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몫 1.4조’ 파기 환송, 재산분할금 축소 전망…부담 던 최 회장, 방미 광폭 행보 등 경영 집중 모드 돌입

이번 결과로 노소영 관장의 몫이 재산분할금은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법원은 2심에서 노 관장 측이 재산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된 전직 대통령 노태우 씨 비자금 300억 원을 배제했다. 노 관장은 측은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이 SK그룹으로 흘러들어가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2심 증거로 제출된 노소영 관장의 모친 김옥숙 씨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각각 작성한 ‘선경 300’ 메모와 약속어음이 대법원 판단 논리로 작용했다. ‘선경’은 SK그룹의 전신이다. 김 씨가 작성한 메모는 선경 외에도 ‘쌍용 200’이라는 메모와 차용증이 함께 확인되는데, 실제 노태우 씨의 비자금 200억 원이 쌍용 회장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돼 추징금이 부과된 바 있어 SK그룹에도 300억 원의 비자금이 흘러들었을 추측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자금이 SK그룹에 흘렀을 가능성보다 그 불법성에 주목했다. 2심에서는 비자금 유입 여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노태우 씨가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300억 원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 씨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노 씨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함으로써 이에 관한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판시했다.
민법 746조에 따르면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노소영 관장 측이 주장하는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에 대해 불법원인급여로 판단 것이다.
노소영 관장 측의 기여도는 고법에서 재산분할금 산정 때 상당 부분 삭감될 전망이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은 고법에서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2심에서 인정받았던 정경유착에 따른 노소영 관장 측의 기여도도 다시 판단을 거칠 수 있다. 2심에서는 노태우 정부가 SK그룹에 제공한 무형적인 기여도도 반영했다.
노소영 관장 측은 노태우 비자금의 성격 여부가 아닌 기여도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대법원은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행위가 “전체 법질서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이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서의 기여를 포함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봤다.
2심에서 최태원 회장 측은 최종현 선대회장에 받은 재산을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지만 노태우 의 정치적인 조력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재산분할금이 산정된 바 있다.
최태원 회장이 처분한 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2심 판단과 다른 점이다. 최태원 회장은 2014년 8월 13일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에 SK C&C 주식 합계 9만 1895주를 증여했다. 2018년에는 최종현 학술원에 SK 주식회사 주식 20만 주, 같은 해 11월 21일에는 친인척 18명에게 SK 주식회사 주식 합계 329만 주를 증여했다. 아울러 2012년경부터 동생 최재원에 대한 증여, SK그룹에 대한 급여 반납 등으로 합계 927억 7600만 원을 처분했고, 최재원의 증여세 246억 원을 대납하기도 했다.
당시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관계에 이미 금이 갔던 시기였다. 최태원 회장은 2015년 동거녀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 그 사이의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며 부부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원은 최태원 회장이 동거녀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관계가 최소 2009년부터 시작됐다고 봤다. 이듬해 최태원 회장과 김희영 이사장 사이에 혼외자가 태어났다.
대법원은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경영자로서 안정적인 기업 경영권 내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행한 것으로서 원고 명의 SK주식회사 주식을 비롯한 부부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추후 열리는 고법 재판에서도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을 적용해야 한다.
대법원 선고 결과 부부공동재산이 감소했다. 2심에서는 부부공동재산은 4조 115억 원으로 산정됐다. 노소영 관장의 기여분은 부부공동재산의 35%로 책정됐다.
이와 관련, 한 변호사는 “2심 재판부가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이번 대법원의 판단으로 다시 예전의 기조로 돌아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태원 회장은 대법원 선고 결과로 SK그룹에 대한 지배력 유지 가능성을 높아졌다. 최태원 회장은 SK(주) 지분 17.9%를 통해 SK그룹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고 있다. 시가를 기준으로 보면 2조 8675억 원 수준이다. 만약 2심 결과대로 재산분할금이 1조 3808억 원으로 확정돼 해당 지분을 현금화하면 지배력이 크게 떨어진다.

최태원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SK실트론의 지분(지분율 29.4%) 매각설이 도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 작용했다. SK(주)가 보유한 SK실트론 70.6% 지분이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왔는데(관련기사 ‘회장님 지분’은 왜 빼는 걸까? 두산, SK실트론 인수 추진 숨은 1인치) SK실트론의 가치는 2조~5조 원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향후 진행될 SK그룹 리밸런싱(자산 재배치) 작업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합병하는 방식으로 계열사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투자 계획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SK그룹은 11월 열리는 ‘SK AI(인공지능) 서밋’을 통해 내년도 AI 사업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SK그룹은 AI, 반도체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2030년까지 총 82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16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초청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장 마러라고를 방문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조우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 회장은 출국 직전 기자들을 만나 “어려운 경제 현안이 상당히 많다”며 “최선을 다해 우리 경제에 기여하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SK 관계자는 “만약 대법원에서 최태원 회장의 상고가 기각돼 최태원 회장의 지분을 매각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SK그룹의 거버넌스가 흔들릴 수 있었다”면서 “그런 불확실성이 제거됐기 때문에 그룹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