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인 차량 번호판 바꾸고 진천·충주·음성 오가…차량은 호수에, 시신은 폐기물 처리조에 은닉
#“다른 남자 만난다” 소식 듣고 격분해 살해

앞서 A 씨는 지난 10월 14일 오후 6시 10분쯤 충북 청주시 옥산면의 한 회사에서 자신의 SUV를 몰고 퇴근한 뒤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A 씨의 가족은 10월 16일 112에 “혼자 사는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이 퇴근길 인근 폐쇄회로(CC)TV 등을 확인한 결과 A 씨의 차량은 10월 15일 오전 3시 30분쯤 청주시 외하동 팔결교삼거리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모습이 포착된 것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경찰은 일반적인 실종 사건과 달리 차량이 장기간 발견되지 않은 점, 카드 사용 등 생활 반응이 없는 점 등을 수상히 여겨 강력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실종 기간이 길어지자 경찰은 일선 경찰서 형사 전원을 투입한 데 이어 11월 21일에는 전담수사팀을 구성했다. 충북 진천군 초평저수지와 옥성저수지 등 A 씨 차량의 동선을 중심으로 헬기까지 동원해 수색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사건의 실마리는 A 씨의 전 연인 김 씨로 수사망을 좁히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A 씨와 김 씨가 결별한 뒤에도 이성 문제로 여러 차례 다퉜다는 주변인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씨를 A 씨 실종에 관여한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해왔다. 게다가 김 씨는 A 씨 실종 당일인 10월 14일 오후 6시쯤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퇴근한 뒤 이튿날 오전 5시가 넘어 귀가했는데, 10여 분 만에 다시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김 씨가 본인 명의가 아닌 타인의 휴대전화 유심을 사용한 정황도 파악됐다.
경찰은 김 씨가 A 씨 차량을 폐차시켰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의 거래처로 수색 범위를 넓혔다. 이후 경찰은 진천군 소재의 김 씨 거래 업체에서 A 씨 차량이 보관돼 있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당시 해당 SUV는 천막에 덮인 채 숨겨져 있었는데, 업주는 김 씨가 부탁해 범행과 관련된 줄 모르고 차량을 맡아줬다고 진술했다. 김 씨의 움직임을 추적하던 경찰은 11월 24일 그가 SUV를 몰고 충주호 방면으로 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11월 26일 오전 11시 47분쯤 폭행치사 혐의를 받는 김 씨를 진천군 진천읍 소재의 한 식당에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A 씨 SUV를 충주호에 유기했다”고 진술했으며, 실종 당일 A 씨를 만나 SUV 안에서 말다툼 끝에 폭행했다고 시인했다. 김 씨는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경찰은 김 씨 자백을 바탕으로 충주호에서 A 씨 차량을 인양했다. 인양된 SUV에는 김 씨가 부착한 다른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경찰은 김 씨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A 씨로부터 실종 하루 전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삭제한 정황, 실종 한 달 전부터 ‘살인을 왜 하나’, ‘안 아프게 죽는 법’ 등을 검색한 내역을 확인했다. 이후 2차 조사를 통해 김 씨를 추궁한 경찰은 살인과 시신 유기 장소 등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을 확보했다. 27일 A 씨 시신을 발견한 경찰은 김 씨에게 적용했던 폭행치사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10월 14일 김 씨는 A 씨 SUV 안에서 대화를 나누다 A 씨가 다른 남성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격분해 A 씨를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시신을 마대자루에 넣어 음성군 폐기물 처리업체 오폐수처리조에 담가 은닉했으며, 살해 흔적이 남은 SUV는 자신의 거래처에 천막을 덮어 숨겨뒀다. 그는 거래처 업주에게 “자녀가 사고를 치고 다녀서 (차를) 빼앗았다.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초기 대응 부실 지적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경찰이 약 40일 동안 차량조차 발견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초기 대응 부실에 대해 언급했다. 11월 28일 배 프로파일러는 YTN ‘뉴스UP’에서 “초기 실종 신고가 접수된 뒤 집중적이고 빠른 형태의 탐문수사가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면서 “사건 발생 직후에는 실종자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성인 실종의 초기 대응 집중성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김 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으나 “(A 씨와) 9월 이후 연락한 적 없다”는 진술을 받은 채 추가 수사를 벌이지 못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은 실종 신고 접수 한 달이 지나서야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또 김 씨가 차량을 은닉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뒤늦게 파악했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차량이 사라진 상태였다. 경찰이 차량을 확보한 시점은 김 씨가 충주호에 은폐를 시도한 이후였다. 경찰은 A 씨 실종 직후 김 씨가 시신을 은닉한 업체를 여러 번 방문한 정황을 파악했으나 범행 관련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피해자 발견이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10월 16일 실종신고 접수 이후 청주흥덕경찰서를 비롯해 일선서 형사들이 달라붙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용의자였던 김 씨의 휴대전화부터 컴퓨터까지 모조리 압수해 포렌식을 의뢰했으며, 대규모 인원의 집중 수사로 사건이 전부 확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번호판을 바꿨을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피해자 차량의 차종을 모두 찾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의 판단이 더 빨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성인 실종의 경우 대부분 가출과 연관성이 커 바로 강력 범죄로 수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결국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왔기 때문에 압박을 느낀 김 씨가 범행 흔적이 남은 A 씨 차량을 유기하려 했고, 그걸 포착해 자백을 받아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수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