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상 64명 참가 ‘반상유희’ 75세 김희중 우승…홍시범 대표 “일회성 이벤트 넘어 리그전 창설 꿈”

이번 ‘반상유희’는 이름 그대로 바둑판 위에서 한바탕 즐겁게 놀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만 60세 이상의 ‘슈퍼 시니어’들만 모인 이 자리에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바둑 고수 64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여성 기사들에게는 문턱을 조금 낮춰주되, 남성 기사와 대국할 때는 3점으로 치수를 접어주는 소박한 규칙도 정했다. 승부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도반(道伴)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니까. 좁은 대국실 안에 바둑알 놓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고, 간간이 터져 나오는 헛기침과 나직한 감탄사가 연말의 분위기를 더했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이틀간의 여정 끝에, 가장 마지막에 웃은 이는 1950년생 김희중이었다. 임동균 아마7단과 함께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였던 그는 예선리그부터 결승까지 쟁쟁한 후배들을 상대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16강에서 윤석철을 꺾고 기세를 올린 그는 8강 안재성, 4강 조민수라는 거물급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결승에서 김정우를 꺾고 우승 상금 200만 원을 손에 쥔 김희중의 소감은 덤덤하면서도 정겨웠다.
그는 “4강전 조민수와의 대국도 쉽지 않았고 결승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후배들이 양보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대회를 마련해준 주최 측에 감사드린다”면서 “프로 무대를 뒤로하고 아마 대회에 참가하니 참 좋다. 대회 참가를 위해 매년 월 2회 정도 지방을 찾고 있는데, 나이 들어 좋은 구경과 맛있는 음식을 대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한 이는 ‘바둑과 사람’의 홍시범 대표다. 그는 바둑계에서 알아주는 ‘마당발’이자 ‘바둑대회 제조기’로 통한다. 일본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홍맑은샘 프로의 성장에 보답하겠다며 ‘맑은샘배 어린이 최강전’을 11년째 이어오고 있는 그는, 반상유희 말고도 ‘활인검’ ‘위대한 탄생’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수많은 아마추어 대회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이번 연말, 유독 시니어들을 위한 대회를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가만히 보니 지난 수십 년간 바둑계 한 축을 지탱해왔던 시니어 기사들이 설 자리가 너무 없어요. 젊은 친구들은 공부할 곳도, 대회도 많지만 평생 바둑판과 씨름해온 사람들은 정작 갈 곳이 없어, 마치 잊힌 사람들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부 예산은 엘리트 쪽으로만 쏠리고, 시니어들을 위한 단체도 없잖아요. 그래서 연말에 어르신들 용돈이라도 좀 챙겨드리자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홍 대표의 머릿속에는 더 큰 그림이 있다. 바로 아마추어 시니어리그의 창설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 기사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리그전도 치르고 대국의 즐거움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장학재 서울특별시 바둑협회장, 최영호 의정부시 바둑협회장, 정성학 뉴스브라이트 대표가 홍 대표의 뜻에 공감하며 각각 500만 원씩을 보태기로 했고, 여기에 홍 대표와 선수들의 참가비 1000만 원이 더해져, 현재 총 2500만 원의 종잣돈이 확보됐다.

홍 대표는 이제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리그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메인 스폰서가 필요한 법이니까. “2000만~3000만 원 정도 후원받으면 멋진 리그를 만들 수 있습니다. 큰 기업도 좋겠지만, 바둑을 사랑하는 독지가가 짠~ 하고 나타나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그는 이번 대회가 시니어리그로 가는 소중한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고 있다. “메인 스폰서만 나타나 준다면 2026년에는 정말 근사한 시니어리그를 보여드릴 자신 있어요. 우리 시니어들이 ‘나 아직 안 죽었다’고 당당하게 바둑판 앞에 앉을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응암동 작은 회관에서 시작된 이 소박한 꿈이 과연 2026년에 어떤 결실을 맺을지 궁금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