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의 열연 ‘상친자’ 대거 양산…“은중에게 ‘나도 사랑해’란 말 해주고파”

매 순간 서로를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며, 또 질투하고 미워하며 일생에 걸쳐 얽히고설킨 두 친구 은중(김고은 분)과 상연의 모든 시간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은중과 상연’에서 박지현은 사랑을 받는 법도, 주는 법도 알지 못해 삶 전부를 ‘서툴게’ 살아야 했던 천상연을 연기했다.
상연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만난 절친 은중이 자신과 달리 친구도 많고, 정작 자신에게는 주지 않는 엄마와 오빠의 애정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며 모진 말을 던지기도 한다. 10대의 이런 질투심은 그 나이 또래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20대에는 선망을 넘어서 원망이 되고, 30대에 이르러서는 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배신을 저지르고서라도 끝끝내 은중으로부터 절교를 이끌어 낸다.
“상연이는 자기가 은중이에 대해 열등감과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30대 때 ‘전 한 번도 쟤를 이겨본 적 없어요’라고 말한 게 그 증거죠.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감정이 질투로만 남으면 그 사람이 마냥 미워지고 부정적으로만 보이지만, 상연이는 그 감정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질투가 아닌 부러움과 선망으로 남아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없는 상연이에게 다가와 주는 유일한 존재가 은중이니까요. 만일 상연이에게 시한부 설정이 없었더라도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나면 은중이에게 했던 행동과 말을 반성하고 또 후회했을 거예요.”

뻔뻔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은중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무리에 이르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상연이 말하지 못했던 그때의 진실을 알게 된다. 처음 서로를 만났던 11세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한 번 순수한 우정과 애정을 나눈 두 사람은 결국 영원한 이별을 맞으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엔딩에 펑펑 눈물을 쏟았던 시청자들만큼이나 박지현은 스위스 장면 촬영 내내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고 했다.
“상연이의 마지막을 촬영할 때 (김)고은 언니가 제게 많은 말을 해줬어요. 대부분 애드리브였는데, 그 와중에 정말 제 마음에 깊이 닿았던 말이 기억나요. 언니가 저를 향해 ‘상연아 숨 쉬어, 상연아’ 하다가 울면서 ‘상연아, 사랑해’라고 말했어요. 작품에 담기진 않았지만 그때 저는 눈을 감은 채 삶이 다하고 있던 상황인데도 그 말에 너무 대답을 하고 싶은 거예요.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죠. 상연이의 입장에선 사랑한단 한마디가 유년시절부터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예요. 그걸 마지막에 은중이가 들려줬던 거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상연은 마지막까지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됐고, 상연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은중이 이를 대신 해야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박지현의 오열(?)로 오히려 김고은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지현은 “그 장면뿐 아니라 제가 정말 촬영 내내 (김)고은 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선배를 향한 아낌없는 칭찬과 감사를 줄줄이 이어갔다.

‘은중과 상연’으로 박지현은 김고은이란 ‘바위 같은’ 배우와 투톱이라는 영광을 안은 것과 함께 삶의 가치관이 변하는 새로운 경험도 얻었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논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지만, 한 인간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일대기를 인물들과 함께 천천히 걸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담담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전엔 삶과 죽음에서 죽음은 너무 멀게 느껴졌는데, ‘은중과 상연’을 촬영하며 죽음이 우리 삶에 밀접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죽음이 꼭 나쁘고 부정적인 게 아니라, 잘 죽는다는 게 곧 잘 사는 것과 동일하단 생각이 들어요. 아직 긴 삶을 살아보지 않았지만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서 ‘이제는 여한 없이 잘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삶이야말로 죽음을 잘 맞이하는 삶이 아닐까요? 죽음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게 가장 큰 제 삶의 가치관 변화인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