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 보장·한자문화권·교육 환경 등 이점…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전면 봉쇄가 결정적 계기

최근 중국 중상류층 사이에서 일본으로 이주하는 ‘룬르(潤日)’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룬르란 ‘달아나다(Run)’와 같은 중국어 발음표기를 가진 윤택할 윤(潤)자에 일본(日)을 합친 중국 신조어다. 요컨대,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으로 달아난다는 의미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일본 거주 중국인은 87만 3286명으로, 전체 재일 외국인(376만 9000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 추세라면 “2026년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FT는 “이 거대한 인구 이동이 일본의 인구 구조와 사회, 정치 지형을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일 관계는 우호적이라 할 수 없다. 중국 내 반일 정서도 고조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국 중상류층들이 일본 이주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 계기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전면 봉쇄였다. 특히 부유층 사이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동부유론’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강화되자 정치적 통제와 경제 불안이 겹쳐 해외 이주를 서두르는 움직임이 커졌다. 중국 선전 출신의 한 IT 엔지니어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통해 중국의 민낯을 봤다”며 일본행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에는 미국 등 북미 지역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트럼프 정권 이후 이민 흐름이 바뀌었다. 싱가포르 역시 인기가 높았으나 면적이 작고 투자 기회가 제한돼 선호도가 낮아졌다. FT는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의 만찬 자리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화제는 ‘어떻게 하면 도쿄나 오사카로 이주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릴 만큼 경제 활력이 떨어졌지만, 재산권 보장과 의료 신뢰성, 언론 자유, 치안, 서비스 품질 등에서 중국보다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한자문화권에 좋은 교육 환경도 이점으로 꼽힌다.

다만 일본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자본금 기준을 3000만 엔 이상으로 대폭 상향하고, 상근 직원 고용을 의무화하는 등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인 등이 창업이 아닌 이민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급증한 영향이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으로 오는 중국인 대부분은 유학생이거나 생계를 위한 이주자였다. 큰 자산이 없어 도쿄나 오사카 외곽의 저렴한 지역에 거주하며, 친중국 성향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이주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금융자산이 풍부하고, 시진핑 정권에 대한 애착도 거의 없다. 기업인, 엔지니어, 문화인 등 전문직 종사자가 중심을 이루며, 공통된 관심사는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찾는 것이다.
룬르 현상의 확산과 함께 일본 내에서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도쿄 중심부의 한 사립병원은 외국인 부유층 전용 층을 신설했고, 주요 고객층을 중국인으로 설정했다. 대형 증권사들도 자산 규모가 큰 중국인 이주자를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자금 반출이다. 중국 정부는 해외로의 자본 유출을 규제하고 있다. 부유층의 경우 싱가포르나 홍콩에 계좌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일본으로 자금을 송금하는 편법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 FT에 따르면 “공식 루트를 피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중국에 거대한 지하 금융망이 형성됐다”고 한다. 위안화를 아프리카 무역 네트워크 등을 거쳐 세탁한 뒤 일본에서 엔화를 현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언론인 마쓰토모 다케히로는 “일본 각지의 스키 리조트, 사케 주조장, 호텔, 음식점 등이 중국 자본에 인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룬르의 물결이 일본인에게 불편하고 위화감이 드는 현상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도쿄 부동산 시장은 룬르의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다. 중국인의 이주로 분쿄구나 도요스 등 주요 지역의 주택 가격이 급등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불만을 자극하는 쟁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룬르를 “일본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이민 세대”로 평가한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에 기업가적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다. 반면 외국인 유입이 사회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는 외국인 배척을 외치는 구호가 거리 곳곳에서 등장했다. 특히 극우 성향의 참정당은 중국인 관광객의 급증과 부동산 매입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며 크게 약진했다.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反)이민 정서’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