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연기의 정점’ 시청자 극찬 이끌어내…“박지현 씨 널뛰는 캐릭터 정말 잘 소화해내”

“‘은중과 상연’은 남겨진 은중이가 상연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상연이와 함께 스위스로 가는 것도 은중이에게는 어찌 보면 기회였을 거예요. 우리가 살면서 정말 사랑하고 소중한 누군가를 보내줄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잖아요. 은중이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상연이가 잘 갈 수 있도록 ‘고생했어, 잘 견뎠어’라는 말도 덧붙여줄 수 있었으니까요. 남겨진 은중이는 물론 힘들겠지만, 마음의 짐을 좀 덜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고은이 연기한 은중은 초등학생 때 처음 만난 친구 상연(박지현 분)과 10대와 20대, 30대, 그리고 40대까지 삶의 모든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다정한 엄마와 잘생긴 오빠, 나는 꿈에서나 살아볼까 싶은 아파트까지. 은중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걸 가진 데다 예쁘고 똑똑하기까지 한 상연은 은중의 영원한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그랬던 만큼 상연에게 배신당하고 그의 입에서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은중은 상연을 영영 버리지 못한다.

은중이 기억하고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였던 상연은 오빠 상학(김재원 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의 연이은 사업 실패, 첫사랑이자 삶의 유일한 안식처나 다름없었던 동명이인 상학(김건우 분)을 은중에게 빼앗겼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상처가 한데 섞이면서 점점 자기만의 ‘어두운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은중에게도 같은 상처를 입히고 자신만큼 어두운 곳에 떨어지길 바라며 모진 말로 절교를 이끌어 낸 상연의 태도는 시청자들로부터 큰 질타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배경 서사가 풀리면서 그를 꾸짖었던 시청자들을 ‘상친자’(상연에게 미친 사람들)로 만들었던 상연에 대해 김고은 역시 은중으로서도, 배우 스스로로서도 깊이 이해하며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아프게 느꼈던 상연이의 대사가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도 그렇게 된다’는 거였어요. 스쳐갈 수 있었던 (나쁜)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는데, 그 세상 안에 들어가는 건 쉽지만 나오는 건 굉장히 어렵거든요. 저도 한때 그렇게 내가 만든 세상으로부터 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래도 상연이는 뒤늦게라도 어떻게든 나왔구나’ 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은중이는 ‘천상연을 빼놓고는 내 인생을 논할 수가 없다’고 말해요. 상연이 역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인생을 돌이켜 보니 남아있는 이름이 세 개인데, 그 안에 ‘류은중’이 들어있어요. 저는 관계는 무조건 쌍방이라고 생각해서 천상연 인생에 류은중이 남았다면, 류은중 인생에도 역시 천상연의 이름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스위스의 마지막 밤에 은중이는 아마 상연이에게 ‘내 삶에 네 덕분이었던 게 훨씬 많고, 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아요. 그게 은중이의 진심이었을 거고요.”
과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을 앞둔 후반부가 전개될수록 시청자들의 눈물을 빼다 못해 탈수 상태로 만들만큼 감정이 휘몰아쳤다.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촬영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눈물을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특히 상연 역을 맡은 박지현은 스위스 신을 찍는 동안 김고은과 시선만 마주치면 눈물을 떨어뜨리기 바빴다고. 김고은은 “저도 울음이 터질 뻔했는데 (박)지현이가 앞에서 너무 우니까 오히려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며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박지현의 연기 이야기를 할 땐 진지한 칭찬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대로 ‘은중과 상연’에서 김고은은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전달자로서 서사의 중심을 잡으며 긴 이야기를 묵묵하고 담담하게 완성해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당연하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질 만큼 연기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이지만, 이번 ‘류은중’으로서의 열연은 대중들로부터 “김고은 연기의 정점”이라는 특별한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때 ‘천상연’ 같았던 자신을 기어코 극복해낸 경험이 지금 이 순간의 김고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쏟아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일하다 보면 마음에 병이 날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제일 경계해야 하는 때거든요. 제가 그런 힘들었던 세계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보니 다시 들어가게 되면 어쩌나 무섭기도 해요. 그땐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서 자격지심까지 심해지니까 저 스스로가 ‘내가 싫어하는 인간상’,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인간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거기서 정말 발버둥을 치며 발악을 하면서 나왔고, 떨어진 자존감을 올리는 데 몇 년씩 걸렸어요. 그 이후로도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면 어떻게든 그 방식으로 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타심도 엄청나게 생겼고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