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대 회계 과대 계상에 60억 원대 과징금·상장폐지 개선기간 부여받아…파이프라인 사실상 정체

지난 9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일양약품에 회계처리 위반 혐의가 있다고 검찰에 통보했다. 위원회는 대표이사 2인에 대한 해임권고 및 직무정지 6개월, 감사인 지정 3년 등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11월 5일 일양약품에 대해 과징금 62억 3000만 원, 대표이사 등 3인에게 총 12억 6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같은 이유로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일양약품에 대해 상장 폐지 여부를 심사하기로 하고, 다만 내년 3월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해 상장 폐지 사유를 해소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기업심사위원회는 4개월 뒤 일양약품이 스스로 제출한 개선 계획을 이행했는지, 내부통제 강화 노력을 했는지, 경영 투명성 확보를 했는지 등을 종합 평가해 상장 폐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일양약품은 오너 3세 정유석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 상장 유지를 위한 사업 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간 정유석 대표와 공동대표로 일해 온 김동연 대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김 대표는 1976년 일양약품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50년 가까이 일양약품에서만 근무했고, 2008년 각자 대표에 선임된 뒤 회사를 이끌어온, 업계 최장수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오너 일가가 금융당국의 공동대표 해임 권고에도 단독대표 체제를 구축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석 대표는 1946년 일양약품을 창업한 고 정형식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정도언 회장의 아들이다. 회사 지분 4.23%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이번 인사를 통해 오히려 오너가의 경영 승계 구도가 굳어진 인상이란 평가가 많다.
특히 정유석 대표가 상장폐지 심사를 앞두고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일양약품은 2023년 3월 정유석 대표가 공동대표에 취임한 뒤 실적이 2년 연속 뒷걸음쳤다. 품질 관리 관련 제재를 받은 이력도 있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양약품이 자사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슈펙트캡슐’과 관련해 약품 제조를 소홀히 관리하고 약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 중징계에 속하는 제조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경영 실적도 악화했다. 정유석 대표 취임 첫해인 2023년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3.5% 감소한 3705억 원, 영업이익은 38.6% 감소한 248억 원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영업이익이 32.84% 더 감소해 110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신약 R&D(연구·개발)도 부진한 상태다. 이런 이유로 회사가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개선계획서를 충분히 이행해 ‘영업지속성’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일양약품은 지난 수년간 놀텍의 적응증을 넓히기 위해 국내에서 소염진통제(NSAIDs) 복용으로 인한 소화성궤양 예방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슈펙트에 대해서도 중국·러시아·튀르키예·우크라이나 등 4개국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 2차 치료제로의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 상업화로 이어질 만한 구체적 성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놀텍과 슈펙트, 두 신약 중심의 연구·개발 전략이 전체 신약 개발 사업의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발목 잡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일양약품은 중견 제약회사들 중에서도 업력도 오래되고 국산 신약을 두 개나 배출할 정도로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2020년대 들어 현재까지 본연의 역량 대비 신약 개발 부문에서 눈에 띄는 행보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회사의 매출·수익 실적 개선을 위해 연구·개발 성과 확보가 필수지만 회계 리스크와 재정 부담 등으로 관련 분야 투자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회사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많은 자본이 필요한 연구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그간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와 신약 개발을 저력으로 성장한 회사기 때문에 (신약) 투자 강화를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고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조치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신약 개발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