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투톱’ 체제 분기점, 공천 시스템 신뢰성 의문…정 대표 1인 1표제 재추진에 친명계 반발

차남 숭실대 편입 관여 의혹, 전직 보좌진 인사 불이익 사주, 강선우 의원 공천 헌금 수수 사실 묵인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김병기 의원은 2025년 12월 30일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퇴 이후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김 의원을 둘러싼 불법정치자금 수수 무마 의혹이 여권 전체로 퍼질 조짐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의 이름까지 오르내린다.
이수진 전 민주당 의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 의원이 3000만 원의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2023년경 김현지 실장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당시 김 실장은 이재명 의원실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전 의원은 김 실장이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됐다’고 말한 내용의 녹취를 가지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당시 정청래 대표가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수석 최고위원이던 정 대표에게 이 문제에 대해 알아봤는지 묻자 ‘나 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그러냐’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은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서울 동작을에서 컷오프(공천배제)됐다. 이 전 의원은 컷오프에 반발하며 탈당했다.
1월 5일 민주당은 김 실장이 2023년 12월 불법정치자금 수수 탄원서를 받았고, 이를 당 사무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의혹이기 때문에 규명해야 한다”면서도 “시스템적으로 (탄원서 등이) 들어오면 윤리 감찰단에 넘기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1월 5일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MBC ‘뉴스 외전’에 출연, “본인이 공천받지 못했다고 해서 타인을 연좌제로 몰고 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이수진 전 의원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김병기 이수진 각 후보가 다른 후보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탄원은 많이 있다”며 “동작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지역구에 있는데 어떻게 이재명 대표가 하나하나 확인하나”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시스템의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월 6일 SNS(소셜미디어)에 “현재로서는 일방적인 주장”이라면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시스템과 결과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공천 때 반발이 커질 수 있다”며 “결국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반발심에 한 팀을 이루지 못해 손해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대표는 1월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시스템 에러라기보다는 휴먼 에러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공천 시스템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정 대표는 “제가 17대 국회 초선으로 입성했는데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 그리고 계파 보스에 의한 공천을 없애고 경선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그 이후로 공천 부정이 상당히 없어졌다”면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생각이) 들었는데 이외에 다른 일이 없다고 믿고 있고,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김병기 의원에 대한 탈당 요구까지 나왔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월 6일 자신의 SNS에 “김 전 원내대표는 억울하더라도 자진 탈당하시라고 눈물을 흘리며 강연했다”며 “억울하더라도 선당후사, 살신성인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정청래 거침없는 행보
김병기 의원 사퇴가 정 대표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높다. 그동안 김 의원이 정부와 엇박자를 내던 정 대표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특검법 합의 때 정 대표는 합의를 일방적으로 뒤집었고, 김 의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대통령실 가교로 평가받던 원내지도부와 당 지도부 간 긴장 관계는 증폭됐다.
김 의원 관련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던 2025년 12월 26일 정 대표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정 대표는 김 의원을 둘러싼 의혹에 사과했다. 반면 자신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장경태 의원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장 의원은 한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뒤 정 대표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1월 1일 정 대표는 김 의원에 대해 윤리감찰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시 시점은 2025년 12월 25일이었다. 관련 사실은 김 의원 쪽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현직 원내대표임을 감안해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1일 원내대표·최고위원 보궐선거 이후에는 ‘1인 1표제’ 도입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1인 1표제’는 2025년 12월 5일 열린 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됐다. 친명계가 조직적으로 반대의사를 펼쳤다. 정치권에선 친명계가 정 대표에 대한 일종의 옐로카드를 꺼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1월 3일 정 대표는 자신의 SNS에 “정치가 민주적일수록 부정과 비리는 사라진다. 공적 감시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제가 그토록 1인 1표제를 십수 년 전부터 주장하는 이유”라고 적었다. 공천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공천 신문고 제도 적극 활용과 관련 비리를 감시하는 ‘클린선거 암행어사단’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사태를 1인 1표제 재추진 동력으로 삼는 모습이다.

익명을 원한 친명계 의원은 “지역 의원들은 다 알 거다. 선거 때 보면 지역 토호 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당원으로 가입시킨다. 그런 상황에서 1인 1표제를 해서 선거를 하면 민주주의가 되는 건가”라고 되물으며 “자기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다. (김병기 사태로) 반대파들이 힘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다시 추진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한 친명계 원외 인사는 “왜 정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는 형태로 가려고 하냐는 것이다. 지금 스포트라이트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야 한다”며 “스스로 친명이라고 하고 당·정·대 원 팀이라고 이야기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