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온라인 도박업체 관련자 “필리핀 카지노 폐쇄 후 캄보디아로 거점 옮겨…작년부터 한국인 대거 유입”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캄보디아로 가게 된 걸까. 일요신문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 해외 온라인 도박 업체 관련자들을 통해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탄생 배경에 대해 들었다.
복수의 관련자들은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감금된 한국인 중 진짜 취업 사기를 당해 캄보디아로 오게 된 사람은 거의 없다. 범죄라는 걸 알면서 텔레그램으로 일자리를 구해 들어온 사람도 전체 비율로 따지면 많지 않다”며 “대부분은 필리핀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에서 보이스피싱을 하거나 불법 도박업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시초는 필리핀의 포고(POGO: Philippines offshore gaming operator·역외게임사업자)”라고 입을 모았다.
#캄보디아 경찰이 '뒤 봐준다' 소문 돌자

필리핀이 온라인 카지노 및 도박의 중심지로 부상한 것은 2016년 친중 성향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카지노 산업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이를 포고라고 불렀다.
전 세계 도박꾼들은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도박을 할 수 있는 포고 시스템에 푹 빠졌다. 특히 자국에선 도박이 금지된 중국인들이 포고의 주 고객으로 급부상하면서 중국계 자금이 필리핀에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중국 자본을 먹고 몸집을 키운 포고 업체들은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 범죄를 사업 일환으로 삼기 시작했다. 과거 포고의 한 업체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국인 A 씨는 “포고에 있는 회사 대부분은 무허가 업체였고 중국인들이 운영했다. 나 역시 중국인 사장 밑에서 일했는데 같이 일한 사람 중에는 태국인과 한국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로맨스 스캠으로 들어온 돈을 카지노로 넘겨주는 ‘돈세탁’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상황은 2022년 친미 성향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바뀌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합법 업체로 가장한 포고가 도박에서 더 나아가 사기, 돈세탁, 성매매, 불법 입국 알선, 납치, 잔혹한 고문, 심지어 살인 같은 불법적인 영역까지 감행하고 있다”며 포고를 전면 금지했다.
이후 갈 곳 잃은 중국계 조직이 새로 찾은 곳이 바로 캄보디아다. 특히 캄보디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에는 이미 카지노 단지가 형성돼 있었다. 2017년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위축된 마카오 카지노 자금이 캄보디아로 대거 흘러 들어온 까닭이다. 그러던 중 2019년 캄보디아 정부가 온라인 도박 금지 정책을 내세우며 카지노를 압박했고 2020년 코로나19의 유행까지 겹치면서 카지노와 호텔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슬롯머신 등 게임 장비가 그대로 남아있는 카지노와 빈 숙박시설은 범죄 조직 거처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포고에 있던 중국계 조직들은 이곳을 거점 삼아 불법 도박과 각종 온라인 사기 범죄를 벌이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의 거대한 범죄단지 ‘웬치’가 조직된 것이다.
한 마을을 연상시키는 웬치의 내부 모습 역시 필리핀 포고가 그 시초라는 말이 많다. 앞서의 A 씨는 “포고에도 노동자가 사는 콘도가 있고 주변에 식당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단지 내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해둔 것이다”며 “내가 일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일부 포고에는 웬치처럼 감옥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현지 경찰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자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등에 있던 한국계 조직들도 캄보디아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일거리를 찾던 한국인들이 중국계 조직에 들어갔고 일부는 고문을 받다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소식통은 “고액 알바나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는 안에서 일하는 한국인 중 10명 중 3명도 안 될 것”이라며 “텔레그램을 통해 캄보디아로 온 경우 500만~1000만 원을 내면 풀어주기도 한다. 정말 감금돼 못 나오고 있거나 죽은 애들은 조직에 빚을 진 애들이다. 대부분 불법 도박업을 하거나 카지노를 하다 돈을 잃은 한국인들”이라고 말했다.
#“마약 중독 시키기도…알려지지 않은 사망자 훨씬 많을 것”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며 입을 연 B 씨는 “일이 터지자마자 캄보디아에서 나왔다. 웬치(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사람 죽어 나간 일이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한국인들이 갑자기 많이 들어왔고 이들이 죽으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B 씨에 따르면 현재 프놈펜 지역에 있던 조직들은 대체로 도주한 상태다. 그는 “프놈펜에 있던 애들은 전부 짐 싸서 나갔다. 카지노 정킷업체 몇 군데 빼면 남아있는 애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남은 한국인들을 시아누크빌 쪽으로 옮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웬치 쪽 길거리 가봐라. 전부 중국인밖에 없다. 한국인은 명함도 못 내민다. 조직 우두머리도, 행동대장도 전부 중국인이고 바로 아래 넘버3쯤에 한국인 몇 명이 끼어 있다”며 “워낙 중국 애들이 꽉 잡고 있어서 한국 경찰이 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도박 업계와 캄보디아 현지에선 집계되지 않은 사망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 다른 온라인 도박업체 운영자 C 씨는 “요즘 한국 뉴스에선 ‘몇 명 죽었다’고 난리인데 실제론 훨씬 더 많다. 적어도 매달 20명씩은 죽었을 거다. 소문으로 들리는 숫자만 그 정도”라고 했다.
문제는 죽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C 씨는 “뉴스에 나오는 사례는 그나마 나은 것이다. 대부분은 죽어도 모른다. 한국에서 사고치고 외국으로 도망 온 애들이라서 찾는 가족도 없다. 죽어도 누가 알겠냐”며 “여기선 연락이 끊기면 죽은 걸로 본다. 아는 동생도 연락이 끊겨 알아봤더니 죽었다. (조직에 의해) 마약을 한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떳떳한 입장은 아니지만, 가장 안타까운 건 한국인이 한국인을 사지로 몰아넣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라고 보탰다.
#일부 한국계 조직,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갈 수도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의 조호연 교장은 캄보디아에 상주하던 조직들이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 국가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 교장은 “현재 중국계 조직 상당수가 범죄단지를 떠났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나서면서 현지 경찰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한국계 조직은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원래 있던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캄보디아 내 온라인 사기 업체들이 뿌리째 뽑히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배경에는 범죄조직과 현지 경찰의 결탁 그리고 캄보디아 정부의 방치가 자리하고 있다. 조 교장은 “중국 조직이 캄보디아 측에 내던 뇌물성 자금이 어마어마하다. 큰 조직의 수장은 현지 정치권과도 연결돼 있어 수사 상황을 직접 보고받는다. 그간 공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법은 이번 범죄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태자그룹)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압박과 지속적인 관심이다. 조 교장은 “카지노를 통해 세탁된 돈은 코인으로 바뀐다. 단순히 계좌만 동결해선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제 사회가 중국 정부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가장 큰 몸통인 프린스그룹을 압박하도록 해야 한다. 또 피의자를 즉시 본국으로 송환해 추가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