 2000억 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경영난은 해소되지 않아 여천NCC는 지난 6월 3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해달라고 대주주에 요청했다. 양측 반응은 갈렸다. 한화솔루션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DL케미칼 측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충돌했다.
DL케미칼 관계자는 8월 13일 일요신문에 “여천NCC 측이 3월 당시 자금을 지원해주면 올해까지 자금 문제가 없을 거라고 밝혔는데, 몇 개월 만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에 신뢰하기가 어려워 보였다”며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무작정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던 행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영진단 없이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한화솔루션은 7월 말 이사회를 열고 여천NCC 측에 1500억 원 규모의 자금 대여를 승인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20여 년 동안 DL과 함께 합작회사를 운영해왔는데,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양사가 협의를 잘해왔다”며 “경영 진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석유화학 업황이 어려운 것과 경영 진단과는 연관이 없어 보인다”며 “여수산단을 비롯해 지역 경제 위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여천NCC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솔루션 측이 압박 수위를 높이자 결국 DL케미칼도 여천NCC 지원에 나섰다. DL케미칼은 8월 14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고 1500억 원 규모의 자금 대여를 결정하면서 여천NCC는 일단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재무구조가 열악해 추후 다시 양사가 지원책을 두고 격돌할 수 있다. 여천NCC는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700억 원, 1500억 원, 600억 원 등 총 2800억 원에 달해 양사는 대응 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천NCC 자생 방안을 두고 갈린 양측 입장도 갈등의 불씨로 남았다. 25년간 유지한 원료 공급 계약이 2024년 12월 종료돼 새로 갱신해야 한다. DL케미칼은 여천NCC의 자생력 강화와 상생 차원에서 여천NCC의 손익이 개선되도록 가격 하한 설정과 20년 장기 계약 등을 제안했다. 반면 한화는 가격 공정성 확보가 중요하며, 단가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장기간 계약보다는 5년 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도 공동으로 출자한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NCC 통합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지난 2014년 두 회사는 합작회사 HD현대케미칼(HD현대오일뱅크 지분 60%, 롯데케미칼 지분 40%)을 설립했다. 연 85만 톤(t)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사업장을 대산단지에서 운영하는 HD현대케미칼도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은 독자적으로 대산단지에서 연 11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하고 있는데, 해당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현물출자하고, HD현대오일뱅크도 현금이나 현물을 출자하는 방식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 통합까지는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보유하고 있는 보유 설비에 대한 가치 산정을 두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 양사 모두 8월 13일 일요신문에 “내부적으로 확정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여천NCC와 관련해서 한화와 DL 입장 모두 납득이 될 만한 여지가 있는데, 두 회사 간 갈등은 결국 글로벌 공급과잉 문제로 인해 발생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어두운 단면”이라며 “정부가 산업 활성화와 관련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기업들이 의사결정을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낼지 눈길이 쏠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후속 대책은 당초 올 상반기에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등의 여파로 발표가 미뤄지게 됐다. 산업부는 지난 7월부터 10여 개 기업 대표 간 개별면담을 통해 석유화학 분야 사업재편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정부방침은 8월 중 나올 예정이다.
다만 정부가 석유화학업계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 자구책 마련을 요구할 수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월 14일 “최근 위기에 봉착한 석유화학 기업들도 과거 조선 기업들의 구조조정 노력을 거울삼아, 석유화학업계 공동의 노력과 책임 있는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업계가 합심하여 설비조정 등 자발적인 사업재편에 참여해야 하며,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범부처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2017년 당시 정부 정책 덕분에 석유화학 업황이 살아났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업계가 이번에도 기대하는 모양새”라면서도 “적극적인 리밸런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기업들도 해줘야 하는 몫인데, 석유화학업계가 전반적으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산업부 장관이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