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업 꽃 펴야 이미지도 펴질텐데…’
▲ 최태원 회장의 첫 공판 당시 모습. 임준선 기자 |
먼저 최 회장은 지난해 말 SK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이자 그룹 운영체계 핵심인 수펙스협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며 그룹회장직과 총수 권한을 포기했다. 최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그룹회장이 아닌 ‘전략적 대주주’로서 “성장동력 발굴의 서포터 역할을 담당”할 것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그룹에서 최 회장의 권한은 아직 절대적이다.
최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SK(주)와 핵심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의 회장직은 유지한다. 그룹 오너 역시 최태원 회장이다. SK그룹 측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물론 최 회장께서 회장으로 있는 3개사에 대한 결정과 책임은 지지만 다른 계열사는 각자 경영과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최근 박영호 부회장을 SK차이나 총재자리에서 내린 일은 최 회장의 인사권의 건재함과 중국 올인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0년 7월 출범한 SK차이나는 SK그룹의 중국사업을 총괄하는 핵심계열사 중 하나다.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SK그룹 계열사 CEO 세미나에서 중국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보고를 받은 최 회장이 “10년 뒤에도 같은 말을 할 것이냐”고 호통을 친 이후 설립한 회사다.
중국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총책임자나 임원 등 고위 인사에 현지인을 기용해봤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며 “중국은 워낙 문화가 다양하고 배타적인 데다 규제가 심하고 일부 기업을 빼곤 한국기업에 큰 관심도 없어 힘들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그들의 정서와 문화를 습득하고 그것을 경영기법에 적용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면서도 “하지만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지에 적합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이 지지부진한 중국사업에서 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2월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SK는 ‘통신과 에너지’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SK를 대표하는 이 두 사업은 내수·규제사업인 탓에 해외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껏 SK 관계자들 역시 “규제가 너무 심해 사업하기 힘들다”고 호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는 누구보다 최 회장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 얘기다.
이러한 최 회장의 신년 행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성과를 보이고 싶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회사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최 회장은 오는 1월 말 1심선고가 예정돼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없었던 걸 급히 만든 거라면 ‘재판용’이라는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준비하고 실천해오던 시스템”이라며 “1심선고를 앞두고 한다는 비판은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김창근 의장, 손길승 전 회장 같은점 & 다른점
비오너 그룹대표 같지만 회장 직함 사용 불가
최태원 회장이 그룹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자연스레 SK그룹의 새로운 얼굴이 된 김창근 SK수펙스협의회 의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의장은 1974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 울산공장 관리부 노무과에 입사해 ‘SK맨’으로서 올해로 40년째를 맞고 있다. 주로 자금부와 재무팀에서 근무했으며 2000년에는 SK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장, 2002년에는 SK(주)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쳤다. 2004년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후 지금까지 무려 10년째 SK케미칼을 대표하고 있어 재계에서 ‘최장수 CEO’로도 유명하다.SK그룹으로서는 1998년 손길승 회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 이후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그룹을 대표하는 두 번째 사례다. 손 회장 역시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 유공이나 한국이동통신 출신이 아닌 ‘정통 SK맨’이다. 김 의장이 손 회장과 다른 점은 ‘그룹회장’ 직함을 쓰지 못한다는 것. SK케미칼 대표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되는 김 의장의 공식직함은 SK수펙스협의회 ‘의장’이다. SK 관계자는 “손 회장 시절과 지금은 시스템과 제도가 다르다”며 “지주회사 설립 이전에는 그룹회장이 필요했지만 ‘따로 또 같이’ 시스템에서는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비오너 그룹대표 같지만 회장 직함 사용 불가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