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상담만 하고 의뢰인이 직접 사건 처리하는 사례 늘어…수임 문화·고용 구조 바뀌는 중
50대 중반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AI가 변호사 업계를 완전히 흔들고 있다. 특히 소장이나 의견서 작성 등 변호사 업무의 기본은 물론, 자문·사건 수임 문화와 변호사 고용 구조까지 바꿔 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어설픈 1~3년 차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AI를 활용하는 게 일처리에 있어 훨씬 더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리걸테크는 법(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최근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법조 AI 서비스가 ‘업무 보조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리걸테크에 대한 법조계 인식조사 및 교육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변호사 4명 가운데 3명이 ‘법조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나온 데이터로 최근에는 10명 중 9명꼴로 ‘AI’의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미 의뢰인이 AI를 활용해 대략적으로 정리한 뒤 상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역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할 때 AI를 활용해 틀을 잡는 게 보편적”이라고 설명했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의견서를 작성해서 보여줬더니, 이를 AI로 돌려 평가했다며 AI가 지적한 부족한 지점을 수정해 줄 수 있는지 묻는 의뢰인도 있었다”며 “동료 변호사들을 만나면 ‘어떤 AI 서비스가 좋냐’고 서로 이야기하고 아이디를 돌려 쓰며 활용하는 게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달라지는 사건 수임 문화
심지어 ‘사건 수임 문화’까지 달라지고 있다. 과거라면 변호사가 상담한 뒤 수임해 사건을 처리했다면, 이제는 상담만 한 뒤 의뢰인이 직접 AI를 활용해 변호사 도움 없이 사건을 처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최근에는 상담하러 온 이들 가운데 일부가 사건 대응 방향만 결정한 뒤, 의견서는 직접 AI로 작성하겠다고 해서 도와준 적도 있다”며 “변호사에게 적어도 수백만 원, 성공비용까지 포함하면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기 아까우니, 수십만 원 상당의 상담료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직접 해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건설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한 기업 대표는 “전세금 반환 소송이나 압류 같은 간단한 사건은 서류만 직접 준비해 법무사를 통해 진행하면 훨씬 더 저렴하게 진행할 수 있다”며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더라도 변호사를 쓰면 성공보수까지 1000만 원 이상이 들지만, AI로 직접 소를 진행하면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 대한 자문 비중이 높은 한 로펌 대표 변호사 역시 “지난해 월 100만~300만 원을 내고 자문을 했던 기업들 가운데 20~30%가 올해는 ‘AI한테 일단 도움을 받겠다’면서 자문을 끊었다”며 “자문 시장도 AI 때문에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고용 구조도 이미 ‘흔들’
변호사들을 고용하는 구조도 바뀌고 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1~3년 차의 변호사 수준의 서류 작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어쏘 변호사(로펌에 소속돼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저연차 변호사)를 고용할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10대 대형로펌들은 이미 하급심 판결문 검색이나 의견서 작성과 관련해서 AI 리걸테크 기업 서비스를 대부분 구독하고 있다. 직접 AI를 활용하기 위해 개발에 착수한 곳도 있는데,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이미 넥서스AI와 합작해 AI 챗봇 ‘AI대륙아주’를 개발했다.

이미 로펌들 사이에서 ‘신입 채용 경쟁률이 올라가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변호사 규모 100여 명 안팎의 로펌 대표는 “AI를 활용하는 덕분에 5년 전에 비해 뽑는 규모가 줄어들면서 경쟁률은 두 배 이상 높아졌다”며 “과거에 비해 학벌이나 경력이 더 좋은 지원자들이 늘어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법조단체들은 AI 파도 속 ‘대응책’ 마련 중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와 서울변호사회(서울변회) 등 변호사 단체들은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변호사 시장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속에 AI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변호사 등은 소비자가 인공지능 등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하게 하거나 소비자에게 인공지능 등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방식·내용의 광고를 할 수 없다’거나 ‘변호사 등은 자신의 업무에 인공지능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광고할 경우, 협회 인증 기준에 따라 해당 인공지능 시스템을 사전에 등록해야 한다’고 규제하는 내용을 마련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AI 시대를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 자본이 AI와 함께 법조 시장에 진입할 경우 법조 윤리부터 변호사들의 생계까지 많은 부분이 흔들릴 수 있다”며 “판결문을 비법조인에게까지 공개하면 법조시장이 AI 리걸테크 기업들에게 잠식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