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스캔들 단골 출연 ‘몸살 나겠네’
▲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왼쪽)과 이근영 전 금감원장.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금융권 CEO들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은 비단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금융권 CEO들도 잇달아 구설수에 오르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요즘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거론되는 직함이 ‘○○은행장’이나 ‘○○금융사 회장’인 것. 그렇다고 뚜렷한 잘못이 드러난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의혹’에 시달릴 뿐이다. ‘가을바람에 독감 걸린’ 금융권 CEO들의 이야기를 종합했다.
우선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에서 금융권 CEO들은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줄줄이 불려나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방카슈랑스 연기 문제와 관련해 유지창 은행연합회장, 남궁훈 생명보험협회장, 이상용 손해보험협회장 등 굵직굵직한 금융단체의 수장들이 ‘출석통보’를 받았다. 보험료의 카드 결제 거부 문제와 관련해선 나종규 여신금융협회장이,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와 관련해선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과 정병태 BC카드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나마 이들은 소속된 단체나 회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로 불려나갔기 때문에 고민이 덜한 편이었다. 정무위원회 등의 국감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금융권 인사들에게 본업과는 무관한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정치적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캐물어 금융권 CEO들을 당혹케 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정무위 국감에서는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이근영·이용근 전 금융감독원장,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등이 증인과 참고인으로 선정됐다. 또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연루된 건설업자 ‘김상진 씨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는 강정원 국민은행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이장호 부산은행장, 김규복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한이헌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이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채택됐다.
특히 우리은행 전·현직 행장들인 황영기 박해춘 두 사람은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에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에도 시달려야 했다. 통합신당 이목희 의원은 재경부 국감에서 “우리은행이 실명제법을 위반하면서 계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황영기 씨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또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2004년 3월 삼성증권 사장을 지낸 황영기 씨가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았고 3년 뒤에는 삼성화재 전무였던 박해춘 씨가 우리은행장을 이어받았다”며 “우리은행 계좌의 삼성 비자금 거래는 모두 황영기 전 행장과 박해춘 현 행장 재임기간에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취임 후 첫 국감을 치른 김용덕 금감원장도 꽤나 힘든 신고식을 거쳤다.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서 실무책임자들이 답변을 대신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 일례로 김 위원장은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이 김경준 씨를 소환하지 않은 이유를 다그쳐 묻는 한 의원의 질문에 “당시 김경준 씨를 소환조사 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가 박광철 금감원 부원장보가 “위원장이 착각을 한 것 같다”며 답변을 정정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반면 정치적 사안들이 국감의 안방을 차지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쉰 금융권 CEO들도 있다.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과 정병태 BC카드 사장 등은 금감위와 금감원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별다른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 김상진 사건과 BBK 사건 등에 의원들의 관심이 집중된 탓에 이들 카드사 사장들은 추가적인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의원들의 거센 질의를 용케 피해할 수 있었던 것.
당초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질책이 예상됐지만 이들 신용카드사 대표들은 국감 개시 8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만 지키다 귀가했다. 또 이들 외에 다른 다섯 명의 증인도 아무런 질의 없이 국감장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이와는 반대로 김상진 씨 로비 의혹 사건은 지난 7일 검찰이 부산은행 본점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하면서 불똥이 지방 금융권으로까지 튀고 있다. 부산지검은 7일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부산 범일동에 위치한 부산은행 본점의 행장실을 비롯, 부행장과 부행장보 등 고위 간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또 투자금융부, 여신기획부, 여신심사부 등 대출 관련 실무부서와 문서 보관장소인 전산실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압수한 자료를 토대로 이장호 부산은행장의 개입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며 자료 분석이 끝나면 조만간 간부급 인사들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권 CEO들의 수난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현재 노조와의 갈등으로 네 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다. 하나은행 노조가 지난 7월 이후 부당 노동행위와 노사협의회 미개최, 수당 미지급 등의 이유로 김 행장을 네 번이나 고소·고발한 것이다. 김 행장은 최근 하나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100일 10조 원 간접상품 판매’ 캠페인과 관련해서도 노조 반발을 사고 있다. 노조는 조만간 ‘실력행사’에 들어갈 계획이라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듯하다.
최근 물러난 존 필 메리디스 전 SC제일은행 행장도 장기간 계속된 노사 갈등 등을 이유로 사실상 경질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SC제일은행 출범 때부터 은행을 이끌어왔고 지난 4월 연임에 성공했던 메리디스 전 행장이 연임 6개월 만에 전격 교체된 이유로 150여 일간 계속되고 있는 노사 갈등과 함께 실적 부진을 꼽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연임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연임을 반대하는 노조와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는 최근 국민은행이 스톡옵션제를 폐지하는 대신 성과에 따라 주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주식보상제도’의 추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신정아 씨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 총재는 신 씨가 학예실장으로 일하던 성곡미술관 지원에 대해 홍보실장 전결사항으로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김 총재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고교 동문인 데다 미술 분야 지원이 전부 성곡미술관에만 집중됐다는 점에서 계속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어 당분간은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