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액션플랜’ 가동, 주주는 거주지 옮기고 법인은 기능 분리…권혁 “이상한 사람들이 사기치려 해”

법인 랭킹에서도 권 회장은 독보적이었다. 시도탱커홀딩, 시도홀딩, 시도카캐리어서비스 등 시도그룹 계열사가 법인 체납 순위 ‘Top 3’를 석권했다. 시도탱커홀딩은 종합소득세 등 1537억 원, 시도홀딩은 1534억 원, 시도카캐리어서비스는 1315억 원을 체납했다. 시도그룹 자회사로 파악되는 멜보인터내셔널도 종합소득세 등 265억 원을 체납해 10위에 올랐다. 권 회장 개인과 시도그룹 계열사들의 체납액 합은 8589억 원에 달한다.
권 회장 역외탈세 혐의 항소심 판결문 별지엔 ‘권 회장은 시도그룹 지배구조에 포함된 회사 전체에 대해 사실상 지분 100%를 보유함으로써 전부 지배하고 있으나, 다단계 출자구조와 명의신탁 등을 통해 지배사실을 은폐 및 소득을 은닉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선박업계 한 관계자는 “권 회장을 빼놓고는 시도그룹 관련 체납액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관련기사 [단독] “탈세의 교과서” ‘선박왕’ 권혁의 시도그룹 지배구조 해부).
권 회장 탈세는 오래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프로젝트 알프스’ 문건에 따르면 2007년 8월부터 본격적인 ‘액션 플랜’이 시작됐다.

“과세당국이 그룹의 지분관계 및 거래관계 등 제반 사실관계를 이해한다고 가정할 경우, 개인 주주 및 법인단계에서 과세 위험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됨. 국내외 사업확대로 인해 개인 및 그룹의 중요 정보가 과세당국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바, 과세 위험 최소화 방안을 강구하여 빠른 시간 내에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음.”
문건에 따르면 권 회장 측은 주주 단계 과세 문제와 법인 단계 과세 문제의 상호 위험 증가를 우려했다. 주주 단계 과세 문제로는 국내 거주자 판정에 따라 투자회사 이익을 배당으로 간주하며, 소득세가 과세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법인 단계 과세 문제로는 해외법인의 국내법인으로 간주됨에 따라 (법인) 해당 소득에 국내 법인세가 과세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실행 방안은 개인 주주의 비거주자 자격 유지, 법인의 기능적 분리, 최적의 투자구조 검토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개인 주주의 비거주자 자격 유지 항목에선 개인 주주 및 가족이 해외 이주 절차를 통해 실질적으로 생활의 근거지를 홍콩으로 이전하고 한국 세법상 비거주자 자격을 지속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강조됐다.
법인의 기능적 분리 영역에선 홍콩법인과 국내 법인 간의 Function(기능) 조정을 비롯해 조직 및 인원 재배치 등을 통해 홍콩법인이 사업의 실질적 관리 장소가 되도록 하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마지막으로 최적의 투자구조 검토에선 투자수익에 대한 국내원천징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해외지주회사 구조에 대한 검토 및 해외지주회사 이전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거론됐다.

문건에서 언급된 액션플랜은 2007년 8월 13일부터 10월 8일 이후까지 실행되는 순차적 계획이 구체적으로 짜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건엔 절세라는 표현이 명시돼 있지만, 이는 과세당국에서 탈세로 규정하기 충분한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프로젝트 알프스’ 내용은 권 회장 및 시도그룹 관계사들을 둘러싼 탈세 혐의 재판 핵심 쟁점들에 오버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회장 재판에서 검찰과 권 회장 측은 ‘국내 비거주’ 여부를 두고 역외 탈세 혐의 유무 공방을 펼친 바 있다. 시도그룹 관계사 재판에선 피고 측과 검찰이 실질적 법인 관리 장소가 국내인지 해외인지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문건에 언급된 인명과 법인명은 대부분 이니셜로 표기됐다. 전직 시도그룹 관계자는 “문건 작성 당시 권 회장 최측근이었던 이들이 문건에서 수행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면서 “아는 사람들은 인명과 법인 이니셜을 보는 즉시 이 문건이 시도그룹 관련 문건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문건은 국세청이 권 회장에게 주주권확인 및 주식명의개서 소를 제기할 때 증빙자료로 활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문건에도 사건번호와 증거번호가 표기돼 있다.

2015년부터는 기존 시도그룹 지배구조에 포함돼 있지 않던 위너스텝코리아라는 법인이 2025년 체납 순위 10위에 오른 멜보인터내셔널 재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멜보인터내셔널은 문건 작성 전후로 권 회장 일가 개인 재산을 매입하던 홍콩 법인이다.
위너스텝코리아 모회사는 위너스텝홍콩이란 홍콩 소재 법인이다. 권 아무개 위너스텝코리아 대표이사는 2024년 6월 14일 일요신문 통화에서 “위너스텝코리아는 시도그룹 소속이 아니”라면서 “위너스텝홍콩이 시도그룹 소속인지는 잘 모른다. 이게 페이퍼(컴퍼니) 비슷해 내가 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관련기사 [단독] 선박왕 재산 이동 ‘새 브리지’? 홍콩 기업 위너스텝 미스터리).
권 대표이사는 권혁 시도그룹 회장과 같은 사찰에서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사찰은 삼각산 문수원으로, 사찰 부동산 소유자는 위너스텝코리아다. 권 회장 일가 소유였던 이 부동산은 2007년 경 멜보인터내셔널로 소유권이 옮겨졌고, 2016년 경매를 통해 소유주가 위너스텝코리아로 바뀌었다. 문수원과 위너스텝코리아는 복수 제보자로부터 ‘새로운 탈세 및 횡령 브릿지’로 지목됐던 곳이기도 하다(관련기사 [단독] 실소유주는 ‘선박왕’ 권혁? 구기동 ‘비밀의 사원’ 문수원의 정체)

전직 시도그룹 핵심 관계자는 “문건이 작성됐을 당시엔 시도그룹 내부에서도 세금 일부를 내는 ‘절세’를 할 것인지, 아예 내지 않는 ‘탈세’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탈세’로 가닥이 잡히고 구체적이고 치밀한 내부 비밀 계획이 도출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결과물이 ‘프로젝트 알프스’ 문건이며, 이 문건은 권 회장의 탈세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었다는 점을 증빙한다”면서 “해당 문건은 시도그룹 내부 비밀 문건이 맞다”고 했다.
2024년 6월 일요신문 통화에서 권 회장은 탈세 및 횡령 의혹과 관련해 “이상한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가지고 사기치려고 했다”면서 “(내가)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뭘 좀 알았다고 오만데 가서 뿌리는 모양”이라고 반박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